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엉덩이와 지우개로 그리는 것이다.

저는 매 학기 첫 시간에 이렇게 강의해요. 만화는 지우개와 엉덩이로 그리는 것이다. 지우개란 수많은 연습을 의미하는 것이고 엉덩이란 더 많은 시간에 투자하고 집중하라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지구력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만화가를 대라면 떠오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으뜸은 이현세 만화가라고 대부분 추천하는 것 같다. 200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어릴 때 만화를 읽었다면 누구나 아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쓰신 이현세 만화가님을 찾아 뵈었다

 

김나연- 왜 만화가가 되셨는지요?
이현세 만화가 – 내 생각과 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서 같이 공유하고 싶어서요. 지금 같으면 영화 감독이 되었을 거에요. 그 때는 영화를 마음 놓고 볼 수 없었어요.

김나연 – 어른들은 만화 읽는 것을 싫어해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현세 – 당연히 싫어하죠. 만화에만 코 박고 집중하고 자기 일을 하지 않아서 싫어해요. 모든 것이 다 스스로 조절 할 줄 알아야 해요.

김나연- 할아버지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현세 –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만화가가 되었어요, 이제 남은 꿈은 70세부터 동화를 쓰고 그릴 생각이에요.

김나연- 동화책에 까치와 엄지가 나오나요?
이현세 – 꿈은 시시하게 한 두 개 정해 놓고 꾸는 게 아니에요. 꿈을 크게 꿀수록 좋아요. 스케일 크게……

김시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이신지요?
이현세 – 내 이름으로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만화가 이현세란 이름으로 신고 하던 날, 그 책의 잉크 냄새가 최고였어요. 그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김시환 – 만화의 영감을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이현세 –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얻게 되요. 때론 직접 경험한 것을 통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요. 주의 깊게 느껴 봐야 돼요. 안테나를 켜야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김나연 – 만화가가 되기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현세 – 마감시간을 맞추는 일이요.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힘들죠. 일종의 숙제 같은 거에요.
그리고 생각을 자유롭게 그리는 것이 저에겐 커다란 행복인데, 국가가 그것을 간섭했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작가의 창작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국가와 6년 동안 재판을 했지요

김시환- 대통령상을 받으실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이현세 – 매우 좋았어요. 그러나 조금 아쉬웠던 점은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상을 주셨다는 거에요.
이상진 – 책을 몇 권이나 쓰셨나요?
이현세 – 저는 속편을 만들지 않아요. 지난 이야기보다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까지 팔린 부수가 약 1억부 정도 되죠.

이상진 – 만화는 어떻게 만드나요?
이현세 – 쓰고 그리지요. 재미있는 만화는 자기가 아는 것 만큼 쓰고 그리고 자기가 느끼는 것 만큼 그리면 되요. 지금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려면 일기 쓰듯이 그리면 좋은 만화가 될 수 있어요.

이상진 – 만화책만 만드셨나요?
이현세 – 소설, 수필, 시나리오 등을 썼어요. 여러분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 고등어와 크레파스라는 제 수필을 만날 수 있게 될거에요.

이순오 – 고등어와 크레파스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이현세 – 뚱뚱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에요. 일제시대 때 할아버지가 일본 사람들에게 끌려 가서 총살 당하시고 홀로 남아 만주에서 세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오신 분이에요. 큰 아들은 죽었고 막내 아들의 큰 장손인 내가 큰집에 양자로 보내졌어요.

우리 집에 오는 삼촌이 진짜 아빠라는 것을 20살이 될 때까지 몰랐어요. 어느 날 우리 집에 온 삼촌이 크레파스를 사라면서 큰 돈을 주고 가셨어요. 당시 크레파스 값은 굉장히 비싸서 쌀 한 자루 쌀 한 말 값이었지요. 그런데 그 날 밥상에 고등어가 올라왔어요. 저는 고등어를 아주 좋아해요. 고등어를 먹느라 삼촌이 온 지도 몰랐지요. 아버지께서는 삼촌이 왔는데도 본채 만 채 고등어만 먹고 있는 저를 보니 한심하셨는지 심하게 매를 드셨어요.

다음 날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하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았지요. 우선 만화를 보고 돈을 아껴서 크레파스 사려고 했지요. 그런데 만화를 실컷 보고 나니 크레파스 살 돈이 모자랐지요. 결국 자포자기 심정으로 남은 돈을 가지고 귀신 영화를 보았어요.

