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 걸 가장 좋아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더라도 온전하게 영화를 자막 없이 다 보기에는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번역가가 있기 때문에 번거로움 없이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번역가의 일상은 어떨까? 지난 2024228일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별마당도서관에서 일상을 번역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황석희 번역가의 강연이 진행됐다. 황석희 번역가는 이날 강연을 통해서 자막 없이 보는 일상 번역, 번역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일상을 번역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한편 황석희 번역가는 <번역: 황석희-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를 출간했는데 우리 삶에서 번역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관이다.

도서에도 번역은 존재하지만, 표기는 대체로 옮김이고 저자 이름의 옆 또는 하단에 적혀 있어 부러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만나는 번역글자는 엔딩크레디트 중에서도 맨 마지막, 그것도 크레디트와 다른 위치에 대체로 큰 글자로 튀어나온다. 우리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눈앞에 나타나는 거다. 물론 상영관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면 말이다. 스크린 속 번역이란 글자 옆에 자연스럽게 떠올릴 이름 석 자가 있다면 황석희일 것이다. 그 이름이 뜨는 순간 좌석 곳곳에서 역시 황석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역가로서 잘 알려진 황석희가 이번엔 작가 황석희, 관객이 아닌 독자를 찾아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구인 번역 황석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번역: 황석희>는 저자가 일과 일상에서 느낀 단상을 자막 없이편안하게 풀어쓴 에세이다. 한 줄에 열두 자라는 자막의 물리적 한계와 정역(定譯)해야 한다는 표현의 제한에서 벗어나 저자는 스크린 밖에서 마음껏 키보드를 두드렸고, 그 자유로운 글들은 SNS에도 올라왔던 몇몇 게시물들과 더불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데드풀〉 〈스파이더맨〉 〈파친코등 다양한 작품에서 느꼈던 직업인으로서의 희노애락, 업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언중에 대한 생각과 내밀한 속마음까지. 그는 번역가답게 자기 앞의 일상을 누구나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로 번역해냈다. 언어학도 번역학도 아닌 이 책의 제목이 <번역: 황석희>로 붙여진 이유 중 하나다. 저자가 해석한 일상은 우리 곁에도 존재한다. 그러니 그의 번역본을 보면 각자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번역하며 살아왔는지, 오역과 의역이 남발하는 이 일상 번역이 서로 얼마나 닮아 있고 다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익숙한 일상을 새로이 번역할 낯선 시선을 하나 얻어갈 것이다.

영화 번역은 혼잣말이나 대화, 즉 사람의 말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에 가깝다. 대본에 적혀 있는 대사는 사람의 입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뉘앙스라는 옷을 두르고 새로운 의미를 품기 때문에 번역을 단순 해석이라 말하기엔 부족하다. 저자의 말처럼 번역은 발화자의 표정과 동작, 목소리 톤을 살펴 뉘앙스의 냄새를 판별하는 작업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대뜸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라고 말한다. 번역을 언어 사이의 것으로만 보지 않고 모든 표의와 상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해보면 우리 삶은 번역이 필요한 순간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연인에게서 받은 끝나면 잠깐 보자라는 문자는 둘 사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문장들로 번역할 수 있다. 상사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이 점심시간이 아니라 회의시간이라면 발표자는 긴장하게 된다. 다만, 일상 번역에 정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연인은 그저 심심했을 수 있고 상사는 그날따라 눈이 뻑뻑했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기에 대화에는 항상 빈칸이 존재한다. 그 틈을 허투루 알거나 무시해버리면 오해와 자의적 해석이라는 형태로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세심히 관찰하고 짐작하며 조심조심 다음 대사를 말할 수밖에 없다. 기실 말은 원래 그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과 의역이 남발하는 이 일상 번역이 서로 얼마나 닮아 있고 다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익숙한 일상을 새로이 번역할 낯선 시선을 하나 얻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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