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
 
 소설가 박완서의 책 제목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는 옛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 사람에게 있어서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OECD 국가 중에서 이혼율 1위라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마땅치 않다.
 
 결혼은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선택이다. 한 때 가전제품의 광고 문구로 인기를 끌었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은 결혼이라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가전제품 하나를 고를 때도 오랜 시간을 따져보고 고민하는데 하물며 평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결혼이야말로 오랜 시간 숙고해야한다.
 
 어릴 적부터 해외 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하기를 꿈꿨던 지애 씨의 경우도,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평생을 힘들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애 씨는 교회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사랑에 힘입어 성경말씀을 열심히 배웠고 지혜롭게 성장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된 지애 씨의 목표는 단 하나,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은 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
 
 지애 씨가 선교지로 선택한 나라는 스리랑카였다. 실론 섬이라고 불리던 스리랑카는 영국의 식민지로 홍차 생산국이었다. 지애 씨가 스리랑카를 선교지로 삼은 이유는 아름다운 신비의 섬이라는 것과 불교국가로서 기독교 불모지였기 때문이다. 지애 씨가 몸담고 있는 선교단체는 ‘개척자’ 정신을 강조하여 선교하다 박해당하는 곳을 최우선 선교지로 삼는 곳이었다.
 
 지애 씨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스리랑카로 선교사로 나가려 하자 한사코 말리던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고혈압에 시달리시던 아버지께서 지애 씨의 결심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결국 쓰러지신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계신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었던 지애 씨는 선교사를 포기하고 회사원이 되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되고 어느 정도 재정 자립을 이룬 후 선교하러 나갈 계획이었다.
 
 그 사이 부모님의 성황에 못 이겨 여러 차례 맞선을 보게 되었고, 선교사로 헌신하려는 지애 씨의 꿈을 지지하는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예상과 다르게 결혼하자마자 아기가 생긴 지애 씨는 선교사의 꿈과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힘들어 했다. 남편을 원망하게 되자 부부 사이는 악화되고 갈등과 다툼이 계속되었다. 남편 또한 지애 씨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차라리 이혼해주겠다고 말할 지경이 되었다.
 
 지애 씨 부부의 경우 상담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꿈을 지지해주리라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지애 씨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반면에, 아기까지 생긴 마당에 가정생활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남편의 입장도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정말 이혼하고 선교사로 떠나는 것이야말로 해결책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힘들어하는 지애 씨를 위로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평생 이루고자 했던 꿈이 다른 사람에 의해 좌절되는 느낌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고 살아갈 의욕이 사라지는지 말이다.
 
 지애 씨와 상담을 하면서 차츰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지애 씨의 꿈을 좌절시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지금의 남편에게 투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남편에게 덧씌워진 채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지애 씨가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이 필요했다. 마음 깊은 곳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사라지지 않는 다면 남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용서라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잘못한 것을 ‘잊어버리는 것’ 이다. 그래서 용서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잊으려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것을 어찌 쉽게 잊을 수 있는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용서하기로 잊어버리기로 선택하고 노력하면 가능해진다. 결국 용서를 통해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애 씨는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선택했고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자신의 꿈을 방해한다고 여겼던 남편과의 대립 관계에서 벗어나자, 꿈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협력의 관계를 충분히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지애 씨의 내면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자 남편도 훨씬 적극적으로 지애 씨를 도울 수 있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해외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지애 씨의 선교지인 ‘스리랑카’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단순한 가족여행이 아니라 선교여행으로서 계획을 짜고 있는 지애 씨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더 이상 지애 씨는 결혼 생활이 꿈을 방해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든든한 나의 지원군이 있어 내 꿈을 더욱 수월하게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원망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배우자를 꿈을 이루게 해주는 든든한 지지자이자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사례였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있다. 결혼을 꿈 실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으로 인해 꿈을 놓치고 살게 될 것이며 그와 반대로 생각한다면 결혼하고 나서 더욱 꿈을 향해 성큼 나아가게 될 것이다.
 
 가정이 화목하면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이룬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진리다. 회사에서 중역으로 발탁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그가 가정생활을 잘 하고 있는 지를 살펴본다고 한다. 그 만큼 자신의 가정을 잘 꾸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조직을 다스릴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다.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가정을 화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어느 경영대학원에서 이사급 이상의 회사 중역인 남녀 수천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이혼이나 재혼을 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 명의 배우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해왔고, 배우자를 만난 시기가 대부분 학창시절이었으며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흔히 꿈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선 때론 결혼도 미뤄야하며 결혼을 하더라도 가정에 충실하기보다는 일에 더 매달려야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것으로 위험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결혼을 통해 배우자와 친밀감을 형성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수록 업무에 있어서도 높은 성과를 나타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많다.
 
 친밀감으로 인해 마음이 안정이 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기 때문에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의 관계를 통해 직장에서 맺는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상대방을 믿고 지원하며 격려하는 부부 사이는 꿈꾸는 결혼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서로의 꿈을 진정으로 수용하고 응원하는 부부가 이끄는 가정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한 팀으로 만들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성과를 이루게 해주는 결혼생활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부부들을 상담하면서 볼 수 있었다. 배우자의 꿈을 비웃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서로의 꿈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는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상담심리치료 전문가인 나는 ‘결혼찬성론자’이자 ‘결혼낙관론자’이다. 후배들이 나에게 결혼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물어볼 때마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조언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결혼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 할 때 행복해질 기회가 많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행복해지기 바라는 마음에 억지로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다. 한 눈에 반해 급하게 결혼했던 만큼 힘든 시간을 많이 겪었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마음과 태도를 바꾸었다. 다시 사랑을 키우나가기로 다짐하고 노력을 멈추지 않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보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진정한 꿈 친구로 함께 하기 시작하자 처음 본 그 순간 타올랐던 사랑의 불꽃이 되살아났다.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부부를 상담했던 임상의 결과 뿐 아니라 실제로 내가 경험했기에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꿈꾸는 결혼이 행복하다고, 행복한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 가현정작가

 

 

 

글. 가현정
 
 과일농사 지으며 책 쓰는 작가, 심리치료전문가. 글쓰기 중심의 청소년 인문학 아카데미 ‘가문의 영광’과 도서출판 ‘가현정북스’를 운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아픈 사랑, 벗어 던져라』,『F1 소망을 생생한 현실로』,『더 느림 The Slower The Better』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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