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의 중심지, 신촌에 숨어있는 헌책방들을 찾아가다

▲ 헌책방 '글벗서점'

헌책방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찾아갔을 법한 곳이다. 이미 몆십년전에 절판된 책들부터, 오늘 팔려나온 책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책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모여있는 곳이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가 모여 있는 신촌거리는 홍대거리와 더불어 대학문화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젊은 층의 발걸음이 잦은 만큼 이곳 가게들은 새로운 트렌드, 유행의 물결에도 민감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요즘 찾아보기 힘든 헌책방들이 여러 곳 남아 헌책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새 책도 사가는 사람이 없다고 출판업계가 비명 지르는 요즘, 아직도 손때 묻은 헌책들을 다루는 헌책방들이 남아있다. 신촌 거리 곳곳에 있는 헌책방들을 찾아가 봤다.

▲ 헌책방 '숨어있는 책'

우선, 신촌에 위치한 헌 책방 탐방 코스를 뽑아보자. 현재 신촌역에서 걸어서 15분 내외의 거리라는 조건을 걸어보면 신촌역 부근에 있는 헌책방은 6개 정도로 좁혀진다.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으로는 오랜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공씨책방’, ‘글벗서점’, ‘정은 책 서점’, ‘숨어있는 책’이 있다. 대형 체인점으로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은 ‘알라딘 중고서점’, ‘북오프’ 두 군데다.

▲ 헌책방 '숨어있는 책'

신촌역 7번 출구에서 걸어서 8분 거리인 ‘숨어있는 책’은 99년도부터 시작해 철학, 역사 등 인문관련 책과 그 원서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특히 교수나 대학원생 등 전문적인 자료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다. 논문자료나 오래된 원서들은 대부분 출반부수도 적고 절판된 책도 많은 상황이라 ‘숨어있는 책’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걸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주인은 “어떤 책을 작정하고 와서 찾는 경우는 드물고, 뒤져보다가 뜻하지 않게 내면에서 찾던 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어요. 헌책방은 그런 맛이 있죠.”라면서 미소 지었다.

▲ 헌책방 '북오프'

신촌역 5번 출구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북오프’는 들어가기 전부터 헌책방이라는 느낌보다는 비디오&만화책 대여점처럼 보인다. 내부역시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비디오&만화책 대여점처럼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다만 다른 것은 그 책들을 대여가격보다 몆 백원 더 주고 살 수 있다는 점이다.

▲ 헌책방 '북오프'

‘북오프’는 본사차원에서 다 낱권으로 책을 구입해 판매한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만화책이나 소설들을 한 질로 묶어 파는 다른 헌책방과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책이 한권뿐이라도 구매할 수 있다. 소장한 책 중 중간부분이 없어지거나 앞부분은 있는데 비교적 최신판이 없는 경우 이곳에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시리즈를 소장하는 마니아들에겐 이만한 공간도 없다.

▲ 헌책방 '공씨책방'

신촌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 거리인 ‘공씨책방’은 80년대 초부터 시작했다. 현재 주인부부의 형인 공진서씨가 회기동 경희대부근에서부터 시작해 공진서씨의 동생부부가 물려받으면서 이곳 신촌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공진서씨의 생각은 ‘모든 책은 좋은 책이다’였다고 한다. “요새 너도나도 책 내는 일이 흔하지만, 헌책방에 남는 것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실 한 번보고 버리는 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헌책방에서 많이 찾고,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에요.”

주인할머니는 요즘 인터넷이 많이 발달하면서 헌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헌책방의 묘미는 생각지도 않은 보물을 건질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이라고 했다.

▲ 헌책방 '공씨책방'의 주인 할머니

주인 할머니는 뉴질랜드로 이민 분이 해외 교포를 대상으로 연 수필공모전에서 공씨책방에 대한 추억을 회고하면서 쓴 수필이 당선되어 찾아온 일이 있다고 했다. 공씨책방이 광화문에 위치해 있었을 때 이용했던 그분은 한국에 입국했을 때 공씨책방에 와서 추억담을 나눴다고 한다. 인터뷰가 끝나고 예전에 인근에 있던 ‘신촌헌책방’에 대해 주인할머니께 물어보니 ‘신촌헌책방’은 카페에 임대를 주겠다는 건물주에 밀려 사라졌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 헌책방 '알라딘 중고서점'(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제공)

신촌역 2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알라딘 중고서점’은 온라인 중고 사업을 2008년에, 국내 온라인 서점 중에서는 최초로 시작했다. ‘알라딘 중고서점’의 관계자는 일단 넓은 공간에 다양한 도서들이 확보되어 있고, 책이 대부분 상태가 좋아 많은 고객들이 다시 찾는다고 했다. 도서를 매입할 때도 시스템에 의거해 합리적인 가격에 고객의 책들을 구매할 수 있고, 검색 시스템 도입으로 편리하게 중고책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헌책방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편리함이다.

