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드라마처럼 실재 의대를 선호하는 특성화 고등학교가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과학고는 특성화 고등학교의 취지를 벗어나 무늬만 과학고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수 이공계 인력을 양성하고자 하는 설립취지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특성화 고등학교의 길을 가고 있어 안타깝다. 

올해 서울과학고등학교 졸업생 4명 중 1명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학고는 우수 이공계 인력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영재고(영재학교) 8곳 중 1곳이다.

다른 영재고나 과학고에서도 일부 학생들이 의대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학교가 미래의 과학자 대신 장래의 의사를 다수 양성하는 것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1학급당 4명이 공대가 아닌 의대…최근 5년간 최고

지난 15일 서울시교육청·서울과학고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준 서울과학고 졸업생 130명 중 총 31명(23.8%)이 의대에 진학했다. 이 학교는 총 8학급, 16명 내외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1학급당 4명씩 의대에 간 셈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를 사실상 하지 않는 영재고 특성상 이들은 대부분 수시전형으로 입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의대 진학 비율은 최근 5년간 수치 중 가장 높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2015학년도부터 졸업생의 18~20%가 의대를 갔는데 올해 그 비율이 최대 6%P 가까이 더 올라간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측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하던 대학들이 올해부터 학부체제로 전환하면서 의대 모집 정원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의대를 선택한 학생이 다소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서울과학고 측도 그동안 학생들의 의대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예년보다 그 비중이 늘어 당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서울과학고 출신이 특정 최상위권 대학 의대에 대거 입학한 점도 눈에 띈다. 합격자 가운데 재수생 포함 서울과학고 출신만 20명(18%)이다. 이들은 모두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는데 그 비율이 전체의 약 22%에 이른다. 해당 대학 관계자도 “이 학교 출신이 이렇게 많이 합격한 사례는 그동안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뿐 아니라 영재고 졸업생의 의대행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8학년도 기준 경기과학고 졸업생의 5.6%, 대전과학고 졸업생의 5.3%가 의대에 진학했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비율로 졸업생들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고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특히 서울지역 과학고에서 두드러진다. 지난해 기준 세종과학고 졸업생의 약 10%, 한성과학고 졸업생의 4.1%가 의대에 갔다.

설립 취지 벗어난 특성화 고등학교 제제방안도 마땅치 않아...

영재고는 우수 이공계 인재 발굴과 교육을 목표로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고등학교를 말한다. 모든 고교 유형 중 가장 먼저 신입생을 뽑는데다 선발규모(8개교, 총 790명 내외)도 작아 전국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린다. 과학고도 영재고와 설립 취지가 크게 다르지 않고 학교 명칭도 비슷하지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설립돼 학교 유형 자체는 다르다. 

이런 영재고·과학고에서 학생들의 의대 러시를 두고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영재고·과학고는 우리나라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에 맞춘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인데 이들 학교를 통로로 의대에 진학하고 또 그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국비 지원이나 학생 우선선발 등 특혜를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자율형사립고도 설립 취지와 다르게 입시명문고로 변질됐다는 이유로 일반고 전환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영재고 등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학적 역량이 뛰어난데도 학업 능력이 다소 떨어져 영재고·과학고 진학 꿈을 이루지 못한 학생들도 많았을 것”이라며 “영재고·과학고 출신 상당수의 의대행으로 이런 학생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 의대가 학교장 추천서를 받지 않는데다 등록금이 비싼 의대에 진학할 정도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이나 지원금 부담도 없을 것”이라며 “좀 더 확실한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또 다른 교육계 관계자는 “의사도 넓게 보면 인체나 생명과 관련된 과학적 연구를 하는 직업이고, 집도를 하지 않고 연구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난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라며 “학생들의 진로를 제약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영재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을 최소하기 위해 제재 수단을 마련하는 등 교육청이나 학교도 나름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진로는 학생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를 강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최대한 학교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해소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특성화 고등학교 설립취지와 인재상에 맞는 인원을 선발하고 그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도록 방향과 역량을 키우는 교육기관이 될 수 있도록 운영했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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