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무박이일 12시간 책읽기(성인 대상)

- TV, 컴퓨터, 핸드폰을 끄고 무엇이든 읽을 자유, 아무것도 읽지 않을 자유

- 야심수다 (북토크)

- 깜짝 인물과 함께하는 조식

 

▲ 박형섭 작가 겸 상상크리에이터

파주출판도시에서는 일 년에 두 차례 큰 축제가 열리는 데 5월 어린이 책잔치와 가을에 열리는 파주북소리가 그것입니다. 북소리 축제는 그 전부터 가을 책잔치로 진행되어 오던 것이 2011년부터 규모가 확대되었습니다. 늦가을에 열리던 가을 축제는 도시와 일상생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출판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일탈이라는 단어 하나에 그 무슨 내용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오히려 어떤 내용을 넣는 것이 또 다른 구속이 아닌가 생각되었죠.

동남아 리조트 광고에 이런 말이 있죠. ‘무엇이든 할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 성인 20명을 초청해 자유스럽게 책을 읽다가, 사색하다가, 눈도 붙이면서 새벽에 산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일부러 일정 자체를 느슨하게 꾸몄습니다. 홈페이지에 간단한 사연과 함께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전국에서 100명 가까운 분들이 신청을 해 깜짝 놀랐습니다. 신청 사연을 읽어보니 선정을 안 할 수 없는 분들이 많아 지역과 연령, 성비를 골고루 분배하여 30명을 선정하였지요.

행사 날 오후 5시가 되어 참가자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려고 문을 여는 순간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유명 방송과 언론에서 취재를 나와 앞줄에는 그 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더군요. 마치 유명 인사 기자회견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그저 편하게 책 옆에서 쉬다 가자는 것인데.. 일이 커져버렸어요. 한편으로는 책 행사가 얼마나 없었으면 별 것 아닌 이런 것을 다 취재하러 올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들 크게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녁식사 후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역시 음식을 함께 먹으니 저절로 친해지더군요. 그 다음 편하게 독서 시간을 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중간에 자도 되느냐. 몇 권을 읽어야 되느냐’하고 질문을 하는데 극장에서 영화 오래보기를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까페형 공간에 5백여 권의 책을 쌓아놓고 읽고 싶은 것을 마음껏 읽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12시가 넘고 새벽 2시가 지났는데도 한 분도 피곤해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어서도 주무시는 분 없이 모두가 밤을 새웠습니다. 놀람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앞에 두고 어떻게 잠이 오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5백 권 중에서 읽을 책이 없어, 그럴 줄 알고 자기가 읽을 책을 따로 가져왔다고 해서 저를 당황케 하였습니다. 준비의 소홀함을 이야기한 줄 알고 내심 언짢았는데, 전부 읽은 책이라고 하더군요. 참가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분이 서울 응암동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 씨였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책으로 꾸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 그가 운영하는 책방은 반드시 본인이 읽고 난 책을 꽂아 놓는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독자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해주고 관련된 다른 책까지 소개해 줄 수 있는 고수인 것이죠. 책뿐 아니라 음악, 영화에도 조예가 깊어 펼치는 문화 활동에 항상 감동합니다. 책 때문에 만난 소중한 인연입니다.

아침까지 책을 읽은 참가자들은 출판사 대표들과 식사를 합니다. 작가들이나 편집자와 만남 시간은 있었어도 출판사 대표와의 만남은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그 분들의 책에 대한 철학, 좋은 책을 만들 것이냐, 잘 팔리는 책을 만들 것이냐에 대한 고민, 베스트셀러 탄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아침 식사 후 행사는 종료되는 데 대표님들과의 대화가 2차로 이어져 저녁 무렵에야 끝났답니다. 이 프로그램은 언론에서도 관심이 높아 동아일보, EBS와 다음 해에는 KBS 문화지대를 통해 자세히 보도되었습니다.

그 후 참가자들의 의견을 철저히 반영한 몇 번의 행사를 더 가졌습니다. 밤 12시에 작가와 이야기하는 ‘어제와 내일 사이’, 참가자끼리 이야기하는 ‘야심수다’ 등의 순서가 만들어졌고 다음해 에는 가족 책읽기로도 이어졌습니다. 가족 대상은 아이들이 있으니 아침부터 저녁때 까지였죠. ‘책으로의 일탈’ 여러분도 꿈꿔 보세요.

 

〇어린이 책 영화제

 

책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닮은 데가 참 많습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가상의 이야기를 꾸며 내거나 현실의 세계를 더욱 밀도 있게 그려 낼 수 있는 것도 책과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또 그런 작품을 1만원 내외의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서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장점이지요. 그리고 저자와 감독이라는 두 예술가가 자기만의 고유한 정신을 담아 대중에게 평가받는 것도 같습니다. 책과 영화는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중들과 호흡해 왔고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 입니다. 이젠 처음부터 영화 제작을 겨냥하고 출간하기도 하죠. 파주출판도시 2단계 부지에 영화사가 입주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이에 관련된 프로그램은 책을 소재로 만든 영화를 보고 토론하기 정도에 그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TV나 방송에 가장 민감한 때의 아이와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진행시 관심과 몰입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또 스마트폰의 기능이 향상되고 동영상 편집 기술이 쉬워진 덕분에 누구나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년 전 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를 할 때 기회가 왔습니다. ‘책, 영화와 절친되다’라는 부제목으로 영화제를 기획했습니다. 어린이 영화제를 조사해 보니 애니메이션 영화를 모아서 상영한 정도더군요. 어린이가 볼 영화를 어른이 골라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영화가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 돼야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린이가 기획하고 연출하고 심사하고 시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어린이가 주인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것은? 그냥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지 않는 게 그들을 위한 최선의 도움이죠.

어린이가 만든 출품작은 ‘책을 소재로 한 어떠한 형태의 촬영물’로 비디오카메라는 물론 핸드폰으로 찍은 것이라도 상관없이 파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촬영한 파일이 극장안의 스크린에서 과연 일반 영화처럼 보여질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습니다. 극장측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상영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자기가 촬영한 작품이 대형 스크린에 비쳐질 때 아이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겠습니까?

다음은 출품작에 대한 심사입니다. 심사위원을 공개 모집했습니다. 왜 심사위원이 되려고 하는지, 어떤 부문을 심사할 건지에 대한 사연을 받아 초,중등생 총 6명을 뽑았습니다. 출품작 보다 심사위원 선정 경쟁이 더 치열했어요.

드디어 대회 당일 심사위원석을 만들고 출품자와 가족, 일반인들을 모두 초청하여 대회를 열었습니다. 10여개의 작품이 본선에 올라왔고 우수작을 뽑아 심사위원들이 시상했습니다. 심사기준도 위원들이 스스로 정했는데 우수하게 보이는 작품인데도 어른이 도와준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하는 등 그 날카로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른이 한 일이라고는 시상할 때 옆에서 상장 건네준 것 밖에 없었지요. 대회는 바로 축제로 이어져 모두가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야 어린이영화제 아니겠습니까? 극장이 없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죠. 예전에는 촬영 카메라가 없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제 빔프로젝터를 이용하여 마음껏 할 수 있죠. 이것의 핵심은 어린이,청소년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입니다. 영화제 포스터도 그들이 디자인하고 직접 홍보할 수 있게 만드세요. 교사나 어른이 나서지 않을 때, 그들의 실력은 더욱 높아집니다.    

 
저작권자 © 한국독서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