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미 산수화와 노자의 도가 사상
더미 산수화에는 노자의 도가 사상이 엿보인다. 산수화의 특징은 여백이다. 그 여백이 있기에 산수화는 더 산수화다운 가치를 지닌다. 여백의 미는 비움이다. 그런데 비워질 때 비로소 채워진다. 그러므로 노자는 방이 방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공간이 비어있기 때문이요, 그릇이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릇이 비어있기에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워 냄으로써 작품으로 다시 채우다.
"저는 제가 아주 잘난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나왔지만, 제 자신에 대한 회의와 정체성으로 심하게 고민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제 자신을 내려놓기로 한 거지요.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마음이 무척 편해졌습니다. 그때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어요. 그러자 신기하게도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서 드로잉을 시작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꼬여있던 일들도 이상하게 풀리기 시작했고, 작품을 하나씩 완성할 때 마다 몰입의 기쁨을 경험했고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습니다. 그러한 비워냄이 더미 산수화라는 작품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죠"

▲ 강혁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가을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나뭇가지가 비워짐으로써 봄이 되면 나뭇잎으로 다시 채워지는 이치와 같다. 이에 노자는 시작은 끝을 부르고 끝은 시작을 부르며 비움이 곧 채움을 부르고 채움이 비움을 부르니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그것이 곧 도(道)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돌고 돌며 무쌍하게 변화한다고 했다. 더미 산수화에는 이처럼 세상 모든 삼라만상의 이치가 담겨 있으니 그의 작품에서 노자의 도가 사상이 보여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더미산수화를 바라보면 힐링이 된다.
그의 더미 산수화를 보고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하루는 한 노인이 그의 작품을 보러 왔다가 갑자기 쓰러지듯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 노인은 그렇게 삼십 분 정도 하염없이 더미 산수화를 바라보더니 그 동안 본인이 살아 온 세월을 보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고 작가에게 말했다고. 어떻게 이런 삶의 고통을 젊은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더 침울함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닮은 처지의 더미들을 보며 나도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의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나의 삶을 진정으로 사색하게 된다. 더미 산수화는 일일이 만년필 하나로만 섬세하게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많아야 일 년에 겨우 8~10편정도 밖에 완성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가 쉽지 않다.

▲ 강혁 작가의 더미 산수화 전시회 풍경(장소 : 대전 노은 도서관)

한편 강혁 작가는 현재 대전시 반석동에서 문화예술 공간 일리아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달 중국 상하이에서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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