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갈등과 대립의 나라다. 그래서 협상이나 타협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상대 진영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삭발과 단식, 장외집회로 끝없는 대결과 갈등 증폭에 나서는 한국사회의 정치권이 그렇고, 경영-노동계의 대립도 마찬가지다. 갈등을 해결하는 협상과 대화, 토론문화가 절실하다. 내 말만 하는 일방적인 연설이나 스피치보다는 국민과 청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며 이루는 대화형 스피치가 각광받는 것도 이같은 세태를 반영해서일 것이다.

▲ 김흥국 칼럼리스트는 TBS 보도국장을 역임했고 현재 경기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다.

사회적 갈등은 한국사회의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저해하고, 다양한 비효율과 집단 간 대립, 집회 또는 시위 등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 영역의 경우 정부기관 노조, 비정부기구(NGO), 시민단체 등이 관련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마찰이 발생할 경우 손해나 비용. 경제적 손실, 기업 이미지 손상, 글로벌 조직의 사기 및 효율성 저하 등으로 나타난다.

대다수 국민들과 많은 전문가들은 각종 여론조사나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사회의 갈등 수준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집단간의 갈등은 서구사회에 비해 더욱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며 동시다발적 특징을 보이며, 특히 2016년 탄핵 국면 이후 연령별 세대갈등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는 전근대/근대/탈근대, 독재/민주화 등 상이한 역사적 경험들이 한 세대 내에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경험하고 있으며, 계층, 지역, 세대 등의 갈등요인과 이념갈등이 복합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득불균형 정도, 민주주의 성숙도,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지표로 사용되는 사회갈등지수는 세계은행이 측정하는 '정부효과성지수'와 민주주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민주주의지수'의 산술평균값으로 소득의 불균형 관련 지표인 '지니계수'를 나눠 산출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국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0.71로 터키(1.20), 폴란드(0.76), 슬로바키아(0.72)에 이어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44)에 비해 1.5배정도 높은 수치로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갈등관리역량의 경우 정치행정역량 28위(정부관료제 역량 28위, 대의제 역량 32위, 사법제도 역량 25위), 재분배역량 33위, 시민사회역량 26위 등으로 모두 하위권이었다. 2005-2015년 사이 우리나라의 잠재적 갈등과 정치행정 부문의 갈등 관리역량이 악화되는 추세로, 잠재적 갈등 순위는 32위 → 30위 → 34위로 악화되고 있으며, 갈등관리역량 중 정치행정역량은 2005년 25위에서 2015년 28위로 하락 추세다.한 사회의 노사 갈등, 윤리적 갈등, 문화적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지역 갈등 같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을 합쳐 수치로 표현한 사회갈등지수는 국가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낮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높을수록 사회 갈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9년 삼성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한국의 사회 갈등과 경제적 비용'이라는 보고서 이후 우리나라의 갈등 지수는 매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가운데 3~4번째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2015년 기준 한국은 잠재적 갈등요인(35위)과 갈등관리역량(32위) 모두 비교대상국 37개국 중 최하위권으로, 가치관 격차는 최하위(37위)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35개 회원국 대상 조사 결과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한국은 26.6%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평균(36.0%)에도 훨씬 못 미치는 23위 기록했다. 덴마크(74.9%), 노르웨이(72.9%), 네덜란드(67.4%), 스웨덴(61.8%), 일본(38.8%), 미국(35.1%) 등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불신공화국인 셈이다.

 

한국사회, 사회적 신뢰의 결여 따른 갈등관리 비용은 최대 246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인당 GDP의 27%를 사회적 갈등관리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연간 최대 246조원이며 모든 국민이 매년 900만원씩을 사회적 갈등 해소에 쓰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사회갈등지수가 상승하면 1인당 GDP가 하락하는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한국의 경우 사회적 갈등 수준이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된다면 실질 GDP는 0.2%포인트 정도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사회의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정치 분야의 갈등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여야 대결과 야당의 극단적 장외투쟁이 반복되면서 매 현안마다 대결하고 있으며, 사회갈등 역시 경사노위 등 여러 갈등 조정 또는 협상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현실 진단을 통해 우리 사회에 협상문화가 필요함을 절감할 수 있다. 협상과 관련된 책을 읽고 협상문화를 널리 보급할 필요성을 절로 느끼게 된다. 미국의 경우 하버드대학이 일찌감치 협상학을 비즈니스스쿨과 로스쿨의 필수 과목으로 선정한 뒤 협상연구소(Program on Negotiation)를 설치하고 다양한 협상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성공하는 협상의 패러다임과 전략을 구축한 탓에 사회 전반에 협상문화가 확산됐다.

협상의 위력은 현실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협상단은 2015년 7월 오랜 협상 끝에 ‘이란 핵 협상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대해 AP, CNN 등 주요 외신은 13년 만에 일궈낸 역사적인 성과라고 보도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직접 비난하고 압박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왔다. 2015년 12월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 195개 협약 당사국이 프랑스 파리에서 2주간에 걸친 협상 끝에 2020년 이후의 새 기후변화 체제 수립을 위한 합의문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최종 채택했다. 국제사회의 갈등 가득한 외교무대를 빛내는 것은 역시 협상문화라는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협상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읽어야 할 협상의 최고 저서는 하버드대학의 로저 피셔, 윌리엄 유리, 브루스 패튼이 함께 쓴 <예스(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이다. 이 책은 사람과 문제를 구분하고, 입장이 아닌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창의적이고 공정한 옵션을 상대방과 함께 개발해서 어떤 상대나 어떤 수준에서도 협상에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협상학의 명저로 꼽히고 있는 협상필독서다. 윌리엄 유리가 쓴 <노(NO)를 극복하는 협상법>도 난관을 돌파하는 협상전략과 적을 동반자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협상 기법과 노하우를 전해 꼭 읽어야 할 협상서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협상의 대가인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 로이 레위키 등이 쓴 <협상론: 원칙과 테크닉> 등 다양한 협상서적을 읽고, 협상학 강의를 듣고 실전협상을 경험하면서 협상문화를 널리 보급한다면, 지금의 갈등과 대립의 문화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세치 혀로 강동6주를 되찾았던 서희 장군이나 중동전쟁을 막아낸 캠프데이비드협상 등 다양한 성공사례를 만들어가야 더욱 살기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협상학 독서로 2019년 가을을 살찌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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