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독서,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만남 통해 도약 필요

 한국의 자랑스러운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세계적인 대국이 모두 끝났다. 숫자로만 보면 1승4패로 이세돌의 완패다. 그러나 3연패의 좌절을 딛고 4번기에서 승리했던 이세돌은 마지막 대국에서 패했음에도,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 끈질기고 창의적인 수싸움을 통해 인간정신의 찬란한 정수를 보여줬다.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느냐’ ‘인간이 기계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논란 속에서 이세돌은 세계 바둑계의 최고수로서 자존심과 명예를 지켰고,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뜨거운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했다.

 이세돌 드라마는 매 순간순간이 경이로웠다. 특히 내리 세 판을 지면서 좌절했던 인류는 4번기에서 드러난 위대한 인간의 사고력과 창의력, 종합적인 판단력과 지혜의 힘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됐다.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을 쏙 빼닮은 알파고의 위력은 공포스러웠지만, 인간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기계의 방대하고 냉정한 계산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이세돌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마지막 5국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초반에 유리한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져서 많이 아쉽다. 부족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정말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고 끝없이 집중하는 알파고에, 다시 붙어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든다. 바둑 실력보다는 심리적인 부분, 집중력 부분은 인간이 따라올 수 없다"며 알파고의 '무심(無心)'한 기계적 중립성과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이세돌은 더불어 "이번 대국은 원 없이 즐겼다. 바둑은 물론 즐기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번 대국만은 마음껏, 원 없이 즐겼다"고 밝히며, 바둑황제로서의 진지함과 겸손함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바둑의 철학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입신’의 매력을 보여주기도 해다.
 
인공지능, 사회적 공감대와 탐욕 막기 위한 합의 만들어내야
 이번 대국을 통해 알파고가 보여준 인공지능은 위협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로서의 한계도 가감없이 드러냈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토대로 기계적인 학습 방식을 따랐던 인공지능은 학습한 적이 없는 돌발상황에서는 생소하거나 어이없는 행동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분석의 영역을 넘어 인간 직관의 영역으로까지 진입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구글은 이번 대국에서 드러난 알파고의 문제점을 분석해 보강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인공지능 연구는 새로운 경지를 넘어서는 빠른 과학적 진보를 이룩할 전망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하사비스는 대표는 5번기를 마치는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은 하나의 도구고, 또 인간이 훨씬 많은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앞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인공지능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이 돼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AI 관련 알고리즘을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발할지에 대해 학계를 비롯해 다른 AI 업체와 함께 논의하면서 과학계와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구글은 딥마인드를 인수하면서 자체 윤리위원회를 구성할 정도로 부작용을 막고, 인류의 삶과 미래에 기여할 다양한 방안을 연구하는 성의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상황이다. 인공지능 분야는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대표적인 융복합의 영역이자 자연과학·인문학·공학·의학 등을 아우르는 연구개발 능력의 결정판이다. 서구에서는 인간 뇌와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 기술력은 차곡차곡 쌓여지고 있고,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창의적인 구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모방과 실행에만 매달려왔다. 과학교육은 아직도 암기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매년 수십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면서 단기적 효과의 가능성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하는 과거형 모델에 머물러 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인내의 시간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엉뚱한 사태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빨리빨리 문화’의 폐해는 언제든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알파고 충격을 경험한 정부와 기업들은 인공지능 선점 경쟁에서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나 거대 자본의 인공지능 독점도 우려되고, 구글과 같은 서구기어들의 미래 인공지능 독식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준비해야 하며,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 공조를 이루면서도 인간의 제어할 수 없는 탐욕을 막기 위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 김홍국(한국협상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 박사)
 
 미래 인류 문명을 좌우할 인공지능 사업을 너무 단시간에 성과지향적으로 추진해서도 안되고, 정부가 결정하고 기업들은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과거형의 과학기술 운영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만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사회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힘은 바둑과 같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독서와 인문학에서 나온다. 한국사회가 이세돌 드라마를 계기로 독서교육을 강화하고, 사회적 공감대와 독서문화의 확산을 위해 총체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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