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미경 공간 디자이너는 "어린 시절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부엌의 싱크대를 바꾸고, 벽지도 바꾸는 리모델링을 하셨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리모델링에 탁월한 감각을 보인 어머니를 따라 풀도 바르고 커튼 고르는 등의 일을 거들며 공간디자이너의 꿈을 이뤘다고 한다. 이처럼 그의 어머니인 박경주 여사는 딸의 꿈을 지지하는가 하면,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지난 2월 마지막 날, SO 멘토링 연구소 학생기자들은 박경주, 노미경 모녀를 만나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 박경수 할머니와 SO 멘토링 학생 기자단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 딸(노미경)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압구정동에서 수유리에 위치한 아주 허름한 집을 사서 이사한 적이 있어요.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다, 수유리로 이사했더니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고 불편한 점이 많았죠. 그런 불편을 해결하고자 공사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제가 원하는 대로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 했습니다. 당시 일반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던 일이었죠. 딸이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예쁜 집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이후 집 값을 후하게 쳐 줄 테니 팔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이사 가는 집마다 이러한 일을 반복했어요. 저는 집 꾸미고 리모델링 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이렇듯 박 여사는 본인의 솜씨와 재능을 발휘해 이사 가는 집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타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꿈을 이루진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다 키워 놓은 후 스스로를 돌아다 보니 제겐 중,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더군요. 어릴 땐 6.25. 전쟁으로 인해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가정형편상 중학교를 끝까지 다니기가 어려워서 제대로 학교를 다지니 못했어요. 그 것이 제겐 평생의 한이 되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이 나이에 학교를 다시 간다는 것이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자식들에게 말도 못했지요. 중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주부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와서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았어요. 입학 후 수업을 들으러 가려고 하니 사위들 보기에도 너무 창피했어요. 그러나 예비소집일에 모인 다른 주부들은 정말 열심히 듣고 있었어요. 입학식 때 교장 선생님은 ‘교육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며 콩나물을 키우는 시루에다 물을 주면 물이 다 빠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배움은 계속 배우면 무엇인가는 남아 있다’는 말씀에 용기를 내어 자식들에게 비밀로 하자던 마음을 바꾸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죠”

2년 동안 중학교 3년 과정을 마친 박 여사는 주말에도 빠듯하게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딸 노미경 디자이너는 힘든 엄마를 위해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보내줬다고.

"유럽여행을 하면서 4년 동안 힘들었던 중, 고교 과정을 이수한 제 자신이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럽에서 만난 건축물들은 그 하나 하나가 정말 튼튼하게 지어졌어요. 그 모습을 보고는 부러운 생각도 들면서 우리나라도 어떤 공사를 해도 정말 부실 공사가 아닌 튼튼한 공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100년 넘게 짓고 있는 성당이 있었어요. 가우디가 짓고 있는 그 건축물은 눈으로 보고도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어요. 몇 세기가 지나도 건축물이 그대로 유지되는 멋진 건축물들을 보며 중학교 2년의 힘들었던 공부의 시간들을 견디어 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박 여사는 중•고등 과정을 공부하면서 '공부는 밥 먹듯이 하는 것이고, 하늘나라 갈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 다고 털어놨다. 그는 교장 선생님의 말을 세겨 듣고, 새벽마다 일어나 영어, 한문, 컴퓨터, 수학 등을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그는 영어와 한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공부를 잘 하려면 정말 잠을 덜 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부의 길을 갈 수가 없어요. 영어 하나만 잘 하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얼마나 소통이 잘 되는지 세계 각 곳에 친구들을 만들 수 있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숙제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들은 나이 많은 할머니라고 해도 봐주지 않았어요. 그런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도 과정도 도전했죠"

만학도의 길을 걸은 박 여사는 올해 75세의 나이로 숙명여자대학교 아동학과에 합격하는 경사를 맞았다. 늦은 나이 대학생이 된 그는 "강의를 듣고 잘 이해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김현진 학생기자 – 어린 시절 중학교 때 졸업장이 없는 미련을 지울 수는 없었나요?
박경주 할머니 – 중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까웠고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요.

손지운 학생기자 – 대학을 졸업하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박경주 할머니 – 제 나름대로 아동학과를 지원했거든요. 제 나이에도 할 수 있다면 아이들에 관한 동화구연들을 해 보고 싶어요. 아이들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하고 싶어요. 제 개인적은 꿈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워 보고 싶어요.

손지운 학생기자 – 어린 시절, 어떤 꿈이 있었나요?
박경주 할머니 – 지금 시대 어린이들은 꿈이 크고 많지만 우리 시대에는 학교 교사나 교장 선생님이 되는 것이 다였죠. 제 꿈은 교장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 당시 교장 선생님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더라도 저는 하늘이 부를 때까지 밥 먹듯이 공부하며 배우고 싶어요.

이상진 학생기자 – 숙명여대라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박경주 할머니 – 그냥 저는 열심히 공부했어요. 가장 열심히 했던 공부가 국어 영역에 많은 관심을 두었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김나연 학생기자–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박경주 할머니 – 제 꿈은 항상 공부하는 것이에요. 이번에 외국에 나가면서 더 절실히 느꼈어요.  내 스스로 길을 묻고 들을 수 있도록 영어 공부를 꼭 하고 싶어요. 단어를 알아도 말이 잘 안 나오는 부분을 열심히 노력하고 싶어요.

김현진 학생기자– 선생님에게 학교라는 곳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박경주 할머니 – 제게 학교는 꿈이고 희망이에요.

손지운 학생기자 – 대학교 입학까지 어떤 도움을 받으셨나요?
박경주 할머니 – 제 큰딸과 교장 선생님이 큰 용기를 주었어요. 늘 제가 ‘10년만 젊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딸이 “100 세 시대에요 꼭 대학 졸업을 하세요”라고 한 말이 큰 힘이 됐어요.

김하진 학생기자– 공부는 참 힘들 텐데 어떻게 견디셨나요?
박경주 할머니 – 학교는 점심 시간이 15분 밖에 안 되요. 저는 매일 밥을 조금 가져 가는 되도 천천히 먹다 보니 점심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그렇게 급하게 먹다 체하게 되었고 119에 실려 간 적도 있어요. 공부보다 밥 빨리 먹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손지운 학생기자 – 공부를 하려면 정말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언제 그만두고 싶으셨어요?
박경주 할머니 – 중학교 다닐 때, 한자 급수를 다 따고 나니, '대학은 못 갈 것 같다'는 실의에 빠졌을 때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 포기하면 '내가 이 다음에 얼마나 후회할까'싶어 다시금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 고민할 때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죠.

김나연 학생기자–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박경주 할머니 –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고 지금의 제 일상은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간다는 것이 행복해요.

김나연 학생기자 – 할머니처럼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할머니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으신가요?
박경주 할머니 –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나이 생각하고 포기할 때 저는 하늘이 부를 때까지 내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공부했습니다. 저처럼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하고 싶어요.

이예선 학생기자 – 할머니 성함으로 삼행시를 지어 주세요.

박 – 박혁거세의 자손이
경 – 경이롭게 태어났네
주 – 주인답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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