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민규(지식혁명연구소 소장)

사랑이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떨린다. 사랑에 대한 그 설렘을 알기에 그런 것 같다. 늘 같이 있고 싶고, 방금 헤어지고 뒤돌아섰지만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며, 헌신을 감수할 수 있고, 오롯이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들게 하는 감정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사랑을 위해 막대한 유산도 포기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위력을 발휘한다. 사랑에 빠진 당사자가 아니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 사랑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첫사랑은 가장 가슴 설레고 떨림이 있는 지극한 사랑이다. 
 
행복할 때나 즐거울 때, 좋은 생각을 할 때면 엔돌핀이 나온다. 이 호르몬은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엔돌핀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웃기도 한다. 자신의 뇌가 진짜 웃음인지 가짜인지 구분 못 한다는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로 웃음치료법이 개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발견되었는데, 엔돌핀보다 4000배나 높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백혈구의 수치를 올려 면역체계를 최상의 상태로 올려주는 것이다. 다이돌핀은 진한 감동을 받았을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생성된다. 사랑을 하면 얼굴이 밝아지고 혈색이 좋아지는 까닭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원수지간인 두 집안에 화해와 평화의 기적을 일으켰다. 


독서 중에도 이러한 다이돌핀이 생성된다. 독서의 유익을 즐기는 사람들 얼굴이 햇살처럼 빛나고 근심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독서의 즐거움은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즐거움과 맥이 통한다. 독서는 미성숙한 성품을 단련하여 위대한 인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키고, 쓰려져가는 집안을 살리고, 바람 앞에 놓인 촛불 같은 나라를 구하기도 한다. 정약용은 정치적 모함으로 떠난 유배지에서 무너진 문중을 걱정하며 아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지를 보냈다.

 

"폐족일수록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옷소매가 길어
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하듯 머릿속에 
5000권 이상의 책이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단다. 독서야말로 사람이 하
는 일 가운데 가장 깨끗한 일이다."

 

조선의 사상가이자 저술가인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독서의 즐거움에 빠지면 언제나 손에 책이 들려 있고, 잠자리에 들다가도 읽고, 여유 시간뿐만이 아니라 틈새 시간에도 읽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읽는다. 책의 소유를 넘어 자신의 삶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갖고 어떠한 즐거움도 포기하고 책 읽기를 즐긴다. 세상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자신이 만물을 지배하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랑의 기쁨과 독서의 즐거움이 유사한 점이다.사랑을 하면 구름 속을 떠다니는 무아지경이 되는 것처럼 독서의 즐거움은 몰입의 상태에서 밀물처럼 밀려온다. 사랑이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온전히 책에 집중할 때 몰입된다.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이 사랑을 유지시키고 깊어지는 것처럼 몰입하는 순간이 빈번해지면 살아가는 힘을 책에서 얻게 된다. 


사랑도 독서도 호기심에서 시작되지만 결과는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엄청나다. 첫사랑이 가슴과 가슴이 잇닿는 아름다운 감정이라면, 독서 또한 지고지순하고 아낌없이 주는 책 사랑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는 “책은 견실한 세계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 세계에는 즐거움과 행복감이 무성하다”라고 고백했다.독서는 순수한 행위이며 즐거움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새로운 책을 잡을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책의 표지나 띠지에 있는 글을 읽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번진다. 손은 저절로 책장을 넘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에 파고든다. 몰입의 즐거움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면 온몸은 다이돌핀으로 넘쳐나고 행복감이 밀려온다. 사랑도 독서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진정한 울림이 있다. 책을 읽을 때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행동의 결과나 외부로부터 온 느낌이 아닌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기쁨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기쁨을 외면한 채 홀로 독서를 즐기는 책벌레들이 적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느낌을 오롯이 즐기기 때문이지 싶다. 이런 감동을 모르는 이들은 즐길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리타분하게 책이나 읽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책이 주는 이로움을 쉽게 비유할 수는 없다. 독서의 감정은 벅차고 광대하며 경이롭다. 책 읽는 즐거움을 가장 근접하게 설명한 사람으로 나는 조선의 책벌레 이덕무를 들고 싶다. 

 

"책을 대할 때마다 눈과 귀, 코, 입 등 모든 감각이 깨어나 
살아 움직이고 신경과 핏줄을 건드리고 피가 도는 그 흐
름은 심장까지 전해져 마침내 두근두근 뛰게 하며, 감격
에 겨운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온 우주가 다시 깨어 
일어나기도 한다."

 


우주까지 깨우는 독서의 지극한 감흥이 전해진다.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도 오롯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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