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독서모임과 인문학 교실, 팟캐스트 활동을 통해 인문학 고전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있다. 이 모임들에서는 인류역사를 관통해온 100권의 고전을 선정해 원문을 읽고, 150개 정도의 인문학적 키워드를 통해 인류 사상사를 성찰하면서, 매일 인문학의 바다에 빠져들고 있다. 마치 청춘시절 연애하던 기분으로 책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함께 읽는 주요한 책은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에밀>, <인간불평등기원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존 롤즈의 <사회정의론>, 새무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 한스 피터 마르틴의 <세계화의 덫>,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 선언>,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앤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 <파열의 시대> <혁명의 시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노동의 종말> <접속의 시대> <유러피언 드림>, 안토니아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피에르 레비의 <집단지성>,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등 세계사를 장식한 주옥같은 고전들을 하나씩 해부해 나간다.
  
 헤게모니, 디아스포라, 오리엔탈리즘...키워드로 읽다

 함께 공유하는 키워드는 헤게모니, 세계화, 디아스포라, 오리엔탈리즘, 유러피언 드림, 아노미, 권력, 프로파간다, 불평등, 시놉티콘-파놉티콘, 계급의식, 정의, 국가, 위험사회, 분단과 탈분단, 포스트식민주의, 맥도널드화, 아비튀스,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앙시앙레짐, 관료주의, 고독한 군중, 지하디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 파시즘 등이다. 이 단어들의 인문학적 의미와 현실의 세계와 주요한 현안을 놓고, 그 의미와 사회적 해법을 모색하면서 세상을 바르게 읽는 법을 찾아나간다.

 필자는 이같은 고전 읽기를 통해 우리 인간이 평생에 걸쳐 보내는 삶의 가치가 인문학적인 성찰과 사색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인문학적인 통찰은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열리게 한다. 인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가라는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기 성찰의 기회와 지적 자양분을 받고, 수동적이거나 피상적인 객체적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끝없는 성공과 부의 획득, 출세와 행복 찾기에만 눈이 멀었던 바벨탑의 신화에 대한 반성, 물질만능과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성찰은 인문학적 탐색과 고민을 통해 이뤄진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와 문학, 고전, 예술 작품을 두루 읽게되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자각,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 삶에서 정의와 지혜는 어떤 것일까 등 다양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힘이고, 인간 존재에 대한 뿌리를 자각하게 해 의미 있는 삶을 살게하는 원동력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교육을 행한 경우와 행하지 않은 경우에 관해서 우리 인간의 본성을 다음 상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게. 땅밑에 있는 동굴 모양의 거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게. 길게 뻗은 입구가 빛이 있는 쪽을 행해서 동굴 전체의 넓이만큼 열려 있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거처 속에서 어릴 때부터 발과 목이 묶여 있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만 머물러 있고, 사슬에 묶인 탓에 고개를 뒤로 돌릴 수 없으니 그저 앞만 보게 되네. 그리고 또 이렇게도 상상해보게. 그들의 뒤로 멀고 높은 곳에 불이 타고 있어서 그 불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는데, 그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길 하나가 뒤쪽으로 나서 그 길을 따라 벽이 세워져 있다고. 마치 인형 조종사가 칸막이 위에서 구경꾼들에게 꼭두각시 놀음을 보여 주는 것과 같은 경우가 되는 것일세”라고 설명한다. 플라톤은 이 ‘동굴의 비유’를 통해 동굴 안에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사는 사람과 세상의 비밀과 진행원리를 아는 자유로운 인간의 존재를 비교하고, 철인이라는 존재를 이끌어낸다.

 플라톤 ‘동굴’에서 시작, 인문학 읽기의 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통해 국가의 경제와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 선언>과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통해 불평등과 모순이 심화된 21세기의 해법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은 어떨까?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노동의 종말> <접속의 시대> <유러피언 드림>을 통해 지구촌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새무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 한스 피터 마르틴의 <세계화의 덫>을 통해 테러와 유혈로 얼룩진 세상의 나가야 할 길을 모색해도 좋을 것이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정독하고,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 <파열의 시대> <혁명의 시대>를 통해 세계사를 돌아본다면 우리가 바라본 삶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물론 공자의 <논어>와 정약용의 <목민심서>, 사마천의 <사기>와 김구의 <백범일지>도 빠질 수 없는 동양적 사유의 기초일 것이다, 이런 세계사에 빛날 고전들을 읽으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와 가치를 탐색하는 다양한 독서모임과 동아리들이 늘고 있음은 우리 사회의 큰 희망의 빛일 것이다.

 정부, 미래 가치 만드는 인문학 독서모임을 뒷받침해야

▲ 김홍국(한국협상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 박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인문학의 바람이 거세지도록 돕는 일이다. 이를 통해 전국에 독서 열풍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우리 사회의 역량과 수준도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이다. 대학가에서 취업만이 아니라 진정한 인문학에 대해 고민하고, 주부들이 아이들과 가족들과 세상을 배우고, 병영에서 장병들이 지혜 가득한 양서를 읽고, 전문가 집단들이 우리 사회의 100년후 먹거리와 인간 존재, 우주의 미래에 대해 고뇌할 때 우리 사회는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변모를 하게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독서모임과 동아리들의 활동을 재정적, 제도적,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이런 모임들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 위기의 한반도를 구하는 중장기적인 기반이 될 것이다. 고전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찾는 작업에 온 사회가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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