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교육신문 백원근 독서출판평론가]
 

요즘 금값이 되었다는 사과 등 과일과 채소를 비롯해 식료품과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울상이다. 그래서 다이소, 쿠팡, 테무 등 저렴한 물건이나 할인을 많이 해주는 온라인 쇼핑몰과 플랫폼들의 열풍이 거세다. 출판 유통시장에서도 새벽 배송, 로켓 배송으로 유명한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의 약진이 두드러져, 매출이 꺾인 적이 없던 인터넷서점들에 비상이 걸릴 정도다. 소비자들은 할인이 많이 되는 물건들을 사면서 덩달아 책도 구입하게 되는데(물론 도서정가제로 인해 할인율 제한이 있지만) 이곳의 책 판매량이 급증하면 다른 출판유통 경로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책값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은 어떨까.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3)에서 시행한 일반 독자(도서구매자) 1,029명 대상의 온라인 패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책을 구입할 때 할인하거나 저렴한 곳을 찾는 편이라는 응답이 64.7%로 높았고, “지난 3년간(2020~2022) 일반 물가 수준 대비 도서 가격의 상승률에 대해 비슷하다’ 52.9%, ‘높다’ 34.9%, ‘낮다’ 12.2%였다. 책도 가능하면 저렴하게 사고 싶고, 책값이 다른 물가보다 더 오른 것처럼 느끼는 소비자 심리가 드러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책값은 다른 소비자 물가 상승률보다 줄곧 인상률이 낮게 억제되어 왔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납본 대행 통계를 보면, 2023년 평균 정가는 18,633원으로 전년도의 17,869원보다 4.3% 상승했다. 종이책 1종당 판매량은 줄고, 종이책을 만드는 펄프값을 비롯한 온갖 물가와 인건비는 오르니 출판사들은 불가피하게 발행 부수는 줄이고 정가는 인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출판인들은 언제나 좋은 책이 많은 독자와 만나기를 꿈꾼다. 그래서 문고본이나 페이퍼백처럼 저렴한 책을 만들고자 하지만, 도서 구매 인구가 제한되어 있어서 박리다매가 어렵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하지만 더 저렴한 책을 펴내려고 시도하는 출판사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초에 출판사 열린책들8,800원짜리 세계문학 시리즈인 모노 에디션1차분 10종을 펴내기 시작했다. 인터넷서점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독자는 8,000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는데, 보통 단행본 가격의 절반 이하 가격이다. 파우스트, 허클베리 핀의 모험등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고전 작품들이다. 이런 시도가 가능한 것은 열린책들이 세계문학전집을 펴내고 있어서 새로운 에디션을 발행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열린책들에서 펴낸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열린책들에서 펴낸 세계문학 ‘모노 에디션’

이런 사례의 전례로는 민음사의 쏜살문고가 있다.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지금까지 440종 발행)에서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단편소설이나 에세이를 고르고 트렌디한 디자인을 더해 200쪽 안팎으로 얇은 쏜살문고 시리즈를 2016년부터 펴내고 있다. 현재까지 90종 정도가 발행되었는데 대체로 8,000원 안팎의 가격대로 저렴하다. ‘쏜살은 민음사의 로고인 화살 쏘는 사람의 모양에서 착안한 것인데, 쏜살처럼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쏜살문고는 1980년대 이후 대부분 사라졌던 서점가의 문고본 열풍을 견인하며 다른 출판사들의 시장 참여를 이끌었다.

또한 민음사가 쏜살문고 중에서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택해 동네서점만을 위한 새로운 표지 디자인을 입혀 선보인 것이 동네서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동네서점 에디션의 첫 출발이었다. 독자들이 동네서점을 찾도록 오리지널 상품을 공급한 것이다. 이때 130곳의 동네서점이 주문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일인데, 12천 부씩을 찍고 한 달 사이에 연거푸 3쇄까지 찍었다. 2014년의 도서정가제 강화(18개월 이상 지난 구간 도서에도 도서정가제 적용) 이후 증가하는 동네서점을 출판사가 적극 응원하고, 출판사와 서점이 상생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주목을 받은 것이다. 2종의 책은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여 각각 5,000부씩 판매되며 시장성을 확인시켰다. 오래된 명작이 지역서점에서 신세대 독자들과 만나는 흐뭇한 장면이다.

저렴하면서도 좋은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의 수요에 출판계가 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를 들어 1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를 보급판 에디션’, 즉 염가본(廉價本)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 채산성을 충분히 충족한 상황이니 저렴한 보급판을 추가로 제작하면 두 가지 에디션의 책으로 판매가 가능하여 독자의 선택지를 늘릴 수 있다. 책값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들의 신규 수요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책들이 많아질수록 책값에 저항하는 독자들이 도서정가제를 반대하거나 불법복제를 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무조건 책값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 적정한 도서 정가를 책정하되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만이라도 독자 사은과 독서 대중화를 위해 특별판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저자의 요청에 따른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최대 판매량을 기록한 베스트셀러 세이노의 가르침이 저렴한 가격(7,200)의 혜택을 톡톡히 본 것도 지나칠 일이 아니다.

서양의 출판 선진국들에서는 대체로 양장본을 먼저 펴내고, 대중적 수요가 예상되면 2차 출판 방식으로 페이퍼백이나 문고본을 펴낸다. 그 외에도 큰글자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다양한 에디션의 책으로 독자 선택지를 넓혀준다. 동일한 책의 내용이라도 어떤 옷을 입혀 포장할 것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책으로 거듭나서 출판사의 판매 포트폴리오를 다양화시킬 수 있다. 적어도 인기 도서의 염가본 출판과 큰글자책 출판이 자리잡아 고물가 시대, 초고령사회의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출판계의 노력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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