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평선 진로칼럼리스트

2013년 경희대와 중앙일보가 전국 16개 시·도 중학생(2171명), 교사(232명),학부모(353명) 를 상대로 심층 조사한 ‘중학생 인성 실태 조사’ 관련 기사를 읽고 머리가 멍했다. 특히 아래 인용한 내용을 보고 답답증을 느꼈다. 서울지역 중학생(82명) 심층 인터뷰 결과다.

 
● 공부와 성적에 짓눌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기 일쑤다.
● 스마트폰과 게임 등 자극적 반응에 길들여져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 언제든 친구들로부터 왕따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아이들의 또 다른 생각들이다. 과연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누구를 닮은 것일까.
 
“친구요? 엄마가 다 필요 없대요.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차피 저희를 판단하는 건 성적이니까.” (서울 중랑구 A중 1학년 여학생)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왕따를 시켜야 해요. 내가 살려면 마음 내키지 않아도 다른 애를 괴롭혀야 돼요.” (서울 동대문구 B중 2학년 남학생)
“대화의 절반은 욕이죠. 다들 그렇게 하니까 아무렇지 않아요. 부모님도 욕을 섞어 쓰니까 우리에게 뭐라고 못하죠.” (서울 강남구 C중 1학년 남학생)
 
“북한군이 내려오고 싶어도 남한의 중학교 2학년생이 무서워서 못 내려온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어른들이 바라보는 중학생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중2를 지목하여 ‘중2병’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교사(50.7점)와 부모(60.5점)가 매긴 중학생 인성 점수는 학생들 자신의 평가보다 훨씬 낮다고 한다. A교사는 “아이들이 자기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영상과 SNS 같은 즉각적인 반응에 길들여져서인지 남에 대한 존중과 배려처럼 깊은 생각이 필요한 행동이 부족하다”고 했다. 중1 자녀를 둔 학부모는 “부모들이 모든 걸 다 챙겨주니 요즘 아이들은 책임감이 떨어지고 공중도덕도
 
약한 것 같다”고 했다.
 
사회생활 하면서 힘든 게 일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일보다는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성패도 대인관계 비중이 80퍼센트나 되고, 조직생활을 하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90퍼센트 이상은 인간관계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필자가 직장생활을 20여 년 하면서 느낀 것도 직장에서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업무 능력이나 기술 문제보다는 대인관계 때문이다. 인간적인 갈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회사생활은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를 더 중시한다. 상사 입장에서 능력은 있지만 불협화음을 내며 팀원과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직원을 무작정 두고 볼 수는 없다. 팀워크가 깨지면 조직이 깨지고 성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결단하게 된다.
 
아이들은 작은 사회, 학교에서 인간관계 훈련을 받는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는 아이가 보다 큰 사회로 나가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아이가 친구들과 친교를 맺거나 갈등을 겪으며 화해해 가는 과정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도 하고 타인의 의견도 수용할 줄도 아는 모든 과정이 인간관계 연습이다. 이런 수업을 부모가 막아서는 안 되고 조언자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은연중에 리더십도 배운다. 사람을 이끄는 능력을 인간관계 수업을 통해 배운다. 미국의 기업가 존 록펠러는 말했다. “나는 이 땅의 어떠한 능력보다도 사람들의 인솔 능력을 가장 값비싸게 쳐줄 것이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몇 서 있다. 보기만 해도 귀엽고 청순하다. 그런데 예쁘장한 이 아이들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생각지도 못한 욕이 뒤섞여 흘러나온다. 조금 과장하자면 대화의 반이 욕설이다. 아이들이 욕설을 밥 먹듯이 하기에 한동안 지켜보다 물어봤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은 욕을 욕이라고 느끼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이건 중고등학생이건 관계없이 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여학생들의 욕설은 예쁘장한 외모로 인해 느껴지는 거리감 때문인지 더욱 충격적이다. 물론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욕설을 일상대화처럼 사용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해주는 어른들은 드문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자기표현의 방법이며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평가받는 하나의 잣대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 인격을 형성해 가는 시기에 학교도 부모도 지식 주입에만 열을 올려 기본적인 인성교육이 소홀해진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이대로 가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입시의 장으로 바뀌어버린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탓해 봐야 해결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인성교육이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회가 고도로 도시화·산업화되고 대가족이 해체되는 등 교육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가정
에서조차 인성교육에 소홀해졌고, 오로지 성적지상주의만 남게 되었다.
 
인성교육이란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태도 및 품성을 배양시키는 교육을 말한다. 인성교육이 필요한 것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도덕과 질서, 규범, 예의, 타인
에 대한 존중 등을 지녀야 한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지식만 축적한다면 개인의 성공은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고 만다. 또 그런 성공은 불완전하기에 어느 순간 무너져버리고 만다. 아이가 지닌 재능이나 능력이 성공으로 귀결되려면 인성은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 한다.
 
아이가 어릴 적 부모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별 개념 없이 수단을 가리지 말고 얻을 것을 요구한다. 댐이 무너지는 것도 아주 작은 구멍이 생기며 시작되는 것이다. 사회적 인식이 진화하면서 봉사활동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래서 교육과정에도 봉사활동을 포함시켜 입시전형에 적용하도록 했다. 어릴 때부터 봉사의식을 심어주자는 취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은 대입이나 입사에 필요한 점수를 따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돈 많은 부모가 어느 단체나 기관에 일금을 쾌척하면 그 대가로 그 집 아이에게 봉사활동 증빙서를 떼어준다. 어떤 부모는 아이 대신 몸으로 때워 봉사활동 증빙서를 얻어주기도 한다. 아이가 직접 봉사활동에 나서는 경우에도 대개는 증빙서를 얻기 위한 요식행위에 그친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이 모두가 부모들의 비뚤어진 욕망이 빚어낸 참사다.
 
부모들은 명심해야 한다. 멀리 보면 아이에게 봉사활동의 참뜻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품성이야말로 아이에게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게 할 것이다. 우리는 대개 자기가 뭔가를 이뤄냈다는 개인적 성취의식은 강한 반면 다른 누구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공동체적 성취의식은 미약하다. 인구 대비 자원봉사자 비율이 미국 55.5퍼센트, 영국 48퍼센트, 일본 25퍼센트, 싱가포르 9.3퍼센트인 데 비해
한국은 0.52퍼센트에 불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뭐든 함께 나누는 정情이 한국인을 상징하는 대표 정서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조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과거에는 학과 실력만으로 경쟁력을 갖췄다면 앞으로는 품성을 겸비해야 진정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유년기부터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보다 우선 경쟁상대라는 생각이 깊다 보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로 우정이 싹트지 못했다. 영화 <친구>에서 느꼈던 끈끈한 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직장에서 빠른 승진을 하기 위해 경쟁은 끝없이 일어난다.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는 주변을 살펴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고 불가피한 현실이라 믿는 것 같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남을 위해 봉사할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듯싶다.
 
봉사활동도 마구잡이식으로 하는 것보다 아이가 선택한 직업을 사전에 경험해볼 수 있도록 관련 분야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직·간접적인 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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