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바라보는 관점

▲ 언어는 기술이다의 김현수

‘언어는 기술이다’가 사실이라면 기술은 학문적 연구가 아닌 익히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자신의 모국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사람은 전공을 통해 학자의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더불어 일반인들이 자신의 모국어를 일상 생활에 사용하기 위해서 학문적 연구나 배움은 1%에 불과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언어가 기술이라는 의미를 시험이나 대학을 가기 위해 점수를 높이기 위한 스킬적인 의미를 기술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물론 점수를 높이기 위한 것도 기술임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언어는 기술이다’라는 의미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함에 있어서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히기 위한 핵심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가장 우선 생각해야 할 부분은 사고의 전환이다. 사고의 전환이 없으면, 기존의 패러다임과 자신의 경험이 언어를 익히는데 가장 큰 방해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네모다’, ‘천동설’이 진리였던 시대가 있었다. 1402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_천원지방]을 살펴보면 지구가 네모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 저서 [알마게스트]에서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는 천동설이 확립되기도 했다. 지구가 네모이며 지구 중심으로 태양이 돌고 있다는 것을 절대적 진리로 알고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 이 시대에는 이것이 사실을 넘어 절대진리였다. 이 당시에 다른 이론과 논리는 반역에 가까운 행동으로 규정되었다.
 
이처럼 언어를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언어를 대하는 생각들이 어떤지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언어는 평생 배워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요즘은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운다. 그렇게 대학교까지 영어를 쭉 배워도 영어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평생교육이라는 관점으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언어는 공부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공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코피 터지게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포기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영어공부를 잘했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공부로 본다는 것 또한 모순적이다. 셋째로 언어는 누군가가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타강사나 영어 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영어에 대한 이론 혹은 방법을 침 튀겨가며 알려주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영어를 못하고 있다. 넷째로 언어는 외워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어공부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상대방에게 외워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유독 외국어를 사용할 때는 단어든 문장이든 문법이든 외워야만 의사전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외웠다고 입에서 줄줄 나오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언어를 배웠다. 마치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가 자전거를 테이블에 놓고 수 많은 이론을 알려주고 나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자, 이렇게 해서 언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졌는가? 다시 말해서 영어를 이렇게 공부해서 얼마나 영어를 잘 구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 패러다임이란
 
‘지구는 네모다’, ‘천동설’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시계추가 한쪽으로 심하게 갔다면 다시 정반대를 향해 가는 것이 이치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류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에 ‘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절대진리라고 여겼던 것에도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느 시대를 살던지 늘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발견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1451~1521년에 마젤란이 최초 지구 일주 항해를 하게 되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 항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항해나 항로를 발견했다는 단편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는 네모가 아니라 둥글다.’라는 절대적 진리가 무너지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되고 1632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천문 대화]라는 저서를 통해 다시 한번 지동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런 사건들은 단순히 하나의 학설로 끝나지 않았고,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도전을 통해 ‘지구는 둥글다’, ‘지동설’이 요즘 시대에는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 패러다임에 도전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습득의 진리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해보자. 이것이 우리가 언어습득을 기술로 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이다. 다음 시간에는 기술을 익히기 위한 핵심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구체적인 훈련방법도 하나씩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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