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기당미술관 옆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사무실에 들렀다. 짧은 만남 후 집에 빨리 들어가기가 아쉬웠던 차에 미술관 건축물이 눈에 띄어 발길을 돌렸다. 처음으로 방문한 미술관이었다. 나선형 동선 구조를 하고 있는 미술관 내부를 시냇가에 수제비 뜨기 하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갔다. 그의 작품들이 눈을 통해 나에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감정의 수문이 열리듯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 흘러 나왔다. 전시관 가운데 서서 황토 빛 그림들에 둘러 쌓여 잠시동안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 난무 - 미국 스미스오니언 박물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는 ‘폭풍의 화가’ 변시지의 작품.(사진출처 : 네이버)
 
다행히 관람객은 나 혼자였다. 처음 보는 그림 속 풍광을 내가 아는 듯한, 화가가 알려 주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본 것 같은 ‘데자뷰’ 현상을 경험했다고 하면 적절할까?
혹자가 기억은 사실의 사촌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냥 그 곳에 도착하기 전에 나의 마음이 우울하고 뒤숭숭했던 거야. 그래서 거칠고 외로운 분위기의 그림이 나의 눈물샘 스위치를 누른 것이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그 날의 짜릿한 감동은 오감으로 나의 몸에 선명하게 기록되었다.
 
어릴 적 한 동네에 사셨던 외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셨다. 아이였을 때는 비현실적인 판타지
동화로서, 청소년기에는 교과서에 존재하지 않는 흥미로운 제주 이야기로서 뇌세포 속에 희미하게 저장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제주화’를 보기 위한 준비가 자연스럽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어서 변시지 화백의 ‘제주화’를 만났다. 마음 속 옛 제주의 거친 환경과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그림 위에 겹쳐지면서 마치 다큐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아이 시절 판타지 동화가 지금 우리가 ‘전설’이라 부르는 선조들의 진짜 인생이었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묵혀 두었던 세포가 깨어나면서 깊은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는 가끔 기당미술관을 찾는다. 교감의 추억을 품고. 작품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보이는 마법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림에 완전히 동화되어 흐느끼던 그녀도 없다. 조금 건조해진 지금의 눈으로 거칠면서 간결한 선이 보여주는 이야기와 동행하며, 때로는 필사하듯 가슴에 새기며 그림을 본다. 다른 미술관에서 변시지 화백의 작품 전시소식이 들려오면 아이들의 저항을 받으며 달려간다.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황토 빛과 매마른 먹선으로 창조한 ‘제주화’를 마주하는 건 시대를 아우르는 고전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고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내뱉는 것은 나 자신의 눈으로도 교만스럽게 보인다. 그럼에도 변시지 화백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제주인의 ‘제주화’를 넘어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성찰과 충실함이 우리에게도 다수의 세계인에게도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고의 세월을 전설처럼 버텨낸 우리의 선인처럼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앞으로 우리 후손과 세계인에게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 고전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을 키워본다.
 
서귀포 기당미술관은 제주 출신 재일교포사업가 기당(寄堂) 강구범에 의하여 건립되어 서귀포에 기증되었으며 1987년 7월 1일에 개관하였다. 기당미술관의 개관은 시립미술관으로서 전국에서 최초였다. 이곳은 ‘폭풍의 화가’로 불리는 변시지 화백의 작품을 상설로 전시하고 있다. 변시지 화백의 작품 중 2점이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2007년부터 향후 10년 동안 상설 전시되고 있다. 정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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