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현장을 가다_[일반고 점프업]

지난 9월 28일 토요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인창고등학교 2과학실. 20여명의 학생이 생명과학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학생들이 토요일 늦잠도 마다하고 학교로 모인 이유는 책에서만 보는 이론에서 벗어나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끼면서 과학을 공부하고 싶어서입니다. 과학적 호기심이 가득한 학생들이라서 그럴까요. 수업하는 내내 학생들의 표정은 연신 밝았고, 수업의 집중도 또한 높았습니다.

 
바로 옆 1과학실에서는 지구과학Ⅱ 수업이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습한 후, 쉬운 문제부터 어려운 문제까지 선생님과 학생들은 호흡을 맞추며 차근차근 과제를 풀어나갔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학생은 선생님께 바로 바로 질문해 궁금증을 해소했습니다. 이 수업 시간만큼은 학생들의 막혀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이곳 1,2과학실에서 수업 받는 학생들은 인창고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서울지역 14개 고등학교에서 온 학생들로, 매주 토요일마다 4시간씩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인창고는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일반고 점프업(Jump up)'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입니다. 거점학교는 일반고에서 운영하기 어려운 진로집중과정을 개설해 서울 지역 학생들에게 꿈과 끼를 심어주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 모델인데요. 예술고나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 못해 일반고로 진학한 학생이나, 예체능을 하고 싶었지만 교육비가 부담되어 배우기 어려웠던 학생, 물리Ⅱ나 지구과학Ⅱ 등 심화과정을 공부하고 싶지만 자신의 학교에 ‘Ⅱ’과목이 없어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단비 같은 교육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3년 2학기부터 시범운영을 시작한 거점학교는 음악(3개교), 미술(4개교), 체육(6개교), 과학(7개교), 제2외국어(2개교)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총 22개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현재 일반고 2,3학년 학생 1075명이 자신이 소속한 학교와 거점학교를 오가며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과학 거점학교인 인창고를 찾은 지난달 28일에는 2차 입교식이 진행됐습니다. 지난 9월 7일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에선 물리Ⅱ와 지구과학Ⅱ를 묶은 한 반, 화학과 생명과학을 묶은 한 반, 이렇게 두 반이 개설됐는데요. 많은 학생들이 참가를 희망해 특별히 화학과 생명과학반을 하나 더 개설해 이날 2차 입교식이 진행된 것입니다.

이날 인창고에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던 명지고 최진이(18) 양은 소속학교에서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도구가 부족해 거점학교로 왔다고 합니다. 최 양은 “학교에 과학실험반이 있지만 인원은 많고 실험도구는 부족해 일부 학생만 참여할 수 있다”며 “꿈이 간호사라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싶었고, 학교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인헌고 윤지범(18) 군은 “우수한 선생님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고, 워낙 실험을 좋아하는 편이라 신청했다”며 “꿈을 이루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인창고에는 실제로 교과서를 직접 저술한 교사부터 EBS 명강사까지 우수한 과학 교사 5명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창고를 과학 거점학교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 이상 야근을 했다고 하는데요. 거점학교를 운영하면 일거리가 몇 배는 많아지지만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줄 수만 있다면 힘들어도 괜찮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지구과학 정영희 교사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수업을 하는 거점학교 교사로서 참 뿌듯하고, 앞으로 거점학교가 더욱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며 “학생들과 주고받는 피드백도 활발하고 교사 스스로 자기 계발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배우려는 학생들의 의지, 가르치려는 교사들의 열정, 부족한 것을 하나라도 더 채워주려 노력하는 교육청. 이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거점학교에서 학생들은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잤던 아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창고 임병욱 교감 선생님의 말입니다.

“음악, 미술, 체육, 과학 등 거점학교를 가고 싶어하는 꿈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거점학교로 보내야 합니다. 그동안 보고 듣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기회죠. 현재는 22개 밖에 없지만 앞으로 50개 이상으로 확산해서, 꿈을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꿈을 되찾아주는 게 교사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시범운영 단계라 보완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희망찬 목소리는 거점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학생수업 후기

“학교수업에서는 진도 나가기 바쁜데 이곳에서는 질문도 많이 하고 선생님도 천천히 짚어주면서 가르쳐줘요. 거점학교가 없었으면 학원으로 가서 비싼 사교육비를 냈을 텐데 부담도 덜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인창고 2학년 김윤재)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줘서 너무 감사해요. 저희를 위해 뭔가 하나라도 더 해주는 것 같고, 우리의 마음을 콕 집어서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아요. 거점학교를 모르는 학생들이 아직 많은 것 같은데 앞으로 홍보를 좀 더 많이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명지고 2학년 서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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