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박대춘 회장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박대춘 회장, “지역서점은 문화융성의 출발점”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전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개정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게 된 공식 이유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의 무분별한 할인으로 인해 죽어가는 ‘지역서점 살리기’와 ‘할인을 감안해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가격 거품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래서 제도 효력이 적용되는 도서 대상 범위를 모든 서적으로 확대했다. 그래도 모든 도서는 종류에 상관없이 10%할인이 가능하고, 추가 혜택 5%까지 포함하면 최대 15%의 할인이 가능하다.
‘범출판업계 숙원’이기도 했던 새 도서정가제 개정안 국회통과의 선봉장 역할을 한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국서련)’는 출판물 보급 및 유통사업의 건전한 발전과 출판문화 향상을 목적으로 1949년에 설립됐다. 전국에서 서점을 경영하는 서점인들의 권익향상과 국민의 독서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한국서련’의 박대춘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휴먼마케팅으로 무장, ‘다시 찾고 싶은 지역서점’
 
‘도서정가제 시행을 위한 자율협약(2014.11.19. 불완전한 도서정가제 보완을 위한 범출판업계 공동 합의 체결)’에 따르면, 이 제도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책을 ‘값’이 아닌 ‘가치’로 여기자는 취지라고 한다. 오래된 좋은 문학작품을 15%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없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해당 작가가 그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노력을 가격으로 저울질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좌우명이 ‘진인사대천명’인 ‘한국서련’의 박대춘 회장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 앞에 지역서점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잡아주는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자 했다.
그는 지역서점의 강점인 ‘접근용이성’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서점들이 지역적‧문화적 특성을 반영하여 서점만의 개성 있는 특색을 만들고, 나아가 지역 고객들과의 끈끈한 휴먼마케팅으로 무장하여 ‘다시 찾고 싶은 서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책읽어주는 아빠’로 더 유명해진 대전 ‘계룡문고’처럼 다양한 문화행사를 실시하면서 지역주민들과의 ‘문화교류’ 기회를 확대하는 서점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인터넷서점보다 빠른 책 배송서비스를 실시하고 북카페, 복합문구매장 등을 오픈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개발하는 등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서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지역서점들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서정가제 확립, 도서유통질서 회복, 지역서점 인증제(회원 인증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지역서점의 공공기관 납품 의무화, 청소년 북토큰 지원사업 운영 등 다양한 현안들을 해결하며 지역서점 친화적 기반 조성에 힘쓰고 있다”
 
책이 ‘가격’이 아닌 ‘가치’로 평가받는 도서정가제
 
개정 ‘도서정가제’가 본디 취지에 맞게 정착하고 있느냐는 평가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서도, ‘신간도서의 최종 판매가격 하락에 따른 도서가격 안정화’ ‘초등 학습참고서의 최종 판매가격 인상률은 예년 수준 유지’ ‘문체부와 지자체의 공조를 통해 지역서점의 매출 소폭 증가’ ‘구간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기존의 베스트셀러 순위가 상당수 신간으로 교체되는 경향’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후 베스트셀러 20위 권 내에 신간이 90%나 포함돼 발간된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싼 가격으로 팔리던 도서가 주종을 이루던 이전 사례와 비교했을 때 책이 ‘가격’이 아닌 ‘가치’로 평가받는 도서정가제의 효과가 나타났다.
 
이와 함께 전국 지자체 산하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서점을 살리자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지역서점들의 운영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박대춘 회장은 현재의 도서정가제 역시 허점이 많기 때문에, 좀 더 보완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도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끝을 몰랐던 광폭 할인이 서서히 사라지고, 시장 판매의 중심이 구간에서 신간으로 재편되는 등 여러 긍정적인 변화들이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법의 허점을 이용한 제휴카드 할인, 홈쇼핑 세트도서 할인 판매, 무자격업자의 도서입찰 증가 등 많은 문제점이 도출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제도의 본디 취지인 ‘지역서점 활성화’와는 여전히 괴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 지역서점들의 기초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는데다, 새 도서정가제 역시 무료배송이나 카드 제휴 할인 등을 제한하지 않아 여전히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들이 절대적 경쟁 우위에 있다.
더욱이 법에 허점이 많다보니 이를 비웃듯 일부 출판사에서는 홈쇼핑 채널을 통해 정가제 취지에 반하는 도서 할인을 하고, 온라인서점에서는 제휴카드 할인이나 경품 공세 등을 통해 ‘꼼수’마케팅을 벌이면서 지역서점을 위한 개정법이 무색해졌다.
 
