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교육신문 백원근 독서출판평론가]

정부(국무조정실)122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생활 규제 개혁을 개최하고 단통법(단말기유통법) 폐지, 대형 마트의 영업 규제 개선(평일 휴무 및 새벽 배송 허용), 도서정가제에서 연재형 콘텐츠(웹툰, 웹소설)의 적용 제외 및 소형 서점의 추가 할인 허용을 뼈대로 한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산업과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규제를 시정하여,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고 기득권의 독점 이익을 보장하는 규제를 혁파함으로써 국민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세 가지 방안 모두 국회에서의 관련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정부 발표가 곧 정책 시행의 확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세 가지 방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현실성이 없다며 반발하는 것도 주시할 대목이다.

정부는 도서정가제 개정과 관련해 종이책과는 출판 방식 및 생태계가 다른 웹툰, 웹소설을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하고, 출판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제도적 틀은 유지하되 현재 최대 15%까지 허용하는 직간접 할인을 영세서점에 한해 추가로 허용하는 할인율 유연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문체부 차관은 브리핑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영세서점의 활성화와 소비자 혜택을 늘리기 위한 할인율 변화를 추진할 계획이며, 세부적인 방안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거쳐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큰 방향성에 대한 그림을 발표하면서도 세부적인 사항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웹툰 및 웹소설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 논란은 2014년의 도서정가제 강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웹툰 업계의 도서정가제 반대론이 강하고, 웹소설 분야에서는 찬반 양론이 공존한다. 본래 종이책 생태계를 전제로 제도화된 도서정가제를 연재형 웹콘텐츠에까지 적용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현행 제도에서도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부착하지 않거나, 판매가 아닌 대여 방식으로 서비스하거나, 구독형 방식으로 서비스하면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연재형 콘텐츠의 경우 이미 시장이 크게 성장한 데다 회차별 금액이 100원 수준으로 평준화되어 있어서 가격 경쟁에 의한 소비자 확산이나 시장 확대 가능성 역시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무엇보다 작가, 출판사, 플랫폼 사업자,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통합된 의견이 중요한데, 웹 콘텐츠 대상 도서정가제 적용에 대한 찬반 양론만 있을 뿐 업계 안팎에서 의견을 조율하거나 통합하지 못한 채 교통정리조차 안 된 실정이다.

또한 도서정가제 적용을 거부하는 웹툰, 웹소설 관계자들조차 가격 인하에 기여하는 부가가치세 면세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물의 유통질서 확립을 통해 생산-유통-소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콘텐츠의 가격 경쟁 대신 콘텐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그런데 출판물에 적용되는 도서정가제를 회피하면서 부가세 면세 혜택만큼은 챙기겠다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웹툰 업계를 중심으로 ISBN 대신에 별도의 콘텐츠 식별자를 만들어서 부가세 면세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조세 정책 당국이 이를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 영세서점에 추가 할인율을 허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서점 현장의 반발이 크다. 정부가 말하는 영세서점은 일정 규모 매출액 이하의 지역서점을 말하는 듯한데, 추가 할인 여력이 전혀 없는 소형 서점들에게 추가 할인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오히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도서 정가의 10% 이내 가격 할인과 간접할인(마일리지 적립)을 포함한 총 할인율 한도는 15%로 정해져 있는데, 대형 인터넷서점 말고는 이렇게 서비스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그 이유는 출판사 또는 유통사(출판 도매업체)를 통해 공급받는 도서 정가 대비 공급률이 인터넷서점은 약 60~70%(인터넷서점 소매 마진율 30~40%)인 데 비해 지역서점은 약 70~80% 안팎(지역서점 소매 마진율 20~30%)으로 할인 여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서점이 가격 경쟁을 하기 위해 인터넷서점을 능가하는 할인율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15~20% 수준의 직간접 할인 판매를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소매 마진율은 0~15%, 말 그대로 제 살 깎아 사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부는 전혀 실현 가능성도 없고, 지역서점이 바라지도 않는 방식으로 제도 변화 방안을 마련하고, 이것이 마치 지역서점 활성화와 소비자 이익에 기여하는 것처럼 발표부터 해버린 셈이다.

정부 정책은 소비자의 시각뿐 아니라 해당 제도와 관련된 이해관계자, 생태계 전반을 면밀히 살펴 사회적 공익이 커지는 방향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도서정가제의 경우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의 3년 주기 재검토 규정에 따라 1년 가까이 문체부와 관련 업계가 고루 참여한 민관협의체에서 충분한 협의를 거치며 현행 유지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고, 헌법재판소에서도 현행 도서정가제 합헌결정(2023.7.)을 내린 사안이다. 그런데 이를 갑자기 뒤집고 정부가 재검토 논란을 키우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연히 법제 개정이 필요한 사항을 마치 결정된 정부 정책 방향처럼 발표하는 것도 문제다. 김포시를 비롯한 경기도 지자체들의 서울시 편입 논란처럼, 충분히 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총선을 앞둔 일회성 발표와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정책 논란을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규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수많은 법률은 대부분 규제법이다. 도서정가제는 도로교통법처럼 사회 공익을 위해 유익한 규제다. 출판물의 유통질서 확립과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수단이다. 특히 출판시장이 발달한 소수 언어권에서 도서정가제는 필수적이다. 저작-출판-유통-향유의 다양성 확보와 가격 안정성은 소비자인 독자와 국민에게 보다 많은 편익을 제공한다. 대안도 없이 도서정가제를 흔드는 포퓰리즘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해 독서정책 예산의 대부분을 삭감해 버린 정부는 사회적 독서환경 개선과 독서정책 강화로 책 읽는 나라 만들기부터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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