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과 두보의 교훈...책읽고 성찰하는 정치문화 만개해야

▲ 김홍국(국제정치학 박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어느새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를 들으며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좋은 책을 읽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듣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읽는 책의 구절구절은 우리 가슴에 큰 강줄기를 만들고, 머나먼 바다로 항해를 떠가게 한다.

 

위대한 책과의 만남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다. 좋은 책을 접하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철학은 일생을 좌우하는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명문가는 자식들의 독서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곤 한다. 왜 독서는 인생에 힘이 될까? 독서가 지닌 간접경험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무수한 혜안과 지식을 전해준다. 독서를 통해 깨닫게 되는 다양한 정보와 지혜의 힘은 삶의 무기를 전해주는 것과 같다.
 
대한제국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여순감옥에서 사형 당하기 며칠 전에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썼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글을 읽고 글씨를 쓰면서 동양의 평화와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던 안 의사의 열정의 힘은 독서에서 시작됐다.
 
중국 당대의 시인 두보(杜甫)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가득 찰 만한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독서를 상찬했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두보는 뛰어난 문장력과 사회상을 반영한 시를 썼고, 후세에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리기도 할 정도로 뛰어난 문인이다. 냉철한 사실주의자이며, 위대한 인도주의자인 동시에 열렬한 충군애민(忠君愛民)의 애국자로 평가되는 그는 근체시의 모범이 되는 율시(律詩)와 당시의 시대적 아픔을 담은 1천5백여 수의 시를 남겼다.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글을 논할 수 있다는 그의 책 사랑은 시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곤 했다.
 
우리 사회에서 책을 많이 쓴 대표적인 애서가를 꼽을 때 자주 등장하는 명사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그는 독서라면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반기고, 원하는 책을 구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시장실이 책방처럼 책장과 문서파일로 가득하고, 집 역시 책꽂이와 책으로 가득할까? 지금까지 공동저서를 포함해 50여권을 펴냈으니 그 관심과 애정은 대단한 수준일 것이다. 그는 외국방문 시절 고서점을 찾아 골목길을 헤메고, 미국 연수시절 연방정부 도서관과 하버드대학 도서관을 샅샅이 뒤질 정도로 책을 사랑했다. 그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라고 밝힌 책은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독립투사 백범 김구 선생의 <정본 백범일지>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그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읽은 책으로,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짐하게 되는 인생의 항로에 나침반이 돼주었으며, <정본 백범일지>는 가장 아끼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책으로 김구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배운 소중한 책으로 귀하게 보관하고 있다.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도 그의 애장독서 목록에 올라있고, 여름휴가 때는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를 읽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역시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초등학교 때 3살 위 누나의 교과서까지 읽었고, 중학생 땐 몇 개월 동안 도서관이 끝날 때 의자 정리까지 해주고 나올 정도로 책을 많이 봤다고 한다. 이동 중이나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는 <비통한 자들의 위한 정치학> <왕의 경영, 정조가 묻고 세종이 답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과 함께 이철수의 <연작 판화집>,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의 <한국 경제 대안 찾기> 등 여러 분야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 등 수불석권(手不釋卷)의 다독형 독서습관을 갖고 있다.
 
책을 좋아해서 이동하는 차안에서 틈틈이 책을 읽곤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올 여름 휴가 때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를 읽었다. 안 전 대표는 최근 서울시의 독서페스티벌에서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두식 교수가 쓴 인권서적 <불편해도 괜찮아>와 달라이 라마·스테판 에셀의 대담집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를 권장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학문의 즐거움>,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고민하는 힘>, <사랑의 기술>, <프랭클린 자서전>,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역사란 무엇인가>, <손자병법>,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등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곤 했다.
 
지난 여름철 휴가철에 여러 대선주자들의 독서목록도 시중의 화제를 모았다. 여름 휴가에서 <백범일지>를 읽었던 김무성 의원은 경제지도자를 자처하며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등 시대정신을 표방하는 여러 책을 읽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대선주자 중 유일하게 경제민주화에 천착해온 유승민 의원은 존 롤스의 <정의론>과 <공화주의>를 탐독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안희정 충남지사는 박경리 <토지>를 읽어 독서계의 관심을 끌었다.
 
책은 우리 사회를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좋은 책을 읽는 문화는 정치인들에게도 자신을 성찰하고 발전하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준다. 올 가을에 우리 사회가 정쟁과 대결의 대결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풍성하게 하는 독서문화에 흠뻑 빠져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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