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상(창직학교 맥아더스쿨 교장)

음식이나 화장품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무엇이든 시작할 때가 있으면 마쳐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지식과 정보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지식과 정보 중에는 다음 세대에 적용하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업데이트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독서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독서를 통해 인간은 진화하고 성숙한다. 마치 와인처럼 독서한 내용은 인간이라는 통 속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인간은 바다와 같다. 모든 것을 받아주고 숙성하고 우려낸다. 좋은 책이든 나쁜 책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소화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정제되어 나온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인품마저 조금씩 달라진다. 이게 독서의 진수다.

 

식품이 유통기한을 지나면 썩는다. 악취가 풍겨나기 시작한다. 반대로 독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광산에서 금을 캐어내듯 귀중한 지혜의 열매를 생산한다. 우리가 흔히 읽는 책 중에는 1,000년이 훨씬 넘은 책도 꽤 있다. 오래된 책은 오래된대로 최근에 나온 책은 따끈따끈한대로 우리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독서는 지혜의 샘에서 펌프로 물을 긷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독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독서의 점점 더 깊은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실제로 필자도 독서하면서 읽어야 할 책을 많이 소개받는다. 저자들의 독서 목록은 큰 도움이 된다. 선각자들의 독서와 깨달음은 대단한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는 독서는 사람을 크게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한번 독서에 심취하면 벗어나기 어렵다.

 

인류의 역사는 활자 기술의 발명으로 급속하게 발전해 왔다. 만약 책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여전히 개화되지 못한 원시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역사는 기록에 의해 점점 새로워지고 인간은 점점 더 판단과 기억과 호기심을 가진 생각하는 존재로 진화해 왔다. 21세기 들어오면서 이제 인공지능의 발달과 함께 공교육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웬만한 지식과 정보는 이제 모두 손 안에 든 스마트폰만으로도 찾아낼 수 있다. 평균치 학생을 만드는 학교 교육은 미래 시대를 살아가기에 역부족이다. 오히려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학교 교육도 이런 점에서 과감한 교육 혁명이 요구된다. 부모와 교사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자녀와 학생들을 살린다.

 

미국 최고의 학습성과를 자랑하는 세인트 존스 대학은 대학 4년 동안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고 사유하고 질문하고 자신만의 독서노트를 만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수업 시간에는 교수 두 명이 참여하여 학생들이 읽어 온 책을 중심으로 토론을 하는데 교수들은 안내만 할 뿐 가르치지 않는다. 달달 외우기만 했던 한국 학생들이 처음 이 학교에 갔을 때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21세기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인문고전이 웬말인가. 이게 바로 독서는 유통기한이 없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독서만이 우리 모두의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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