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암 손병희 선생님 묘역을 찾아가는 길

 널어놓은 고추가 바싹 말라가고, 고추 잠자리들이 낮게 날아 아이들 손에 쉽게 잡히는 계절이다. 아직은 낮 동안의 해가 쨍쨍하여 목뒤가 따갑기도 하지만 가을이 성큼 다가 왔음을 우리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오랜만에 영화를 한편 봤다. 요즘 박스오피스에서 누적 관객수를 연일 갱신 갱신을 하며 인기 고공 행진을 달리고 있는 영화 ‘암살’. 등장배우들도 쟁쟁 하지만 영화 관람 후 ‘아, 인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실감할 정도로 연기력과 배경, 스토리가 탄탄 하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사건들이 배경이 되어 더욱 공감되었다. 배경은 1930년대 조국이 사라진 시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일본 측에 노출 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 작전에 투입 시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본의 앞잡이 강인국과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를 살해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간단하게 스토리가 이렇게 시작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일부 허구의 인물이었지만, 나라를 빼앗긴 식민들의 삶이란 저리도 참혹하고 서러운 것이구나 간접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일제와 맞서 싸운 우리 민족 선열들의 노고와 희생을 짐작하게 하는 영화였다.

 
서론이 길었다. 내 아이들에게도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일제 치하 시대에 관련된 인물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광준 광재 형제와 함께 배낭에 물통 하나와 간단한 간식 거리를 싸들고 길을 나섰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1166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도보로 10분. 북한산으로 오르는 등산족들 사이로 우리는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표지판이 보인다.
 
▲ 의암 손병희 선생님 묘
‘의암 손병희 선생 묘역’ 언덕위로 한눈에 보아도 잘 정돈된 묘지와 선생의 업적이 쓰여진 대리석 안내판이 보였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들이 항일운동의 마지막 정점을 달렸던 인물들이었다면, 의암 손병희선생(1861년~1922년)은 영화 ‘암살’의 시대보다 조금 앞서 독립운동의 시초를 알린 인물중의 하나다. 선생은 조선 말 동학에서 발전한 천도교의 제 3세 교주이자, 3.1운동을 주도하고 성사시킨 혁명가이자, 사상가, 민족의 지도자였다. 선생은 제 2세 교조인 최시형 밑에서 종교적 수양을 하여 지도자로 성장한 뒤 보성학교(현 고려대학교)와 동덕여학교(현 동덕여자대학교)를 비롯한 수십 개의 학교를 운영하는 등 교육 사업에도 열정을 쏟았다. 그러던 중 제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데 힘입어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되어야 함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독립선언식을 기획하고 각 종교계의 인사들을 규합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919년 3월 1일, 29인의 민족대표가 태화관에 모여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3.1독립운동은 국내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중국.러시아.미국 등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어 국내외 각지에 8개에 달하는 임시정부가 출현하고 마침내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3.1운동 주동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10월 병보석으로 출옥한 뒤 그 여독으로 1922년 5월 병사하여 이곳 강북구 우이동 언덕에 안장 되었다. 그 후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되었으며, 201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묘지를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굳게 닫힌 철문으로 멀리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아이들과 오늘 또 한 분의 강북구의 역사 인물을 만나 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집에 와서 선생에 관련된 책을 찾아 보았다. 선생의 철학과 3.1운동을 재조명한 <의암 손병희와 3ㆍ1운동>.
 
▲ 오문환 (지은이) | 모시는사람들
<의암 손병희와 3ㆍ1운동>은 의암 손병희의 철학과 실천운동을 '통섭' 개념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의암과 3ㆍ1운동에 대한 이해를 기본 관점으로 하여, 의암과 천도교단의 철학 및 실천운동을 다루고 있다. 동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12명의 학자들이 쓴 논문들을 통해 3ㆍ1운동을 정점으로 한 천도교의 행보를 살펴보고, 그 맥락과 의의를 조망한다.
 
이 책은 최제우나 최시형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책들과 달리, 동학이 서구 근대성을 만나면서 독자적인 길을 열어 나가는 격동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의암을 중심으로 동학ㆍ천도교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다. 또한 동학ㆍ천도교 이해의 시야를 연장하여 3ㆍ1운동 이후의 민족운동까지 일관된 흐름 안에서 살펴보고 있다.
 
 
제1부는 의암이 천도교를 통해 전통 종교철학을 통섭하고, 천도교의 개명을 통해 근대적 종교성을 통섭하였음을 보여준다. 제2부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를 갑진개혁운동과 연계해 분석하였다. 제3부는 3ㆍ1운동과 관련된 천도교의 여러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제4부는 의암 사후에 펼쳐진 한국 사회의 갈등과 맞물리는 천도교의 갈등을 살펴본다.
 
아직 3.1운동을 이야기하기에 어린 아이들과 함께한 짧은 역사탐방 시간이었지만, 의암 손병희 선생의 이름 석자를 가슴에 새겨둘 수 있어 좋았고, 언젠가 국사 교과서에서 만날 그를 미리 만나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또한 아직 일제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 한 사람으로서 옛 선인들의 자취를 찾아보니, 그간 무심하게 살았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당당한 코리아’를 내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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