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미터 병풍 그림책 속에서 샘솟는 환상 예술 그림책!
허름한 나무 그러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에서 피어나는 생명들!
아픔을 치료하는 가장 훌륭한 약은 내 안에 숨 쉬는 우주!
잘린 나무가 보여주는 세상으로 떠나 볼까요?

▲ 배유정 (지은이) | 반달

조금 이상하거나 낯선 그림책
<나무, 춤춘다>는 세로로 너무 길다 싶게 길쭉한 그림책입니다. 게다가 여느 그림책과는 다르게 앞표지와 뒷표지가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생겼을까요?
자, 이제 반투명 종이를 벗겨내고 책을 넘겨 봅니다.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그림책입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좀 불편합니다. 첫 장을 열자 푸르른 나뭇가지와 잎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그림의 다음 장은 마을을 지켜주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장식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다음 장을 열자 나뭇가지들이 잘려 떨어지더니, 그다음 장은 하얀 바탕에 ‘나무는 흐른다’라는 글과 함께 빗금만 그어져 있습니다. 그다음 장은 끝내 밑동만 남은 앙상한 나무가 초라하게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합니다. 뿌리 같기도 하고 줄기 같기도 한 기다란 그림이 아래로 흐릅니다. 바로 다음 장을 넘겨 보니 나무 줄기와 나뭇잎과 함께 나비며 꽃, 박쥐도 보입니다. ‘나무는 만난다’라는 글은 거꾸로 쓰여 있습니다. 이 글은 또 왜 거꾸로 쓰여 있을까요? 혹시 책을 잘못 만든 것은 아닐까요? 그다음 장을 차례차례 넘겨 봅니다. 아무리 봐도 처음 이 그림책을 넘겼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상하기만 합니다. 알 듯 모를 듯한 글과 그림들이 병풍처럼 길게 이어진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이라니, 이 그림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생명 가득한 그림으로 평화를 얻는 그림책
나무는 흐른다
나무는 만난다
숨쉬는 빛깔
꿈틀거리는 생명을
나무는 채운다
나무는 춤춘다
나무는 품는다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몸을 맞대어 하나가 된다
나무는 난다

그림책 <나무, 춤춘다>의 글은 이게 다입니다. 글은 몸을 낮추어 우리 눈을 자연스럽게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책의 그림은 나무 한 그루의 가장 꼭대기에서 시작합니다. 푸르게 자란 잎잎이 그 어여쁨을 뽐냈을 것 같은 나무 한 그루. 지금은 잎도 사라지고 줄기도 사라져 밑동만 남은 나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인 나무. 그러나 이 나무의 생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무는 흘러흘러 새로운 생명을 낳고 자라고 꽃피고 화합하고 그것들과 하나를 이루더니 마침내 다시 새로운 세상을 피워 냅니다. 작가는 이를 ‘나무는 난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에서는 줄기가 없어 끝내 말라 죽을 것만 같은 나무일 뿐이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세상에서는 훨씬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펼쳐 보입니다. 작가는 이 모습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그림에 표현하여 작은 생명들에 숨결을 더해 줍니다. 그림은 알 듯 모를 듯한 추상화인 듯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면 수없이 피어나는 생명들과 매우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구상화입니다. 이제야 왜 작가가 뿌리 속 세상을 이처럼 표현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우주가 커다란 우주의 겨우 한 부분일 뿐인 것처럼, 우리가 아는 나무 또한 그렇습니다. ‘나무 안에 우주가 존재하며 그 세상은 서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나 봅니다.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잘린 나무 그루터기 하나는 볼품이 없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생명이 피워내는 우주가 꿈틀거립니다. 볼품없는 것들을 볼품없다고 바라보는 순간 정말 그것들은 생명을 잃고 말지요. 전쟁은 그렇게 해서 생겨납니다. 그림책 <나무, 춤춘다>는 허름한 것들을 보듬어 주는 평화입니다.

그림책의 상식을 바꾸는 환상 예술 그림책
이 책을 펼치다 보면 수수께끼 같은 장면을 발견합니다. 똑바로 있어야 할 글자가 거꾸로 적혀 있습니다. 왜 작가는 첫 문장인 ‘나무는 흐른다’라는 이 한 문장만 빼고 모두 글자를 거꾸로 적어 놓았을까요?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글과 그림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나무는 잎과 줄기와 뿌리의 구분이 뚜렷합니다. 잎이 줄기가 될 수 없고, 줄기는 뿌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나무는 줄기도 잎도 없이 그저 밑동뿐입니다. 그러나 이 밑동에 그 다음 글인 ‘나무는 흐른다’는 몸짓이 더해지면 나무에는 보이지 않는 곳부터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틉니다. 단비 같은 기운이 ‘흘러’ 나무는 뿌리인지 줄기인지 잎인지 모르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낳습니다. 이 생명들은 서로서로 만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바로 ‘나무는 만난다’가 뜻하는 어울림입니다. 그런데 이 글부터 거꾸로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남’을 내 안에 들이는 일입니다. 그 낯선 남과 ‘나’가 조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작가는 그 뜻으로 ‘나무는 만난다’에서부터 책을 돌려 읽기를 바란 건 아닐까요? 박쥐를 그려 넣어 이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로 남겨둔 건 아닐까요? 이렇게 책을 돌리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넘기던 책은 곧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넘기는 책이 됩니다. 이 작은 변화에 ‘남’의 모습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음을 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아름다움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래 바라보고 오래 얘기 나눌 때 깊이 다가옵니다. 부디 이 알쏭달쏭한 그림책에 담긴 그림에 보는 이의 눈이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것들이 수없이 다가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하던 것들이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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