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온고지신 (溫故知新)이란?

 자주 쓰는 사자성어중  '옛것을 존중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문장이 인용구로 많이 나온다.  

원전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자왈(子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라는 문장으로 해석하면,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마땅히 스승이 될 수 있다. 라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평이해 보이는 윗 문장의 의미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구체적인 실천방법까지 알려준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바로  정조대왕인데,  신하들과  유학의 경서를 읽고 토론하는 경연(經筵)에서의 대화 기록이 남아있다. 당초 경연의  취지는 학식이 높은 신하가 성현의 옛글을 인용하며 왕에게 교훈을 전하는 자리였다. 정조는 조선의 왕중에서도 성군이자 학식이 뛰어난 현군이기도 했다. 약관의 나이에도 학문이 깊다보니 경연의 본질이 바뀌어 오히려 왕이 신하들을 가르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경연 당시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은  정조 1년 왕의 나이 26살때의 일이다.  당시 나이를 현재에 비교해보면, 대학을 갓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정도의 나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왕의 학문의 경지가 높다보니, 경전에 밝은 신하들 조차 감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기록된 경연중에 있었던 대화 내용을 보자.

정조는 시독관 이재학 등과 경연도중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무슨 말인가? 라며 대신들에게 묻는다. 이에 선전관 '이유경'이 답했다. "옛글을 익혀서 새 글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임금이 이의를 제기한다.

 "아니다 초학자는 그렇게 보는 수가 많지만 대개 옛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맛을 알게되어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정조의 반론을 풀어보면 이렇다.

단순히 옛글을 있는 그대로 잘 배우고나야 현재의 공부와 잘 연결되어 학습이 무리없이 이루어질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글을 무작정 따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곱씹고  의미를 밝히며 사유하다보면 옛 글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깨우쳐 창조적 발상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한자어 하나씩  뜻풀이를 해보면 사자성어의 진정한 의미와 정조대왕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온(溫)은 따뜻하다와 배우다라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정약용은 온을 옛지식을 그냥 두면 차갑게 식기때문에 따뜻하게 데워라( 복기,복습 )는 뜻으로 한자어에 들어간 두가지 의미를 설명한다. 

 

다음한자 고(故)를 따져보면, 단순히 옛고(古)자를 쓰지 않고, 두가지 의미가 들어간  고(故)를 쓰고 있다. 여기서 쓰인 고는 옛고 또는 까닭고의 두가지 의미를 가진 한자어다. 그래서 온고를 다시 풀이하면 '옛것의 까닭과 연유를 깊이 생각하며 배우며' 가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옛것을 받아들이되,  그속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움을 찾아 나름의 창의적 발상을 만들어 나가자 라는 뜻이된다.

뒤주 속에서 굶어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겪으며 때로는 반대파의 암살 위협속에서 왕이 된 정조는 과거의 원한을 갚는대신 정약용과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백성을 위한 경세치용의 바른 정치로 태평성대를 만들었다. 왕의 자세와 치세 자체가 온고지신을 실천한  실사구시의 사례 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온고지신은 과거의 덕목이 아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성공사례를 단순히 모방하기 보다는  좀더 혁신적인 사고로  기존의 형식을 뛰어넘는 더 높은 수준의 새로움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고전은 단순히 참조할 만한  과거의 사료가 아니라 발전을 위한  창조적 발상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저작권자 © 한국독서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