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거잖아요.

오랜만에 양쪽 집안에 특별한 일이 없는 온전한 토요일 오후였다. 가장 편한 복장을 하고 아이와 함께 서울 한복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적당히 혼잡한 지하철 안에 검은 안경을 쓴 허름한 아저씨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팡이를 하고 너털너털 걸어오고 있었다. 낡아빠진 찌그러진 카세트에선 음악이라기 보다는 소음에 가까운 멜로디가 촌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가 내 팔을 잡으며 귓속말을 한다. “엄마, 저 아저씨 맹인이라 검정안경 쓴 거야?”라며 커다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글쎄, 아마 그렇겠지”무덤덤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럼, 엄마 저 소쿠리에 돈 넣어주자, 저 아저씨 불쌍하잖아.”
“어..? 근데 저런 아저씨 지하철 타면 수시로 보이던데..”라고 하자, 우리나라 서울 지하철에 맹인 아저씨들이 엄청 많은 거냐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왜 지하철에 나와서 카세트를 들고 걸어 다니시는지 모르겠다며 사슴 눈망울을 하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진실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검정안경을 쓰고 다닌다고 모두 맹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소 아이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짜 맹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아이는 아직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무엇인가 결심을 한 듯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엄마, 그래도 천원짜리 한 장 주세요. 이따가 집에 가서 제 저금통에서 꺼내서 드릴께요.”라며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주면 안 되겠냐는 나의 회유책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당장 달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는 마지못해 건네준 천원짜리 한 장을 들고 가서 다 망가진 소쿠리에 천원을 넣어주고 왔다. 나는 여전히 저 아저씨는 진짜 맹인 같지가 않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아이가 돈을 준 것에 대해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이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 만약 저 아저씨가 진짜로 맹인이라면, 불쌍한 분이시니 도와드리는 게 맞는 거구요. 맹인이 아닌데 맹인인 척 하면서 구걸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엄마는 천원이 없어도 불편함이 없지만 저 아저씨는 자신이 맹인이 아닌데도 맹인인척 하면서 구걸을 해야 하는 삶을 사니까요.”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의 설명에도 나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맹인인 척 하는 그 아저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아이는 나의 얼굴을 보며 “엄마, 그래도 엄마는 좋은 사람이니까요. 안 착한 아저씨를 도와줘도 될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베풀어야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잖아요.”라고 말을 하더니 아이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지하철 광고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난 왜 아이만도 못한 작은 생각을 했을까?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이 그래도 아직 참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넓은 마음과 곧은 시선을 키우라고 대형서점을 가끔 같이 가곤 하는데, 이미 아이는 다 알아가고 있었다. 반면에 난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이의 얼굴을 보며 쑥스러운 웃음이 나왔다.
지하철 입구를 나오니 좀 전보다 더 서울 하늘이 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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