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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황민규의 讀한순간 독_(5) 지식의 향연으로 빠져들어라
황민규(지식혁명연구소 소장)  |  mkedwar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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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2  15: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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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민규(지식혁명연구소 소장)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갖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철학적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시간이 
온다. 사람에 따라 일찍 올 수도 늦게 올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겪는 과정이다. 독서 인생의 필수코스라 할 수 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며, 독서의 목적이 행복한 삶을 사는 지혜를 얻는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야 행복의 기준을 잡을 수 있다. 삶의 본질과 세상의 근본 원리를 알아야 잘 살 수 있는 방법과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지 않겠는가. 단기적인 목표를 위해 책을 읽더라도 궁극적으로 마주치는 게 철학이다. 

 

철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사람이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국가』, 『향연』 등 많은 글을 남겼다. 그 중 『향연』은 에로스를 다양한 시각과 수준에서 볼 수 있게 만든 뛰어난 작품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를 아름다움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진 신으로 보고, 출산의 동기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데 있다, 라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는 백미로 꼽힌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책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말이나 언어의 유희가 아닌 황홀한 지식의 향연이다. 자신의 죽음을 변론하기보단 삶과 인간, 정의와 올바른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교과서다. 쉬운 말로 변론하지만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보고 민주주의에 대해 환멸을 가졌던 플라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저급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적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각성하게 한다. 직접 당하는 고통이 아니면 보신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민주주의의 병폐를 언급한 것이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그 진가를 드러내는 『향연』과 『소크라테스의 변론』 속 지식의 향연은 철학을 동경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인문고전을 즐겨 읽는다. 수백 년 동안 사랑받아 온 책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전작가들 대다수는 평범하지 않은 귀족 가문이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작가라도 소시민의 삶을 그린 작품보다는 화려하고 풍족한 귀족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 당시에는 작가라는 직업만으로는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는 점과, 글은 가진 자와 기득권층의 전유물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환경 탓에 고전을 읽으면 상류 사회의 특별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와 귀부인들, 하녀의 손길이 느껴지는 연미복을 입은 멋진 신사들, 마차를 타고 웅장한 대저택으로 들어가는 모습, 분주하게 움직이는 하인들, 와인 잔을 들고 서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더러는 테이블에 앉아 놀이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들은 서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밤이 늦도록 사랑과 친구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한다. 이런 풍경은 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춤추는 육체적 쾌락도 좋아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도와주는 지식의 향연 또한 좋아한다. 일시적인 쾌락보다 지속적이고 더 큰 기쁨인 지적 에로스를 사랑한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교양을 위한 문화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독서는 지식의 향연이다. 우리는 고전 책 속의 상류층들이 나누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지식의 향연을 벌이기엔 지식의 역량이 모자란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시간과 장소, 비용의 한계 덕분에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한계를 넘으면 한계가 없어진다. 바로 좋은 책 속으로 들어가 멋진 사람들과 지식의 향연을 벌이는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아하고 품격 있는 지식의 향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독서는 근본적으로 대화이며 소통하기다. 책 속의 인물들과 대화하고 때때로 창조주인 작가와도 대화한다. 살아 있는 대화, 즉 질문과 대답을 잘 주고받는 것이 책을 잘 읽는 방법이다. 책 속에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신비한 의미가 가득한 말이 있고, 자신의 한계, 습관, 삶의 굴레를 깨는 혁명적인 언어가 있다. 


환상적인 만남이며 황홀한 지식의 향연이다. 향연이란 특별히 융숭하게 손님을 대접해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해 책 속의 인물들을 대한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경과 예의를 갖추고 책 속 장면으로 들어간다. 나는 날마다 지식의 향연을 경험한다. 책 속에서의 지식의 향연은 성대하고 즐거운 잔치다. 황홀한 지적 대화가 있는 잔치다. 즐겁고 인상적이었던 만큼 지식의 향연은 자신의 삶 속에 녹아든다. 자신의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된다. 책 속 인물들과의 지적 대화는 현실에선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깊이와 감동이 있다. 형편없는 질문에도 짜증내거나 화냄이 없다. 거기에 더하여 한 푼 없어도 큰 잔치를 벌일 수 있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지식의 향연은 삶의 의미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를 알아가는 인문학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는 달리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거의 없고 통섭의 힘을 강조하는 시대엔 어느 분야나 지식의 향연이 가능하다. 아니,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에서 더 많은 기쁨을 얻을 수도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향연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도록 즐길 수 있는 힘이 있다. 책 읽기는 즐거움이다. 즐기지 못하면 이해되지 않고 지혜가 될 수도 없다. 지식의 향연을 자주 벌이면 여유 있는 인생이 가능해진다. 분주함 속에서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지식의 향연 같은 위대한 독서가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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