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여운을 원하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한국독서교육신문 이소영 기자]=

▣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4월

‘돌봄과 사랑, 어느 여름의 달리기 그리고 가족’

오늘 소개할 신간 <맡겨진 소녀>를 읽고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와 생각의 연결고리는 이런 것들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장편소설로 올 상반기에 ‘말없는 소녀’라는 제목으로 호평을 받은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집안일, 밭일, 육아 그리고 이제 출산까지 앞둔 지친 엄마.

손 한 번 잡아 준 기억도 없는 아빠.

아이 많은 가난한 집안의 한 소녀는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의 집에 그렇게 어느 여름에 맡겨진 소녀가 된다.

우리 중에는 ‘맡겨짐’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방학 동안의 돌봄이 필요해 외가에서 두어 달 시골 생활을 만끽하며 신나게 놀았던 추억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집안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외로운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맡겨짐’은 이별이자 새로운 만남이고, 행복한 추억이자 아픈 기억이 되기도 한다.

가족은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억일까?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런 진부한 질문에 우리는 이미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담백한 말과 절제된 호흡으로 독자들에게 생각의 문을 열어줄 뿐이다. 그리고 그 문을 열어젖힌 독자의 가슴은 한없이 고요한 호수다.

주인공에게 ‘맡겨짐’의 기억은 사랑이고 진정한 가족애에 대한 깨달음이며, 무너지지 않게 자신을 지탱해 줄 힘이다.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어느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  (p.96)

어느 여름, 킨셀라 아저씨의 심부름에서 비롯된 달리기를 소녀는 지금 자신을 위해 달리고 있다. 뒤에는 지팡이를 들고 쫓아오는 친아빠가 있고, 앞에는 사랑하는 킨셀라 아저씨가 있다. 소녀의 마지막 “아빠”라는 외침은 누구를 향한 부름인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오래 가슴에 남을 단편 영화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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