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무당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영화 '사이에서'를 통해 데뷔한 이창재 감독은 줄곧 다큐멘터리만 작업한 다큐멘터리에 정통한 인물이다. 이 감독은 지난 2012년 비구니의 일생을 보여준 '길 위에서'에 이어 지난 4일 호스피스의 삶을 녹아낸 '목숨'을 선보이며 한 인간의 삶의 삶과 애환을 진정성 있게 조명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목숨'은 삶의 끝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호스피스'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며 가족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이 감독은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인 다큐멘터리를 택해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며,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목숨'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낸 이 감독을 만났다.

▲ 이창재 감독이 '목숨'시사회에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목숨'을 통해 '웰다잉(Well dying)'을 말한다
이창재 감독을 만나자 마자, '다큐멘터리 작업만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재미있다"면서 "다큐멘터리 과정이 나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는 진정성있는 답변을 전했다.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인 이야기로 보여지지만 사실 감독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 주관적인 장르라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내가 엄청난 돈을 벌어야겠다 혹은 유명해지겠다는 바람보다는 스스로 얻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에 꾸준하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다큐멘터리는 긴 여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여행을 통해 위안을 얻듯이, 저는 다큐멘터리라는 여행을 통해 위안과 힐링을 받고 있죠"

특히 이 감독은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는 과정부터 마무리 작업까지 오로지 작품에만 몰두하기에 종국에는 본인이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고. 때문에 이번 세 번째 작품인 '목숨'은 상대적으로 거친 여행이었다고 회상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와 관련한 책들도 많이 읽고 언젠간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너무 빠져들까 봐 두렵기도 하고 겁이 났었는데, 특별한 계기를 겪으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그는 소중한 분들을 연이어 잃고, 또 '목숨'작업 전, 장소 헌팅 등의 과정에서 크게 다치게 됐다고. 수술까지 한 이 감독은 병실에서 '이런 연이은 사고가 '목숨'을 하라는 신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 감독은 호스피스 병동을 다니며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 섭외했다. 그가 가장 놀랐던 점은 환자들이 죽음 자체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 영화 '목숨'의 스틸컷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죽음을 문턱에 앞두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 있는데 현실은 많이 달라요. 바이탈 사인(Vital signs)이 계단식으로 떨어지면서 환자들이 힘들어 하시는데, 이 과정에서 의식이 미약해져서 말을 못할뿐더러 소통이 안돼요"

그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환자들 대부분이 죽음 보다, 스스로 답을 찾고 정리하는 과정을 더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환자들은 잠드는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밤새 걷기도 한다고. 이와 같이 다양한 사례와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죽음보다도 잘 죽어야 하는 '웰다잉(Well dying)'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촬영을 하면서 죽음은 학습이 돼도, 이별은 학습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호스피스를 선택하기 보다는 죽기 전까지도 치료하는 걸 선택하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에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시간의 양과 질의 차이를 직시할 수 있으면 죽음을 다르게 볼 수 있는데, 이 질문을 '목숨'을 통해 하고 싶었어요"

그의 설명처럼 '목숨'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목숨'시사회 당시, 상당수의 관객이 '죽음을 왜 봐야 하냐?'며 죽음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고. 하지만 영화를 본 이후에는 '내 삶을 다시 보게 됐다. 삶의 끝을 보면 현재가 잘 보인다'는 소감을 밝히며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목숨'은 죽음이라는 간접체험을 통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현재의 삶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무기력한 사람이 보면 갚진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창재 감독은 무당, 비구니, 호스피스 등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대중에게 신선함과 궁금증을 자아냈다. 매번 색다른 주제를 전하는 그는 어떤 과정을 통해 소재를 선택할까? 이에 대해 그는 "소재를 선택하기 위해 생각하기 보다는 내 나이 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는 비결을 밝혔다.

"스스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혹은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요.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뭘 보고 싶은가가 가장 큰 목적이죠. '목숨'은 너무나도 거친 여행이었잖아요. 아직은 향후 여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지금은 거친 여행에서 빠져 나와서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여행에서 어떤 화두를 다 정리하기 전에 여행을 떠나면 앞의 여행과 겹치기 때문에 의식의 확장이 더딜 수 있다고 봐요"

이어 그는 '목숨'에서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시 보여 주기 위해 '목숨'이라는 책을 집필할 계획이다. '목숨'을 준비하면서 인터뷰 분량만 1,000페이지가 되고 딕테이션(dictation)만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고.

"영화는 100분 이내에 보여줘야 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책은 분량 제한이 없잖아요. 영화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책으로 정리할 계획입니다"

이 감독은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 역시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라며 향후 행보에 대해 언급했다.

"우선 (다큐멘터리 작업 과정)재미있어요. 또 체험하고 공부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전의식이 생겨요. 그 부분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느낌이 있고, 이를 통해 언젠간 (부족한 부분이)완성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속적으로 다큐멘터리라는 분야에 도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이창재 감독의 추천도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창재 감독의 추천도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저, 돌베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유명한 명상록을 읽는 만큼이나 깊이가 있다. 그의 글 안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 어린 필치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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