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에스더 미러리스트대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될 때가 있다. 바로 택시 기사님과 대화할 때다. 승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주로 기사님 쪽에서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내 메모장에는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 내용이 적힌 메모가 꽤 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메모광처럼 생각되겠지만 모든 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나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기록할 뿐이다. 나는 여러 도구를 사용해서 메모를 하는데 순간의 단상을 기록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는 휴대폰이다. 본래 멀미가 있어서 차를 탈 때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지만 기사님과 대화하다 보면 멀미의 고통을 잊고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을 때가 있다. 기사님이 살아온 날들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할 때다. 그래서 메모도 대부분 그런 내용이다.

 

작년 12월 31일에 만났던 기사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지인들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기 위해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 여행 가시나 봐요? 캐리어를 보고 기사님이 먼저 말을 건네셨다. 목소리에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니요. 새해 준비를 위해 여행을 다녀왔어요. 기사님 목소리가 참 밝고 좋으시네요. 라고 내가 먼저 칭찬을 했다. 그러자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하는 일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만드는 일이에요. 자신의 일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기사님의 말씀을 듣고 왠지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실 것 같아 휴대폰의 메모장을 열고 메모할 준비를 한 채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나는 다시 질문했다.

 

만약 한 손님이 출근길에 내 택시를 탔는데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한다면 온종일 안 좋은 상태로 보내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내가 어떻게 손님을 응대하느냐에 따라 손님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나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만드는 사람인 셈이죠. 그 말을 듣고 기사님의 목소리에서 느껴진 긍정적인 에너지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기사님은 이어서 모든 세상사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즐겁게 일하면 모든 것이 즐겁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명예퇴직을 하고 제2의 연금이라 생각하며 택시 운전 일을 하신다는 기사님에게 이 일의 정의는 상대방의 하루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손님이 목적지에 갈 수 있도록 운전한다는 일차적인 일을 넘어 자신만의 정의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 분의 멋진 직업 마인드 덕분에 작년 12월 31일 6시 18분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

 

기사님은 결혼한 지 34년 차인데 아직도 아내와 연애하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다. 작년에 부인이랑 유럽 패키지여행을 열흘 정도 다녀오셨는데 앞으로도 여행을 많이 가실 예정이라고도 하셨다. 그 후로 항해사로 일하는 아들 이야기, 운동 이야기, 택시 운행하면서 일어났던 여러 에피소드 들이 이어졌다. 모든 이야기 속에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녹아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한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은 기분이었다. 나 혼자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누구나 마음속에 책 한 권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만난 기사님들 중 상당수가 20년, 30년 이상 다른 일에 종사하다가 마지막으로 택시 운전을 선택한 경우였다.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무엇이 아까운가? 그 분들의 삶의 노하우가 사장되는 것이 아깝다. 삶의 노하우는 무형의 자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를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종종 기사님들과 대화를 하다가 책을 쓰시라고 권한다. 그러면 대부분 내 주제에 책은 무슨 책이냐면서 손을 내저으신다. 나는 책을 쓰시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블로그에라도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책 쓰기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의 저자 양원근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책은 성공한 사람이 아닌,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 쓰는 것이다. 책은 성공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거창한 스펙이 있어야만 책을 쓰는 시대가 아니다. 독자들은 유명인들, 수려하게 잘 쓰이거나 문학적 가치가 있는 책만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같은 눈높이에서 책을 읽고 쓰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이제 조언보다는 위로를 원하고, 가르침보다는 공감을 원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거대한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내게 위안이 되는 메시지를 챙기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행위, 즉 책을 쓰고 읽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낀다. (책쓰기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발췌)

 

 

나는 오랜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가 지식콘텐츠가 되어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남겨지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명예퇴직과 함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가 사라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명예퇴직 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그동안 쌓아온 자신만의 삶과 노하우를 정리하여 지식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노하우들을 후대에 전달할 수 있겠는가. 지인 한 분이 명예퇴직을 준비했는데 회사에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지만 실상 퇴직 후에 큰 도움은 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퇴직을 앞둔 분들이 마무리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기록하고 관련된 책을 읽으며 정리한다면 이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학원생들이 졸업하기 위해 논문 한편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기사님께 책쓰기를 권하면서 책 선물을 한 권 드리겠다고 연락처를 드렸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기사님... 꼭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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