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우리가 영어를 모르고 일본어와 중국어를 몰라도 영화와 책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번역 덕분이다. 번역이 있기 때문에 편리하게 책도 읽고 영화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번역가 덕분이다. AI가 발전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AI가 완벽한 번역의 영역을 차지하기는 부족한 점이 많다. 평소 번역가가 번역한 책과 영화 등의 콘텐츠를 접할 기회는 많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기는 어려워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황석희 번역가가 <번역: 황석희>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를 기념해서 지난 2023126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황석희 번역가의 강연이 진행됐다. 황석희 번역가는 이날 강연을 통해서 많은 레퍼런스를 찾고 키워드를 정리한다.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을 때는 대사관에 전화해서 모르는 것에 대해서 물어봤다. 시대가 빨리 변해서 어떻게 기술을 번역에 이용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 시대가 됐다. 대학생 때 가능하면 셰익스피어를 읽었으면 한다. 번역가로 돈을 벌 수 있지만 푼돈이다. 번역은 부업으로 삼을 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어떤 형태의 번역이든 그 분야에서의 최고인 사람들은 먹고 살고 있다. 출판 번역을 하는 사람은 직업이 여러개이다. 그 외의 번역은 부업으로 할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없다. 번역을 하면서 기계의 도움을 엄청나게 많이 받고 있는 중이다. AI가 번역기로서는 형편없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이기는 것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번역가는 AI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고민해야된다. 어른들 사회에서는 거래를 잘해야 하는데 어떻게 현명하게 나를 지키면서 거래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번역가로서 고집도 필요하다. 번역을 잘하기 위해서 많이 써봐야 한다. 번아웃이 와도 꾸역꾸역 한다. 번역가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번역가를 하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를 번역하든 영어 번역부터 시작해야 된다. 영어 번역으로 인지도를 먼저 쌓아야 된다고 이야기 했다. 한편 황석희 번역가가 최근 출간한 <번역:황석희>는 황석희 작가가 일과 일상에서 느낀 단상을 자막 없이편안하게 풀어쓴 에세이다. 한 줄에 열두 자라는 자막의 물리적 한계와 정역(定譯)해야 한다는 표현의 제한에서 벗어나 저자는 스크린 밖에서 마음껏 키보드를 두드렸고, 그 자유로운 글들은 SNS에도 올라왔던 몇몇 게시물들과 더불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데드풀〉 〈스파이더맨〉 〈파친코등 다양한 작품에서 느꼈던 직업인으로서의 희노애락, 업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언중에 대한 생각과 내밀한 속마음까지. 그는 번역가답게 자기 앞의 일상을 누구나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로 번역해냈다. 언어학도 번역학도 아닌 이 책의 제목이 번역: 황석희로 붙여진 이유 중 하나다. 황석희 작가가 해석한 일상은 우리 곁에도 존재한다. 그러니 그의 번역본을 보면 각자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번역하며 살아왔는지, 오역과 의역이 남발하는 이 일상 번역이 서로 얼마나 닮아 있고 다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익숙한 일상을 새로이 번역할 낯선 시선을 하나 얻어갈 것이다. 영화 번역은 혼잣말이나 대화, 즉 사람의 말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에 가깝다. 대본에 적혀 있는 대사는 사람의 입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뉘앙스라는 옷을 두르고 새로운 의미를 품기 때문에 번역을 단순 해석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저자의 말처럼 번역은 발화자의 표정과 동작, 목소리 톤을 살펴 뉘앙스의 냄새를 판별하는 작업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대뜸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라고 말한다. 번역을 언어 사이의 것으로만 보지 않고 모든 표의와 상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해보면 우리 삶은 번역이 필요한 순간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연인에게서 받은 끝나면 잠깐 보자라는 문자는 둘 사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장들로 번역할 수 있다. 상사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이 점심시간이 아니라 회의시간이라면 발표자는 긴장하게 된다. 다만, 일상 번역에 정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연인은 그저 심심했을 수 있고 상사는 그날따라 눈이 뻑뻑했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기에 대화에는 항상 빈칸이 존재한다. 그 틈을 허투루 알거나 무시해버리면 오해와 자의적 해석이라는 형태로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세심히 관찰하고 짐작하며 조심조심 다음 대사를 말할 수밖에 없다. 기실 말은 원래 그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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