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어느덧 9월이 지나고 추석을 지나서 10월이 됐다. 언제 끝날지 모를 것만 같았던 여름도 벌써 끝나면 밤이 되면 시원해지고 일교차가 심해졌다. 그리고 낯에도 시원해지는 계절인 가을이 됐다. 각자 계절의 모습은 다르다. 그렇다면 시인의 눈에 비친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2023922일 금요일 저녁 7시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금요일 라이프클래스 강연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사 작가인 최승호 시인의 강연이 <시인과 함께 나누는 가을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그는 이날 강연을 통해서 맨드라마 지고 귀뛰라미 우네 가을이라고 가을이 왔다고 우네 라미라미 동그라미 동그란 보름달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별마당도서관에서 최승호 시인과 함께 가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낭송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최승호 시인은 <눈사람 자살사건>으로 유명하다.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절판되었던 최승호 선생의 우화집 <황금털 사자>(해냄, 1997)를 복간하였다.

이번에 복간하면서 최승호 선생께서 제목도 눈사람 자살 사건으로 바꾸셨고, 내용도 상당 부분 바꾸셨다. 박상순 시인의 북디자인이 또한 책을 새롭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표지 디자인은 물론 본문의 그림도 다 바뀌었다. 따라서 복간이라기보다는 개정판에 가깝다고 하겠다. 우화집이라고 하였지만, 한 편 한 편을 들여다보면 우화(산문)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시에 가깝다. 한 편 한 편 최승호 선생 특유의 시적 문장과 문체로 그려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굳이 산문이다 시다 구분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령 우화 <거울의 분노>를 보자. 그 거울은 무심(無心)하지 못하였다. 날마다 더러워지는 세상을 자신으로 여긴 거울은 혐오감을 참지 못하고 분노의 힘으로 온몸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일종의 자살이었다. 그러자 조각조각마다 보기 싫은 세상의 파편들이 또다시 비쳐오는 것이었다. ― 「거울의 분노전문 이 짧은 우화를 두고 과연 산문이라 할 것인가 아니면 시라고 할 것인가. 무어라 한들 어떠할까 싶다. 짧지만 그 울림은 길고 넓지 않은가. 다음의 우화 고슴도치 두 마리는 또 어떤가. 고슴도치 두 마리가 가시를 상대방의 몸에 찌른 채 피투성이가 되어 함께 죽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 깊이 사랑했던 모양이다. ― 「고슴도치 두 마리전문 최승호 시인의 우화집 눈사람 자살 사건에 나오는 우화들은 대개 짧다. 웬만한 산문시보다도 짧다. 그런데 그 짧은 문장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결코 녹록지 않다. 또한 처음 책이 나온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최승호 선생이 들려주는 한 편 한 편의 우화는 지금의 세상과 빗대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고전이 그렇듯이 좋은 글은 세월의 풍화를 이겨내는 법이다.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생태계 속에서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함께하는지 등등 주옥같은 우화를 만나보기 바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이런 우화는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시 같은 우화, 우화 같은 시” “시집 같은 우화집, 우화집 같은 시집

어떻게 불러도 좋을 최승호 선생의 우화집 눈사람 자살 사건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과 위로를 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또한 최승호 시인은 동시집도 출간을 했다. 제목은 <말놀이 동시집 1: 모음>으로 새로운 영역을 선보이며 침체되어 있던 국내 동시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킨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시리즈의 최신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051권을 시작으로 꾸준히 출간해 5권으로 완간이 된 이 시리즈는 15년간 30만 부가 팔려 동시로서는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번 30만 부 돌파 기념 개정판에서는 기존 표지와 확 다른 콘셉트로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의 조화가 특히 돋보인다. 표지에 이어 판형, 속 꾸밈이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편집되었다. 말놀이 동시집은 모음 편, 동물 편, 자음 편, 비유 편, 리듬 편 총 5권으로, 그간 우리말의 다양한 영역과 특성을 아이들이 쉽고도 재밌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교본이 되어 왔다. 말놀이라는 기획 동시라는 점을 배제하더라도 시 자체로서의 순수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현대 시 문학의 큰 획을 그은 최승호 시인은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등 굵직한 시집을 펴내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최승호 시인 특유의 깊고 울림 있는 내용과 유머와 풍자, 넌센스가 시 전체에 고루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 각 장마다 완성도 높은 윤정주의 일러스트가 조화롭게 담겨 있어 시의 의미 확장을 더해준다. 말을 배우고 글을 처음 익히는 유아부터 초등학생, 그리고 우리 말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까지 그 독자층도 폭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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