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에 앉으면 가끔씩 이 ‘단서장사’를 씁니다.

애초부터 그저 한 두어 줄, 짧은 글만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쓰다보니 제법 긴 글도 있더군요. 읽어보면 한두 줄 글 만도 못한 것이 태반입니다. 오히려 한두 줄로 생각을 짧게 옮긴 글에서 사유와 상상이 깃들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말을 했다고 말이 아니듯, 글을 썼다고 모두 글이 아닙니다.

말하는 이의 참 마음이 들어있지 않으니 말이 아니라는 게요, 글 쓰는 이의 참 마음이 담겨있지 않으니 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게지요.

그래 이 몇 글자 쓰면서도 글이 아닐까봐 걱정이 됩니다.

 

일본의 지성(知性)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I/O 비율 100대 1”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I는 입력(Input:독서)이요, O는 출력(output:글쓰기)’란 뜻이지요. ‘100대 1의 법칙’, 즉 술명한 글 1편을 쓰기 위해서는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셈입니다.

 

오죽하였으면 영조(英祖) 11년(1735) 을묘년 과거시험 부의 시제가 <독서함이 연단(鍊丹)함과 같다.(讀書如鍊丹) >이겠는지요. ‘연단(鍊丹)’이란 신선(神仙)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 만드는 약입니다. 연단은 단사(丹砂) 따위 귀중한 약재를 특수한 방법으로 오랜 시일 동안 불에 담금질합니다.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면 마지막에 가서도 실패하고 말지요. 저러하게 책 읽기를 쓰기의 100배를 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판소리의 대가들, 똥물을 먹으며 득음을 했다잖습니까. 격렬한 고통을 수반하지 않은 글이 어디 글이겠는지요.

글 자 한 자 옮기기에 오금이 저립니다.

 

맹탕 헛소리인 ‘소경의 안질식 글쓰기’는 말아야겠습니다.

▲ 간호윤 고전독작가

순천향대학교(국어국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학과)을 거쳐 인하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1년, 경기 화성, 물이 많아 이름한 ‘흥천(興泉)’생이다. 두메산골 예닐곱 먹은 그는 명심보감을 끼고 논둑을 걸어 큰할아버지께 갔다. 큰할아버지처럼 한자를 줄줄 읽는 꿈을 꾸었다. 12살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꿈은 국어선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선생을 거쳐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그는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는다. 그의 저서들은 특히 고전의 현대화에 잇대고 있다.

『한국 고소설비평 연구』(경인문화사, 2002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이후, 『기인기사』(푸른역사, 2008),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김영사, 2010), 『당신 연암』(푸른역사, 2012),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조율, 2012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새문사, 2014 세종학술도서),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새문사, 2016), 『연암 박지원 소설집』(새물결, 2016년 개정판), 『아! 나는 조선인이다: 18세기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새물결플러스, 2017), 『욕망의 발견: 소설이 그림을 만났을 때』(소명출판, 2018),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2차 개정판, 한국경제신문i, 2018), 『연암 평전』(3차 개정판, 소명출판), 『연암 소설 산책』(소명출판, 근간), 『아! 조선을 독(讀)하다: 19세기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새물결플러스, 근간) 등 40여 권의 저서들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고전을 이용하여 현대 글쓰기와 합주를 꾀한 글들이다.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한 사이비 향원(鄕愿)은 아니 되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라 한다. 

 

‘단서장사’: 필자의 블로그에 있는 카테고리.

소경의 안질: 있으나 마나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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