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교육신문 전준우 칼럼니스트]
 

단 한 번도 글쓰기를 배운 적 없다. 태어날 때부터 소설가라는 명패를 갖고 태어나지도 않았다. 금세 뚝딱거리며 글을 쓰는 재주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딱히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주제를 정해놓고 쓰는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가 재미있고, 위로가 되는 기회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게 된 어느 순간부터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아가 훌륭한 소설가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다.

글쓰기가 힘을 얻는 방향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큰 힘을 주는 것은 고생과 고통, 즉 실패다. 이론으로 배운 글쓰기는 이론의 수준에 머무른다. 고통과 고생을 경험한 글에서는 그렇지 않은 글과는 분명히 다른 향기가 흐른다. 망각하지 않으면 밥 한 숟갈 떠먹기도 힘들다는 참척지변의 고통은 있어서도, 겪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애석하게도 참척지변의 고통을 거쳐 나온 글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30대 초반의 5년 정도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11권은 기본이었다. 13, 16권을 읽은 적도 있었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손을 대는 것마다 실패로 돌아갔다. 30대 후반의 어느 무렵부터는 책을 골라서 읽었다. 책의 종류가 달라져서 1년에 30권도 읽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비해 천착의 즐거움과 고통이 훨씬 더 컸다. 덕분에 글의 깊이도 달라졌고, 해석능력도 조금씩 나아졌다.

도파민 디톡스, 디지털 디톡스라는 단어가 있다. 단어는 달라도 비슷한 의미다. 쾌락으로부터의 절제다. 글을 멀리하는 순간부터는 쾌락이 마음에 자리 잡는다. 한동안 릴스와 쇼츠 보는 재미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실패는 경험을 남기지만, 쾌락은 시간낭비와 후회만을 남긴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20대 어느 무렵의 깨달음 덕분에 술담배를 하지 않고, 노름도 하지 않는다. 아내를 제외하면 이성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는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의 작품명이다. 그의 작품이 주는 영향력과 울림이 꽤 컸다. 지금은 나의 카카오톡 배경화면에 '박제'되어 있다. 한동안은 가만히 '박제'되어 있을 예정이다. 고야는 전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사진=핀터레스트, © Master Class
사진=핀터레스트, © Master Class

 

저작권자 © 한국독서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