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

 

어느 부대의 독후감 대회 47편의 독후감을 심사중인 저는 몇 몇 용사들의 글에 감동입니다. 그 중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한 장병의 독후감을 소개합니다.

글은 곧 그 사람입니다.
글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자퇴 선언, 그리고 비행 청소년
                                        J.D.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일병 유영석

“같이 있는 사람 없어. 나하고 나 자신, 그리고 또 나뿐이지.” -콜필드

 나는 고등학교 자퇴 선언을 했었다. 나는 비행(非行) 아닌 비행(飛行), 꿈을 찾는 비행 청소년이었다.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했고, 숙소 생활을 하며 꿈을 키워나갔지만 더는 선수로서의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운동선수의 길을 걷다가 그만두었다.

 운동하느라 공부에 담을 쌓고 지내던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차근차근 기초부터 쌓길 원했고, 누군가의 시킴 없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는 고민 끝에 자퇴를 결정했다. 다른 공교육 학생들과 비교하면 개인 시간이 많았던 나는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알아갔다. 영어 원서를 읽고, 미국 드라마를 보며 영어를 스스로 익혀나갔다.

  나는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부모님이라는 선생님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던 ‘홈스쿨링 학생’이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꿈을 찾는 진정한 학문을 즐겼다. ‘호밀밭 파수꾼’을 읽게 된 시점도 바로 이때쯤이었다.

  그 시절 나는 독학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많은 책을 읽으려 노력했는데,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시리즈의 순서대로 읽는 대신, 그 때마다 내가 읽고 싶은 것을 골라 마음대로 읽어나갔다.

  그러니까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과정 중에 이 책을 발견한 셈인데, 그 많은 고전 문학 중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나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이 소설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그 당시 나의 처지와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홀든 콜필드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명문 사립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겪게 되는 일들을 써 내려간 소설인데, 학교 밖의 불량한 이 소년의 방황과 일탈하는 과정이 이 책 내용의 주요를 이루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퇴원하면 다음 학기부터 또 다시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기로 예정된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른들의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세상이 싫어 방황과 일탈을 일삼는 사춘기 반항아,홀든 콜필드는 앞으로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한다.

  장래에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보통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들(예컨대, 의사, 변호사, 선생님 등)을 이야기할 법도 한데, 이 소년은 굉장히 기이한 답변을 내놓는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목적을 위해 학교를 나와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에서는 자퇴생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자퇴생이거나 퇴학생이면 무언가 방황과 일탈을 일삼는 학생, 문제아라는 인식이 우리들의 깊은 내면에 깔린 것이다. 사실 이 소설 속 주인공이 반항아이면서 학교 밖 청소년으로 설정된 것도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이 얼마나 방황을 일삼는 캐릭터인지 더 와닿게 하는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학생인 것 같은데 왜 이 시간에 학교에 가지 않고 밖에서 돌아다니니?”

  이런 말들을 낮에 돌아다니면 종종 듣게 되는데, 이런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서 자퇴 이후 한동안 낮에 돌아다니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애매하고, 결국 뭐라도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정고시를 통해 나는 유학을 떠났고, 해외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

 이 후, 나는 한국에서 군복무를 시작했다. 그러다 부대에서 우수 독후감 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예전에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줬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어나가면서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던 콜필드를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 서울시 청소년센터에서 학교 밖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지원했다가 뽑히게 되어, 그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과거에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지만, 그동안 학교 밖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 교류 같은 것을 나누어 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들과의 첫 수업, 첫 만남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었다.

  나조차도 학교 밖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이 친구들이 어떠한 사연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또 함께 수업을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 걱정과 우려는 첫 수업 시작과 함께 이내 사라져버렸다. 이 친구들은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소위 가출을 한다거나 10대부터 담배를 피우고,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들과는 정반대의 아이들이었다.

  성실한 자세로 나의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와의 수업을 통해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이 후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해서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야.” -콜필드

  아이들의 순수 세계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는 콜필드, 그래서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도 이 소설의 주인공 콜필드처럼 앞으로 그런 멋진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밖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그런 일 말이다. 절대 학교 밖 청소년의 부정적인 시선에 주눅 들지 말라고. 그것은 어른들의 문제이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각자 자신만의 길과 꿈을 찾아 당당하게 나아가면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10대 시절, 그리고 지금의 내게 위로와 희망, 나의 친구가 되어줬던 콜필드와 작가 샐린저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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