그 날 저녁 삼촌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이틀 뒤 삼촌이 집에 오셔서 제게 삼촌이 사준 크레파스를 구경시켜 달라고 하셨어요.

저는 무척 당황했었죠. 그런데 그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그 때 돈을 주신다고 하고 안 주셨잖아요.
어른인 삼촌은 잊었을 리가 없었지만 삼촌은 머리를 긁적이며 크레파스 살 돈을 다시 주셨지요. 그러던 며칠 후 그 삼촌은 전기누전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 거짓말은 묻히고 말았는데…… 스무살이 넘어 그 삼촌이 친아빠라는 것을 아는 순간 잊었던 고등어와 크레파스가 떠올랐어요. 그 때 삼촌 아니 친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어른들 앞에서 창피당하지 않도록 감추어 주었던 것이지요.

크레파스 값으로 만화 보고, 오뎅 사먹고, 귀신 영화 보고…… 스무살이 된 이후에 삼촌이 친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이예선 –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이현세 – 만화를 그리는 일이에요. 그리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에요. 또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내려다 보고 싶어요.

이예선 –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현세 – 소설 ( 삼국지 ) – 내가 본 소설 중에 가장 정의로웠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본 만화는 라이파이에요.

김나연 – 어떻게 교수가 되셨나요?
이현세 – 한 분야에서 최고의 사람이 되면 대학교수가 될 수 있지요. 난 대학교수가 목적이 아니라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생기면서 그에 맞는 전문가가 필요해진 거에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보너스가 있어요. 메이크업이 그랬어요. 영화산업이 커지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해졌지요. 누군가 전문가가 필요했어요. 남들이 다 간 길을 함께 가니 경쟁이 심하고 때론 뒤쳐지게 되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은 기대치 않은 보너스가 있어요.

이예선- 만화가님에게 만화란 무엇인가요?
이현세 – 제게 만화란 밥이에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이요. 밥이 질리는 사람이 있나요. 30년이 넘어도 저는 만화가 질리지 않아요.

이상진- 만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이현세 – 어른을 위해 먼저 만들어졌어요. 카툰의 시사만화나 생활만화…. 가장 중요한 이슈를 하나 하나 모은 것 그렇게 생긴 것이 만화에요.

이예선- 만화란?
이현세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고 단순하게 한 그림으로 표현해 주기 위해 만든 것이 만화에요.

김나연- 제일 존경하는 분은 누구신지요?
이현세 – 할머니에요.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에요.

이상진- 종교는 무엇인가요?
이현세 – 나는 가슴이 넓어서 4대 종교를 다 받고 있어요. 이유는 모든 종교를 다 배경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기 때문이지요.

이순오 – 만화에 일본영향이 많아요. 요새 애니메이션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이현세 – 그림만으로 볼 땐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내용은 전혀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요새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배경을 학원, 학교로 그리지요
만화가의 미래는 굉장히 밝은 편이에요. 학생만화 웹툰 다 괜찮은 편이에요. 일본에선 어떤 이야기이던 다 만화로 만들어요. 모든 것을 영웅으로 만들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죠. 그 후에는 헐리우드로 진출해요. 프랑스 같은 경우는 예술로요. 한 10년 뒤에는 글로벌한 웹툰 사이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예선-왜 학습만화를 만드셨나요?
이현세 - 스무살이 넘으면 자신을 방어하는 본능이 철옹성 같아서 교육이 안되지요. 제대로 된 국사관은 어려서 다져야만 해요. 제가 어린 시절에는 왕조주의였는데 제가 아는 세계관이 너무 편중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삼국지로 동양사를 다루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4년에는 웹툰으로 현대사를 다루어 볼 생각이에요. 주관적 입장에서 십자군 전쟁을 그려 보고싶어요……

이순오- 이현세를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은 무엇인가요?
이현세 – 호기심이에요. 무엇이든 궁금증이 끊임없이 생겼어요. 또 궁금하면 무엇이든 해야 했고요.

 

모교를 15년 만에 찾은 졸업생과 학생기자단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교수님은 다과와 음료 그리고 식당에서 따뜻한 식사로 환대해 주셨다. 작고 어린 학생기자단에게 꿈을 심어 주신 이현세 선생님…… 한동안 이현세 작가님 만화 세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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