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교육신문 백원근 독서출판평론가]

그믐달은 보름달의 정반대, 즉 눈으로 보이는 달의 크기가 가장 작은 때를 가리킨다. 그믐달은 관측하기도 어렵다. 해가 뜨기 전 새벽녘에 잠깐 동쪽 하늘에 보였다가 사라지는 귀한 달이다. 그래서 소멸과 어둠 직전의 상태를 가리키기도 하고, 새로운 생성을 예고하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등단 10년차 중견 소설가로서 일간지 기자 출신다운 관찰과 취재력, 문장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장강명이 지난 7월 초에 그믐이라는 독서 전용 플랫폼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면 플랫폼 대표는 그의 부인인 김혜정 씨이지만 공동 대표로 봐도 될 듯하다. 장강명이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이유다. 운영하는 직원이 5명이나 된다는 이 독서 플랫폼은 작가가 사비를 털어 만드는 귀감이 되는 독서운동 플랫폼이기도 하다. 독서 강연 등의 초청 인사로 나서는 것이 일반적인 창작자가 함께 읽기 독서운동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처음인 듯하다.

그믐은 장강명의 2015년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가져왔다. 그믐달까지 사라지면 세상은 깜깜한 어둠인데, 독서인구가 줄고 있는 지금 책을 읽는 독자들이야말로 문명의 그믐달 같은 존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일종의 사명감이 담긴 플랫폼 이름인 셈이다.

그믐은 지식공동체를 표방하고 지향한다. 무겁고 체계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기록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지식이 될 수도 있다는 가벼운 의미의 지식, 그리고 그것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믐에서는 누구나 특정한 책의 읽기를 제안할 수 있다. 누구든 특정 도서의 읽기를 주도하는 모임지기가 되어 그믐에 해당하는 29일 동안 해당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완독을 독려한다. 두꺼운 책 읽기에 도전하는 경우 지금 1,200페이지 중에서 24쪽을 읽고 있다고 글을 올리면, 다른 익명의 참여자가 나는 몇 페이지를 읽는 중이라거나 어떤 부분이 기가 막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댓글을 달며 참여자들이 서로의 읽기를 응원한다. 29일간의 모임 운영 기간은 절묘하다. 두껍더라도 한 권의 책을 읽기에 충분한 시간인데다, 끝나는 기한이 있으므로 참여한 순간부터 읽기에 매진하게 된다. 모임 참여자들이 친분이 생기면서 흔히 나타나는 수다나 친목에만 빠질 가능성을 줄인다.

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 수에는 제한이 없다. 이용은 무료이고,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읽을 수 있는 개방형이다. 카카오톡을 통해 지인에게 초대장을 보낼 수도 있다. 책 읽기와 관련된 대화의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그믐이 추구하는 것은 관계가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한 주제’(관심사) 관계망 서비스를 목표로 한다. 종이책만이 아니라 전자책을 포함한 어떤 유형의 책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이 플랫폼의 재미난 특징은 한 번 쓴 글은 삭제나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이모티콘 사용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점이다. 익명의 공간이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숙고해서 글을 쓰도록 하며, 이모티콘 하나로 표현하던 단순한 감정 표현들을 글로 세밀하게 표현해서 공유하도록 한다. 회원 가입을 할 때 가입 인사로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하도록 했다. 인생책이 없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진입장벽일 수 있지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관심사나 취향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 플랫폼다운 자기 소개법이기도 하다.

그믐은 부산 지역 출판사들의 공동 프로젝트 출판 비치리딩시리즈 8종의 신간을 참여자들에게 20권씩 무료 배포하는 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알리는 마케팅 채널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 플랫폼은 오픈 한 달 만에 50여 개가 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문이 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인 모임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여러 가지 기능적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함께 읽는 독서문화 확산에 순기능을 하는 독서 플랫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믐은 현재 베타 버전 상태다. 독서의 달인 9월에 여는 정식 오픈 이후, 저자가 쓰기에서 멈추지 않고 온라인 독서 모임으로 시민들의 책 읽기를 적극 응원하는 새로운 시도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사진=온라인 독서 플랫폼 ‘그믐’(https://www.gmeum.com/)
사진=온라인 독서 플랫폼 ‘그믐’(https://www.gm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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