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에게 왜 독서를 하는가 물으면 대답이 평이하다. 어른이든 아이든 별반 다르지 않다. 지식을 얻기 위해, 교양을 쌓기 위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등등. 무엇이든 목적이 분명치 않으면 과정이 지그재그로 흔들리고 방향성이 깨어진다. 그리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결과도 만족하기 어렵다. 독서의 목적을 필자처럼 글쓰기로 정하면 어떨까. 눈으로 하는 독서는 생각없이도 가능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을 해야 할 수 있다. 정작 생각이란 단어는 설명하기 애매하다. 하지만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를 보면 생각은 판단하고 기억하고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이 말은 독서는 결국 생각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생각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금방 사라져 버린다. 생각을 붙들어 매어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 정은상(창직학교 맥아더스쿨 교장)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면서도 자신이 독서를 별로 하지 않는다고 겸손해 한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다. 독서를 하고도 뭔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서 마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밑줄 그은 부분을 부분필사하고 독후감을 남기거나 서평을 쓰면 확실하게 남는 게 있다. 필자의 경우는 매주 서너편의 창직칼럼을 쓰는데 만약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칼럼을 쓰기 시작한지 10년이 조금 넘었지만 지금까지 매주 칼럼을 쓰게 된 건 오로지 강력한 독서의 힘이다. 필자는 독서를 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칼럼 제목이 있으면 즉시 메모해 둔다, 언제나 메모장에는 대여섯개의 칼럼 제목이 기다리고 있다. 매주 차곡차곡 쌓아둔 제목을 꺼내어 쓰고 또 쓴다.

조만간 세번째 책이 나온다. 칼럼을 모아 나온 책인데 이번 책의 교정을 보면서 글이 좀 더 나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독서를 통한 필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일까? 정작 필자는 느끼지 못하지만 글을 읽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가보다. 글을 쓸 때 읽은 책은 덮어둔 채 제목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책은 그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글을 쓸때는 필자의 생각을 그대로 담기 위해서이다. 책에서 뭐라고 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필자의 생각을 담아 쓰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며 칼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필자에게는 독서의 이유가 명확하다. 잠자는 생각을 깨우고 나아가 호기심을 충전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다.

독서는 이제 필자에게 평생 과업이다. 그럴 리가 없어야겠지만 감방에 들어간다고 해도 책이 있으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유배지에서 독서하고 글을 썼다. 평범한 일상보다 극한 상황에 봉착하면 분주한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 독서를 더 많이 하게 되고 절제된 글쓰기가 가능한가보다. 쉬지 않고 열심히 책을 쓰는 수많은 저자들과 어려운 여건에서도 꾸준히 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인쇄소에 감사한다. 집에 앉아서도 보통 하루만에 책을 배달해주는 온라인 서점들이 고맙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책 한권을 들고 다니면 하루가 행복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다음 읽을 책을 쳐다보면 흐뭇해서 저절로 미소짓는다. 독서의 목적이 분명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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