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론’ 21세기 사회 시금석 삼아야

21세기 지구촌의 최대 화두는 ‘정의’다. 심각한 양극화와 빈곤의 악순환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고, 우리 사회는 커다란 고뇌를 안고 이 사안을 해결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 다양한 불공정과 갑질 사태 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양 극단을 구성하는 집단과 개인 모두가 정의를 외치는 역설적 상황을 맞고 있다. 과연 정의는 무엇인가?

 

정의(正義)는 사전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로, 대부분의 법이 포함하는 이념’이다. 단어의 뜻대로만 본다면 바르고 의로운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의는 우리 사회에서 큰 울림을 갖는 단어다. 미국의 사회학자 존 롤스는 자신의 저서 『정의론』에서 사회의 최소수혜자에 대한 배려와 정의를 강조했고, 21세기 사회적 양극화가 극대화된 현실에서 이같은 정의론의 추구는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롤스는 정의론을 통해 “각 개인은 '타인의 대등한 자유와 양립가능한 한 최대한의 기본적 자유'를 누릴 공평한 권리를 갖는다.”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a) 정의로운 저축의 원칙(just savings principle)에 의해 그 사회의 최약자인 최소수혜자에게도 이익이 되고, (b) 모두에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도덕의 황금률로 불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함께, 석가모니, 공자와 맹자 등 성현의 가르침을 통해 현실의 율법으로 역할해왔다. 하버드대학의 정치철학자인 마이크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와 관련한 각종 딜레마를 비롯하여, 공리주의·자유주의·칸트의 철학·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공동체주의를 정의라는 틀로 살펴보면서 정의 판단 기준으로 행복, 자유, 미덕을 들었다. 그는 공동체주의를 통해 공동선을 함께 추구해 나가는 것이 정의 실천의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작용함을 강조했다.

 

그런 정의론은 국제사회의 국가범죄를 단죄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법학부 교수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국제인권법 권위자이자 인권변호사인 필립 샌즈의 저서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저자의 외할아버지 가족에 대한 회고록이자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개념이 탄생한 뉘른베르크 재판을 둘러싼 국제정치 논픽션, 유대인 학살을 명령한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한 두 변호사의 법정 드라마는 감동적이다.

▲ 김흥국 칼럼리스트는 TBS 보도국장을 역임했고 현재 경기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다.

저명한 국제 인권 변호사이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인 저자는 2010년 국제법 특강을 위해 우크라이나 리비우를 방문했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 논픽션 정의론은 시작된다. 자신의 외할아버지 고향인 리비우에서 ‘대량 학살’과 ‘반인륜 범죄’라는 개념이 처음 싹텄다는 사실에 저자는 경악한다. 저자는 자신도 몰랐던 외할아버지(유대인)와 어머니의 삶을 하나씩 접하게 되고, 동시에 리비우대학의 두 법학도가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에서 등장하게 될 ‘인류 정의의 기준’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나치 점령 하의 유럽에서 살았던 유대인 외할아버지의 비밀스런 삶을 추적하는 동시에, 라파엘 렘킨(제노사이드)과 허쉬 라우터파하트(인도에 반하는 죄) 교수의 국제 인권법의 기원을 추적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나치에 점령당한 유럽에서 가족들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거치면서 국제인권법, 인류 정의의 기준의 기원과 탄생 과정을 동시에 추적한 이 책을 ‘2중의 탐정소설’이라고 표현했다. 산더미 같은 과거의 문서들, 퇴색한 사진, 판독하기조차 어려운 메모, 오래된 교실, 기차역의 잔해, 불타버린 유대교 회당의 흔적, 버려진 점포, 유대인 말살수용소 유적, 졸업장 등 전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미미한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몇 년에 걸쳐 끈질기게 추적한 저자는 법학교수 허쉬 라우터파하트가 뉘른베르크에 도착하는 상황을 소설처럼 긴박하게 그려내며, 저자 자신의 조상이 허쉬 라우터파하트가 기소하고 판결한 사람에 의해 몰살당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나치 전범들에 대한 국가범죄, 반인륜범죄의 현장을 추적할 수 있다. 역자인 정철승 변호사는 2019년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조차 규명되지않고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친일파들의 준동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침략국 일본에 의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막대한 수탈과 참혹한 피해를 당했던 역사를 치욕적으로 겪어야 했다. 물자와 자원, 문화재 등 국부를 수탈당한 물질적 피해는 차치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명이 살상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했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유린된 것은 생생한 역사와 이를 실제 경험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징용징병 피해자를 비롯해 무수한 역사적 증거가 제시되어 있다. 그러한 학살과 살상, 착취와 유린이 바로 국제법상의 ‘인도에 반하는 죄’인데, 제국주의 일본의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자행한 숱한 ‘인도에 반하는 죄’로 처벌받은 자는 없었으며, 도리어 아베 신조 정권은 이를 부정하고 한국에 경제보복을 가하는 황당하고 분노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는 시대를 초월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나간다. 중세시대의 부정부패와 부정의,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에 의해 행해진 무수한 국가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끔찍한 죄들, 해방후 군부독재와 국정농단에 의해 이뤄진 많은 범법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역사에서 다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존 롤스의 『정의론』, 마이크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필립 샌즈의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고 고민하며 미래를 개척하게 하는 소중한 책들이고, 삶과 역사의 양식이다. 꼭 읽어보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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