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 (Babettes Gaestebud, Babette’s Feast, 1987, 감독: 가브리엘 엑셀, 1989년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 <바베트의 만찬> 영화속 장면

 14년간 정들었던 하녀 바베트가 자매와 마을사람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합니다.

상금이 1만 프랑이나 되는 복권에 당첨된 바베트는 이제 자매와 이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바베트는 마지막으로, 지금은 돌아가시고 계시진 않지만 자매의 부친인 마을의 존경받는 목사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마을 사람들 모두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려고 합니다.
   
19세기 말 덴마크의 시골마을입니다.(원작 이자크 디네센의 소설 <바베트의 만찬>은 노르웨이가 무대입니다.) 현실의 세속적인 즐거움과 쾌락을 포기하고 평생을 금욕과 헌신, 기독교적 사랑으로 살아온 자매 마틸드와 필리프가 있습니다. 요리사 출신인 하녀 바베트는 내전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자매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삽니다. 그러다 복권이 당첨된 것이지요.
 
▲ <바베트의 만찬> 영화속 장면
자매는 목사인 아버지에게 어릴 때부터 엄격한 청교도 삶을 배우며 자랍니다. 미래에 하느님의 나라, 천국에 가기 위해 현실의 즐거움을 모두 포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음식에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추는 일까지도 쾌락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어느 집에서 쾌락적인 것을 하는지 감시하기도 하고 서로 눈치를 보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하는 바베트가 주문한 프랑스 정식 코스 요리의 재료를 본 마틸드는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합니다. 금욕에 사로잡혀있는 자매와 마을 사람들은 화려한 요리와 음식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마틸드는 바베트가 준비하는 만찬을 ‘마녀의 연회’라고 몰아세우면서 눈물을 흘리며 걱정합니다. 마을사람들 역시 한 목소리로 자매를 거듭니다.
 
“만찬에서 어떤 음식이 나와도 절대로 맛있는 표정을 짓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 <바베트의 만찬> 영화속 장면
프랑스 최고급 코스 요리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합니다. 다만 지난 날 마틸드의 첫사랑이었던 노장군과 그의 숙모, 그리고 마부만이 달콤한 혀에 고맙다는 듯 온갖 환희와 축복의 표정을 지으며 음식을 즐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점점 새롭고 맛깔스런 요리가 나오자 마을사람들의 표정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기도 하면서 옆 사람의 눈치를 보기도 합니다. 바베트가 준비한 음식이 계속해서 나오자 이제 마을사람들은 요리를 음미하기 시작하고 간간히 맛에 대해 옆사람과 조심스레 이야기도 나눕니다. 닫혔던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서로에 대한 불신과 그동안 음식에 대한 금욕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을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바베트의 진심이 요리를 통해 전해지면서 이젠 모두들 행복하게 음식을 즐깁니다.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만찬은 끝이 납니다.

 
사실 음식을 통해 금욕을 강조하는 데는 식욕이 성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 주장도 있습니다. 즉 남녀의 사랑에 음식이 하나의 매개가 된다는 것이지요.
식욕, 성욕은 수면욕과 함께 사람의 세 가지 원초적 욕구입니다. 그만큼 늘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뇌에서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곳인 시상하부에 함께 있다고 합니다. 식욕 중추와 성욕 중추의 간격은 불과 1.5mm 정도로 매우 가까워 하나의 중추에 영향이 미치면 다른 중추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약간 다르다고 합니다. 식욕 중추는 배고픔을 느끼는 섭식 중추와 포만감을 느끼는 포만 중추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성은 섭식 중추가, 여성은 포만 중추가 성욕 중추와 근접해 있다는군요. 즉 상대적으로 남성은 배가 고플 때, 여성은 배가 부를 때 성욕을 느낀답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유혹하려면 일단 맛있는 식사부터 사줘라”는 말이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엉뚱한 이야기가 길었네요.
   
▲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 1987, 감독 가브리엘 액셀
 목사는 두 딸들이 사랑할 나이가 되어 사내들의 청혼을 무수히 받았지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은근히 자신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천주교 수녀들도 아닌데 말입니다. 자매에게도 사랑이 찾아옵니다. 청년 장교(만찬 때 노장군)와 사랑에 빠졌지만 인정하지 않으려합니다. 청렴하고 금욕적인 아버지 때문인가요? 종교에 얽매여 있는 마틸드를 뒤로 하고 장교는 떠납니다. 노래를 잘하는 필리프도 성악가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주고받았지만 그것뿐, 결혼까지 가지 못합니다. 아버지, 언니처럼 장차 죽은 후에 온다는 하느님 나라만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영화는 ‘현재, 오늘’이라는 진정한 축복의 순간을 외면하고 ‘미래, 내일’이라는 불확실하고 왜곡된 허상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풍자합니다. 모든 만찬이 끝나고 바베트는 복권 당첨금 1만 프랑 전액을 만찬을 위해 썼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은 감동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베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 만찬은 당신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누구를 위한 만찬이었을까요? 바베트의 만찬은 바베트, 스스로를 위한 만찬입니다. 전 재산을 위해 다 써버려 가난하지 않냐는 질문에 바베트는 대답합니다.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바베트는 자신의 능력과 최선을 다할 기회를 인식하고 충실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위한 성스런 잔치이고 행복을 위한 이벤트였습니다.
 
▲ 이자크 디네센 (지은이) | 추미옥 (옮긴이) | 문학동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는 하녀 바베트(스테파니 오드런)의 명연기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나오는 먹음직스런 프랑스, 유럽의 고급 요리들이 눈과 귀를 자극합니다. 진심을 다하는 사랑과 소통의 힘도 보여주고요. 단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봉사 하는 하녀 바베트가 참 아름답습니다. 로마교황청 선정 ‘언제 보아도 좋은 영화 45편’중 한 편입니다.
 
팁>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이자 영화 속에서 메릴 스트리프가 열연한 주인공의 실제 모델로 친숙한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본명은 카렌 블릭센)의 작품이 원작입니다. 민담적 전통을 계승한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그녀는 두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서구 문학계에서 널리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인 '바베트의 만찬'은 1987년 작가의 고국 덴마크에서 영화화되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BAFTA 필름 어워드 외국어 영화상, 런던 비평가협회 외국어 영화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 Reading Cinema의 서기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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