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섭 작가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죠.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할까요? 독서가 아이들에게 알려줄 가장 근원적인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두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하나, 상상력과 창의력의 계발

둘, 비판할 수 있는 능력 키우기  

독서를 통해 이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면 좋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 번째, 상상력과 창의력 계발은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추구하는 바입니다. 스토리텔링, 책 속 주인공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때문에 이 프로그램들을 구상할 때는 참가자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높아질까를 염두에 두면 좋습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일수록 만족도가 높습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에 대해서는 독서 분야 말고서도 여러 교육 분야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지요. 창의수학, 창의과학, 창조경영까지. 상상, 창의, 창조라는 단어가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유행처럼 지나갈지도 모르지만 책은 그 모든 것을 아우릅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난센스가 있습니다. 창의체험을 하면서 강사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 여기를 보세요, 이것을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야 예쁜 작품이 나와요. 그러니까 여기 그려진대로 똑같이 해보세요“ 이게 무슨 개그콘서트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강사 책임이 아닙니다. 부모님들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정형화된 멋진 작품을 만들어오길 기대하죠.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아이가 글을 잘 못쓰거나 엉뚱한 그림을 그리면 화부터 냅니다. 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으니까요. 상상에 관한 프로그램에 참여시켜놓고 아이가 상상한 작품을 만들어 오면 화를 내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죠. 부모님의 이런 반응에 강사는 당연히 자유스럽지 못합니다. 어른 흉내내는 글, 기본모델과 똑같은 미술 작품이면 칭찬해 줍니다. 이래서는 창의 프로그램이 될 수 없지요. 아이들을 많이 풀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입이 닳도록 떠들어 대는 ‘책을 읽자’는 말에 아이들은 어떤 반응일까요? 어릴 때 공부를 하려다가도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말을 먼저 들을 때면 괜히 공부하기가 싫어진 경험은 누구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독서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이들이 책을 읽으려다가도 괜한 반항심에 일부러 책을 멀리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책의 목적이 ‘지식과 경험의 전수’라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굳이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영화감상, 음악, 여행, 만남을 통해 얻은 직접적인 경험이 더욱 소중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직접적인 경험을 못하니까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는 것이죠. 여기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등산을 통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전해주기 위해 산으로 데려갈 생각은 안하고 아이들에게 산에 관한 책을 읽고 느껴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요? 이렇게 되면 당연히 책에 대한 거부감부터 들죠.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숙제가 무엇일까요? 1위가 독후감, 2위가 일기입니다.

책이 매개물이 아니고 목적물이 되니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책을 읽자고 강요하지 말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책에서 찾게 해야 합니다.

도서관 주간, 독서의 달, 책의 날, 독서축제 등이 다가오면 선생님들의 머리가 아파집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데 그게 그거고, 작년에 했던 프로그램을 또 하자니 성의가 없다고 할 것 같고,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시죠.

새로운 독서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하십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책에 관한 프로그램을 짜려고 하니, 즉 책을 먼저 보게 되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책을 읽고 그것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려고 하지 마세요. 재미있고 유익한 활동을 보고 거기에 맞는 책을 찾으면 훨씬 쉽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네에 뻥튀기 아저씨가 있다고 합시다. 이분은 ‘뻥이요’라는 말을 외치기 전에 동물 소리를 흉내내고 기계안의 쌀을 튀기는 시간에 우스개 소리로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분이죠. 그렇다면 이 아저씨와 뻥튀기를 어떻게 프로그램에 끌어 들이느냐는 것을 고민하면 됩니다.

토끼뻥튀기(정해왕 글/한선현 그림, 길벗어린이)란 책이 있습니다. 감이 오십니까? 뻥튀기 기계 모형을 갖다놓고 (그림이라도 좋습니다.)조그만 물건을 넣고 커지면 어떤 모습이 될지, 또 여러 개를 함께 넣고 튀기면 어떤 새로운 것이 나타날지 그려 보게 하세요. 아저씨를 초청하여 책을 읽고 뻥튀기를 하고(진짜로 하면 난리날테니 입으로 해야되겠죠^^) 튀밥을 다함께 나눠 먹으며 서로 그린 그림을 이야기합니다. 어떻습니까? 아이들에게 이 책은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습니다. 상상과 창의력을 높이는 목적이 들어갔습니다. 재래시장 활성화와 지역 경제 살리기에도 일조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먹는 것을 주니 참여 열기도 뜨겁고 어른들도 옛 향수에 젖을 수 있습니다.

세상 도처에 프로그램 거리가 널려 있습니다. 책을 먼저 보지 마세요. 재미있는 놀이를 찾고 다음에 적당한 책을 대입하시면 창의 프로그램 기획의 고수가 됩니다.

 

두 번째, 비판력 키우기는 독서토론, 글쓰기 등을 통해 이루어지지요. 보통 청소년 때 부터 이런 프로그램들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나아가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르게 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독서 교육프로그램이 되겠지요.

초등학생에게는 비판과 토론이라는 것이 다소 부담되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학생들 간에 편차도 있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자칫 감정만 상해지기 쉽습니다.

딱딱하지 않은 진행과 쉬운 주제로 재미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주 논쟁하는 사형제도, 개발과 보존 등 시사 문제는 물론 정몽주와 이방원, 김상헌과 최명길 등 역사 속 인물들의 입장과 토끼와 거북이, 심청전 등 누구나 아는 이야기로도 다양한 토론을 이끌 수 있지요. 여기에서 중요한 건 누구 의견이 옳은가가 아니고 ‘왜’ 그런 가겠죠? 그리고 2주 후에 반대 의견을 주장할 수 있도록 책을 찾아 읽고 오게 하면 저자의 논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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