개정법 시행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10월 29일, 박대춘 회장은 성명을 내고 “책값의 거품을 제거하고, 안정된 출판시장 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서정가제가 무사히 안착하기 위해서 서점과 소비자단체, 출판사 등의 범연합체인 ‘도서정가협의회’를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이에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업계는 민관 전문가와 소비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자율도서정가협의회’를 구성해 도서 가격과 유통 비용의 거품을 제거해 ‘착한 가격’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출판유통업계는 도서의 건전한 유통과 가격 안정화를 위해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산하에 출판(학습참고서 ,전집, 단행본, 전자출판 등) 및 유통 분야의 종사자, 소비자 단체 등이 참여하는 ‘자율도서정가협의회’를 구성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자율도서정가협의회’를 구성할 당시, 도서에 거품이 낀 큰 이유 중 하나가 ‘유통과정의 문제’라고 생각해 세 번의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자율도서정가협의회’는 ‘자율’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강제성이 없다는 한계를 지니는데다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산하기 때문에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많고, 또 우선순위에 밀려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 마련 때부터 이런 문제점들을 예견한 박대춘 회장은 “지금이라도 관련 규정들의 허점을 확실히 개선하고, 독일의 도서정가제인 ‘서적 재판매가격유지법’처럼 서점 간 공정한 경쟁을 위한 ‘도서 공급률 표준화’를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독일의 ‘공급률 정가제’는 출판사가 유통사에 공급률에서 차별을 두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 반영돼 성공적인 ‘도서정가제’란 평을 듣고 있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공공기관 도서구매 입찰 방식이 기존 최저가 입찰에서 90% 직상의 부분적 최저가 입찰로 변경되었다. 이런 이유로 책 납품에 따른 수익성 증대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사업자등록증에 서점 업종만 추가하여 도서입찰에 참여하고, 수수료만 챙겨 빠지는 이른바 ‘떳다방’식 영업을 하는 비도서업체들이 난립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수혜를 받아야 할 지역서점들이 피해를 보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이와 관련, 박대춘 회장은 “지역서점이 아닌 업체들이 난립해 도서관 입찰 경쟁률이 치솟고 있는 만큼 실사 등을 통해 실제 영업을 하는 지역서점에 한해 서점으로 인증하는 ‘서점인증제’를 제도화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역서점 활성화를 목표로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아직은 ‘빛 좋은 개살구’다.
“(법 개정 외에) 도서정가제가 바르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자율도서정가협의회’가 제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좋은 책이 착한 가격(적정한 가격)으로 팔릴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책도 살리고, 서점도 살리고 소비자도 살리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최근 2년간 국내에서 246개의 지역서점이 문을 닫았는데, 이 중 96.7%는 전용면적 약 165㎡(50평) 미만의 소형 서점이다. 갈수록 문화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역문화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지역서점이 사라지면서 지역별 문화편차가 커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박대춘 회장은 “지역서점이야말로 문화융성의 출발점이자, 지역문화의 거점”이라며“지역서점은 수십 년간 한자리에서 지역주민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 몸의 실핏줄처럼 지역문화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점이 동네 주민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정가제’ 시행 반년여를 경과한 지금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국민 한 명 한 명이 책을 바라보는 인식을 조금만 변화시킨다면 분명히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손영탁 기자 syt0713@naver.com
 
 
 
 
 
박대춘 회장 추천도서 “아버지의 길”
일 때문에 주중에는 서울에 있고, 주말에는 전주로 내려가는 생활을 5년 넘게 한 박대춘 회장.
자연히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책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 중 역사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담아낸 ‘아버지의 길’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 박대춘 회장 추천 도서 '아버지의 길'
 
이재익 작가의 8번째 장편소설이자 첫 역사소설로 역사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이재익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 감동 휴머니즘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좌우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미군의 포로로 잡힌 김길수(金吉秀)라는 이름의 조선인. 그는 어떤 인생역정을 거쳐 머나먼 프랑스 땅에서 독일군이 되어 포로로 잡힌 것일까? 역사의 가혹한 수레바퀴 속에서 조선, 만주, 몽골,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등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슬프고 애절한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 9월 조선의 신의주에서 시작된다.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아내를 원망하며 대장간에서 힘겹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길수. 어느 날 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 건우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조금 일찍 집으로 향한다. 그 시각 김상우라는 조선 이름을 버리고 일본 장교가 된 스기타(杉田)는 격전지인 만주로 끌고 가기 위해 조선인 징용병을 찾아 나선다. 마침 신작로를 걷고 있던 길수를 발견한 스기타는 가혹한 구타 끝에 강제로 열차에 태운다. 열차 안에는 장남인 형 대신에 입대한 열네 살의 어린 영수, 돈을 벌어 경성 최고의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경식, 힘은 장사지만 애끓는 슬픈 사랑의 사연을 간직한 정대 등이 타고 있다.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생이별을 하게 된 주인공 길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아들 걱정으로 가득 찬 가운데 열차는 드넓은 만주대륙으로 향한다.
그동안 ‘페이지 터너’라는 별명답게 스피디한 스토리 전개와 싱크홀, 외계인, 심야버스, 미군부대, 방송국 등의 독특한 소재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던 이재익 작가. 그는 이 작품 ≪아버지의 길≫을 통해 마치 원고지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것 같은 비장함과 서사의 장엄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재익 작가의 색다른 면모가 엿보이지만 재미와 감동은 여전하다. 2007년부터 4년 동안 수많은 참고자료와 오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재익 월드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재익 / 황소북스
 
손영탁 기자 syt0713@naver.com
저작권자 © 한국독서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