중고에서는 새 책의 포장을 뜯는 즐거움이 불가능한 대신, 소위 ‘득템’이라는 즐거움이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는 이제는 오늘 들어온 책,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이 그런 진열공간이 되어, 지금은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책을 ‘득템’하려는 고객들로 가장 인기가 높은 매대가 됐다.

알라딘 중고서점 관계자는 “2G폰은 시간이 흘러 고물이 되지만, 책과 묵은지는 시간이 흘러 나름의 독특한 맛을 갖게 됩니다. 신상품이 아닌데도 헌책방을 즐겨 찾아주시는 원천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 헌책방 '글벗서점'

‘글벗서점’은 현재 홍대 앞에 있는 ‘온고당서점’의 전신이다. 신촌으로 이전할 때 상호와 함께 넘겼기 때문에 실제로 주인이 헌책방을 운영한 기간은 40년이 됐다. ‘신촌헌책방’을 지나 대로를 따라서 2분정도 걸으면 나온다.

오랜 시간 운영한 만큼 책방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대략 25년 전 경성중고등학교 앞에서 책방을 할 때 일을 아이들이 어려서 나갔다가 길을 잃지 않도록 책방 문을 닫아 놓았다. 그러다보니 밖에 내놓은 책들이 종종 도둑맞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로 위 환기통을 내기 위해 뚫어 놓은 공기구멍 아래에 봉투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어느 중학생 아이가 쓴 글이었다.

▲ 헌책방 '글벗서점'의 2층

“웬 걸까 하고 보니까. 거기에 ‘아줌마, 죄송해요. 제가 책을 많이 가져갔는데, 제가 겨울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거예요. 책값을 전부 보상하기에는 안 되겠지만 용서해 달라’고 적어놨더라고요. 읽고 나서 참 반듯한 아이구나 생각했죠.” 아주머니가 기특하게 여기고 그 아이를 찾으려고 했지만 끝내 찾지는 못했다.

▲ 헌책방 '정은 책 서점'

신촌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정은 책 서점’은 주인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다. 신촌역과 걸어서 5~10분 거리로 가까운 다른 헌책방보다는 조금 멀다. 1969년부터 서울 성북구 돈암동 길음 시장에서 시작한 ‘정은 책 서점’의 주인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옛날 돈과 우표 등을 취급했지만 요즘에는 거래가 드물다고 했다.

‘정은 책 서점’의 책꽂이에는 "책가방을 앞에 내려 두고 구경 하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이 말의 의미를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가방이 없다고 훔쳐갈 마음을 먹은 사람이 그냥 가지는 않을 터. 사실 정은서점에서 이 문구를 붙여놓은 이유는 도난보다는 많은 책들 때문에 비좁은 서점 안 통로에서 손님이 가방을 메고 지나가다가 책을 넘어뜨려서 책과 손님이 다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 헌책방 '정은 책 서점'

물론 사람에 따라 각자 해석하는 뜻이 다르겠지만, 책장 사이를 누비며 직접 책을 고르다보면 어지간히 마르지 않은 한 책장 사이는 딱 사람 한명의 공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가벼운 몸으로 편하게 오랜 시간 원하시는 책을 골라 가라는 뜻에서 붙은 이 글에서 헌책방 주인의 따뜻한 배려가 스며 나온다.

‘알라딘 중고서점’, ‘북오프’에는 비교적 신간과 트렌드에 맞는 책들이 많다. 진열도 깔끔하고 데이터 베이스화 되어 있어 찾는 책이 있다면 바로 확인이 가능해 빠르고 쾌적한 방문이 된다. ‘공씨책방’, ‘글벗서점’, ‘정은 책 서점’, ‘숨어있는 책’은 책들 사이를 누비며 원하는 책을 찾아보는 헌책방만의 묘미가 있다. 특히 절판된 책이나 희귀본 등이 많아 ‘보물찾기’를 하다 원하는 책을 발견한 즐거움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길 데 없는 기쁨이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때가 많다. 찾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하루 만에 다 돌기 어렵다면 이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곳을 찾아가 보자. 이 모든 곳들을 돌고나서도 사고 싶은 책 한권 없다면, 최신 문화가 흐르는 신촌거리에서 맛있는 음식과 차를 하고 돌아서도 괜찮은 하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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