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민규(지식혁명연구소 소장)

‘마중물 한 바가지.’ 펌프질을 해서 얻은 물을 사용하던 시절,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마중물 한 바가지였다.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는 한동안 펌프질을 하지 않으면 파이프 속의 물이 모두 빠져버린다. 물을 다시 사용하려면 펌프질을 해야 하는데 이때 꼭 필요한 것이 마중물이다. 파이프 속 공기를 빼내면서 펌프의 압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아무리 깊이 있는 물이라도 샘솟게 한다. 그래서 펌프 옆에는 늘 마중물 한 바가지가 놓여 있었는데, 이것은 펌프에서 나온 물을 받아 다음 펌프질을 할 때 쓰려고 예비하는 것이다. 


지하수라는 특징 때문에 처음 올라오는 물은 흙탕물이지만, 펌프질을 계속할수록 맑고 투명한 물이 콸콸 뿜어져 나온다. 이 물은 생명수 같아서 가족 모두 마시고 사용하는 물, 일상에서 사용할 물, 가축이나 텃밭 식물들에게 사용할 물 등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에서 비롯된 경이로움이다. 우리에게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영혼을 위한 마중물 한 바가지를 구하고 싶어진다.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원함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줄 마중물 한 바가지가 없음에 갈증을 느낄 수 있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스님이 우리 바로 곁에 앉아 삶이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나직한 목소리를 속삭여주는 듯하다. 진정으로 내 것이 있는가, 죽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내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선한 행동으로 남은 체취는 영원히 남기 때문에 힘써 살피라. 또한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책 속에 담긴 법정스님의 철학은 이전까지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것들과 추구했던 가치들이 내 이기심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이에 더해 아주 훌륭한 인생 나침반 역할도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생각을 좀 바꿨더니 행복이 보이기 시작하고 운명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우리의 삶과 영혼의 행복한 마중물은 독서라고 기꺼이 말하고 싶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마중물 자체는 이전에 했던 펌프질로 얻은 물이다. 그 물이 새로 끌어올리는 물을 마중 나가듯 펌프 속으로 들어가 새롭고 창조적인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보다 먼저 겪고 체험하고 생각한 저자의 삶과 지혜를 마중물로 독자인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한두 권의 책으로 자기도 몰라볼 정도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펌프질로 처음 끌어올리는 물이 바로 마실 수 있는 청정한 물이 아니듯 독서도 펌프질처럼 거듭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고생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남이 고생하여 이룩한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독서다. _소크라테스

                                                          
살아가다 보면 어떤 작은 계기로 인생이 변화되는 순간이 온다. 흔히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부르며 생각지도 못한 일에서, 그리고 우연히 오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전환점의 요인들 속에서 단연코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라고 믿는다. 종종 언론매체의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 권의 책이 자기 삶을 현재로 이끌었다는 기사를 본다. ‘내 인생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만큼 책은 우리의 삶과 영혼의 마중물이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영혼을 새롭게 하는 창조의 마중물. 펌프가 아무리 좋아도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마중 나갈 물이 꼭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정신을 새로운 곳으로 인도할 마중물이 필요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해도 자신이 가진 소소한 지식과 경험으로는 어렵다. 


만약 좋은 변화의 기회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행운의 네 잎 클로버가 아닌 행복의 세 잎 클로버가 더 중요하다. 행운은 잠깐이고 우연하게 찾아오는 것이지만 행복은 지속적이고 언제나 얻을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은 세 잎 클로버처럼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책을 옆에 두는 것이다. 책이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만큼이나 작은 변화의 마중물을 때때로 선사해 준다. 자신의 삶과 영혼을 변화시키기 위한 마중물을 얻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어찌 보면 책을 읽는 것은 남이 고생하여 평생에 이룬 것을 한 순간에 뺏어 오는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가장 훌륭한 도둑질인 셈이다. 또한 책은 자신의 잠재능력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땅속 깊은 거대한 물줄기를 끌어올리는 마중물처럼 자신의 재능과 꿈을 일깨우는 마중물로 쓰일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하루 종일 사용할 물을 공급해 주는 것과 같이 한 권의 책이 행복한 삶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모든 것을 체험해서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우리 삶과 영혼의 마중물이 되는 이유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라 일컫는 사람 중의 한 명이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다. 가난했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많은 일을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차 안에서 신문을 파는 일이었다. 그는 기차 안에서 만난 앤더스 대령의 호의로 그의 개인도서관을 이용하면서 꿈을 키웠다. 앤더스 대령은 어린 카네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야, 책을 읽지 않으면 평생 신문배달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앤더스 대령은 자신의 집을 도서관으로 만들어 이를 이용하는 소년 노동자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마중물을 준비하도록 했다. 그는 책이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위한 마중물이란 걸 이미 터득했던 것이다. 카네기도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마중물을 책에서 얻었다. 그리고 책이 자신에게 준 소중한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전 세계에 2509개의 도서관을 세웠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책을 통해 자기 삶의 변화를 이끌고 더불어 사회와 나라를 위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선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제임스 앤더스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앨럭니 시의 다이아몬드 스퀘어 도서관 앞에는 그의 기념비가 있다. “제임스 앤더스 대령은 서부 펜실베니아 무료 도서관의 창시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도서관을 소년 노동자들에게 개방하였고 토요일 오후에는 직접 사서로 활동함으로써 책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숭고한 일에 바쳤습니다.

 

이 기념비는 소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령의 도서관을 통해 지식과 상상력의 보고를 접한 앤드류 카네기에 의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워졌습니다.” 『카네기 평전』에는 카네기 도서관의 유일한 관리 조건이 하나 나와 있다.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와 서민을 배려하라는 부탁이다. 그 당시에는 일요일을 제외하곤 혹독하게 일하던 때였으므로 그들이 책을 읽고 빌릴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밖에 없었다. 지금도 우리 도서관의 휴관일이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이 된 전통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사람의 위대한 의지가 세상의 규칙을 세운 순간이었다.


책이 독자에게 주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책의 내용에 따라 읽는 사람의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의식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삶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무엇을 원하든지 어떤 삶을 원하든지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좋은 연장도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도서관이 주변에 널려 있고 서점에 쌓여 있는 것이 책일지라도 책을 읽는 사람만이 마중물을 얻을 수 있다. 마중물이 부른 거대한 물줄기가 황폐한 땅을 적시고 새 생명을 잉태케 하는 힘이 있음을 믿는다면 책을 손에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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