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윤신 박사는 前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부분 소장을 역임한 병리 전문의였다. 국립과학수서연구소에 재직 중이었던 그는 법학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 공부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끊임 없는 공부를 통해 본인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김 박사와 SO멘토링 학생기자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8월 25일 김 박사를 찾아갔다.

▲ 김윤신교수와 학생기자단이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SO멘토링연구소 후원)

이예선–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윤신 –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의대 학생들이 법의학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졸업 이후에는 다른 길을 가요. 법의학이 공부할 것이 아주 많기 때문이죠. 전 국립과학수서연구소에 재직할 당시, 왜 죽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법의학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혁규 – 법과 의학은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윤신 – 사회가 점점 발달하고 복잡해지니 학문의 영역간의 관계가 많이 좁아지고 있어요. 또 전문가들의 수요와 필요가 많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이면서 법을 공부한 사람이 법의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이상진 – 법의학은 언제부터있었나요?
김윤신 – 1993년부터 공부했어요.

손지운 – 법의학을 공부했을 당시, 멘토가 있으셨나요?
김윤신 –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는 군사정권 시절이라 정부가 국민들을 무섭게 다루던 때였죠. 당시 서울대 재학 중인 박종철 학생이 고문을 받다 죽은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 박종철 군 부검을 담당하셨던 분께서 정부의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셨어요. 그 분께서 제 멘토가 돼 주셨고, 법의학을 공부하고자 결심했을 때 그 분을 찾았습니다.

이혁규 – 저는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제 나이였을 때는 어떤 꿈을 꾸고 계셨나요?
김윤신 – 초등학교 3~4 학년일 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됐는데, 그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 꿈이 변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이상진 – 언제부터 법의학에 호감을 가지셨나요?
김윤신 – 의과대학 시절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다가 고문관련 사건으로 법의학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손지운 – 법의학을 공부하시면서 힘드셨을 텐데, 포기하려고 할 때 도와주신 분이 계신가요?
김윤신 – 정말 힘들었죠.(웃음)지금은 법의학 전공 의사 수가 많이 늘었지만 제가 공부할 당시에는 법의학 전문가가 20명도 안 됐어요.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잘하고 싶은 분야이고, 또 공부하고 싶은 존공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죠. 힘들 때마다 아내가 저를 지탱해주고 지지해줬습니다. 또 그 당시 아내가 공부하는 저를 보고 '존경스럽다'고 해줘서 더욱 힘을 냈죠.
윤진성 – 법의학 교수가 되셨을 때,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셨는지요?
김윤신 – 대학교수가 된다면 현장에서 사안을 조사하고 부딪혔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꿈이었죠. 실험실에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찾아내고, 그 실험의 결실을 맺을 때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소미 – 시체를 만지실 때 두렵지 않으셨어요?
김윤신 – 오랜 생활 속,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이기에 두렵진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처음하는 일들은 익숙하지 않고,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이런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지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건 중 가장 인상적인 사건 하나 말씀해주십시오.
김윤신 –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기억에 남는데요. 병 때문에 죽었으려니 했는데 부검을 해서 살펴보니, 범인이 있는 사건이었죠.

이상진 – 가장 오랫동안 조사한 사건이 궁금합니다.
김윤신 –군산의 어느 술집에 불이 나서 십여 명이 죽었는데 그 여러 명을 부검한 것이 제일 오래한 것이에요. 또 다른 사건은 우리나라 학생이 영국에 유학간지 1주일 만에 죽었어요. 부모들은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 다고 하잖아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국의 부모들과 달리 영국에서는 가족이 없이 부검을 해서 결과만 통보하는데 영국의사의 부검결과를 믿지 못한 한국의 부모들이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때 제가 우리 정부와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고 영국에 가서 2차 부검을 했는데 무려 4시간 동안이나 집도를 해야 했던 정말 힘든 부검이었습니다.

이예선– 앞으로의 꿈은 무엇이세요?
김윤신 - 2015년에 외국에 가서 연쇄 살인범을 조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과,
좋은 시를 써서 시집을 한편 내는 것이 꿈이에요.

이순오 – 법의학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김윤신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의사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이 기간이 6년 정도 걸려요. 이후 5년 간 병리전공 과정을 거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같은 전문 검사 기관에 가서 실무 훈련을 받게 되면 가능합니다.

김나연 – 가장 재미있게 읽으신 책 3권 추천 부탁 드립니다.
김윤신 - 제가 고등학생 때쯤 읽었던 조지 워싱턴 카버의 ‘땅콩박사’입니다. 당시의 사회적인 편견과 신체적인 장애 등을 극복하면서 한 흑인이 땅콩 등 여러 작물의 재배법을 개발하고 개선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예선 - 법의학자 교수님께 법의학이 갖는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김윤신 –죽음이란 참 가슴 아픈 일이죠. 죽음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고 애태웁니다. 그 죽음의 진실을 밝혀 낼 누군가의 헌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역할이 법의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법의학자들의 노력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 같은 존재라고 믿고, 그 빛의 화려함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아요. 법의학자의 삶이란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닐까요?
김윤신 교수 프로필

김 윤 신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주임교수

학력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법의학전공)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법학사)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수학(문학사)

경력
해부병리 전문의
대한법의학회 인정의
고려대학교 의사법학연구소 의료법학연구과정 수료
영국 글라스고 대학교 법의학과 방문연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서부분소장(전)
대한법의학회 평의원, 학회지 편집위원(현)
법의감식연구회 회장(전)
보험범죄아카데미 출강(보험살인)
SCUBA Diving 강사 (SEI & Y-S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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