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치유하는, 맛있고 따뜻한 영화-카모메 식당

서기찬의 리딩 시네마 (Reading Cinema)

 

 

상처 치유하는, 맛있고 따뜻한 영화-카모메 식당

-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Kamome Diner, 2006,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 카모메식당 かもめ食堂 Kamome Diner , 2006 일본

내일 당장 여행을 갈수 있다면 어디를 가시겠습니까?

저는 핀란드 헬싱키를 가보고 싶습니다. 카모메 식당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카모메 식당은 2006년 영화 촬영이 끝난 후 핀란드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점심 메뉴를 제공해 학생들에게 인기랍니다.

 

삶에 활력을 주는 영화, 산소 같은 영화, 지치고 힘들 때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소개합니다. 1년에도 몇 번씩 보게 되는 이 작품은 소주 한 잔처럼 중독성이 강합니다.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도 없고 등장인물들의 입체적인 캐릭터도 없는 이 작품이 갖는 매력은 ‘소울 무비(Soul Movie)’라는 겁니다. 한없이 느리고 여유로운 구성과 연출이 특징입니다.

 

핀란드 헬싱키의 한적한 주택가에 오니기리와 시나몬 롤을 파는 가게 카모메 식당이 있습니다. 주인은 일본인 여성 사치에. 한 달 동안 파리만 날리던 식당은 첫 손님으로 일본 만화 마니아 대학생 토미가 들어옵니다. 정 많은 사치에는 첫 손님인 토미에게 평생 무료 커피를 약속합니다.

우연히 만난 일본인 미도리와 마사코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메뉴도 개발합니다. 그러자 손님들이 점점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작은 동양 여자가 식당을 하는 게 신기해 구경만 하던 핀란드 아줌마들도 달콤한 시나몬 롤 향에 반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카모메 식당은 단순한 음식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치유해주는 공간으로 구실을 합니다. 외롭고 쓸쓸한 영혼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공간입니다.

이제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여긴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다가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곳 이지요”

식당을 열고 처음에 손님이 너무 없자 일본 관광 가이드지에 홍보를 하자고 제안하는 미도리에게 사치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카모메 식당은 따뜻합니다.

세 주인공 여성들 모두 나름대로 아픔을 안고 낯선 땅 헬싱키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습니다.

따뜻하면서 당차고 활기차며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치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첫 손님 토미가 대뜸 ‘갓차맨(독수리 오형제)’ 주제가를 묻자 혼자 고민하고 서점까지 찾아갑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미도리를 만나 가사를 알게 되고 가게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헬싱키로 왔다는 미도리는 큰 키에 남자 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소녀처럼 섬세하고 여린 성격입니다. 사치에와 함께 메뉴를 고민하기도 하고 음식도 함께 만듭니다. 공짜 커피만 먹는 토미를 은근히 구박 하지만 유쾌한 캐릭터입니다.

20년간 부모의 병간호를 하던 마사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삶의 방향을 잃게 됩니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핀란드 에어기타 페스티벌 장면을 보고 필(feel)이 꽂혀 오게 됩니다. 마사코는 남편이 집을 나가자 늘 우울과 술로 지내는 핀란드 아줌마 리사와 술 대작을 하게 되고 그녀를 정성껏 돌봐줍니다. 정신적 위안을 얻은 리사는 삶의 희망을 다시 찾게 되고 남편도 다시 돌아옵니다.

미혼인 세 여성은 결혼이라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갑니다. 미도리와 마사코는 처음엔 삶으로부터 일탈, 탈출을 생각했지만 사치에처럼 자아 찾기에 동참하게 됩니다. 모두 따뜻하고 정이 많은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치에는 식당을 하면서 말합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싫었던 일을 하지 않아서 좋은 거에요”

 

카모메 식당은 맛있습니다.

미도리가 사치에에게 “왜 핀란드 헬싱키에 식당을 열었느냐?”고 묻습니다. 사치에는 대답합니다. “이탈리아 하면 피자와 파스타, 독일은 소시지, 한국의 불고기와 김치, 인도는 카레, 태국은 똠양꿍, 미국은 햄버거, 핀란드는 연어. 그런데 일본인도 연어구이를 좋아하니 여기서 식당을 열었어요”

일본 최고의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시리즈 ‘심야식당’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맛있게 연출한 음식은 카모메 식당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고기와 연어를 굽고 빵을 만들며 오니기리를 만드는 장면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고루 자극해 시장기를 느끼게 합니다.

사치에와 미도리가 함께 시나몬 롤을 만드는 모습은 달콤한 향이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만 같습니다. ‘나도 저 곳에서 시나몬 롤과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돼지고기 생강구이인 쇼가야키와 닭고기 순살 치킨인 가라아게는 술안주로도 아주 제격입니다. 연어 스테이크 요리를 할 땐 두툼하게 잘린 연어에 소금만 살짝 뿌린 뒤 석쇠에 직화로 굽습니다. ‘치지지직~’ 굽는 소리에 군침이 안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식당의 전 주인인 남자가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분쇄한 원두 가루에 손가락을 넣고 “커피 루왁”이란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당신만을 위해 커피를 끓여준다면 더욱 맛이 진하죠”란 매혹적인 대사를 건넵니다. 혼자서 손가락을 넣고 조용히 속삭이듯 “커피 루왁” 주문을 외는 사치에,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입니다.

 

카모메 식당의 대표적인 요리는 역시 오니기리입니다. 우리나라 주먹밥 비슷하지요. 일본 사람들은 밥 자체를 좋아해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오니기리도 즐긴답니다. 영화에서도 밥에 김을 싼 게 전부입니다. 오니기리가 카모메 식당의 주 메뉴가 된 이유를 설명하는 사치에는 오니기리야말로 일본인의 소울 푸드(Soul Food)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치에는 어려서 엄마를 일찍 여의고 가사 일을 도맡아 했는데 아버지께서 1년에 꼭 두 번은 자기를 위해 오니기리를 만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운동회 날과 소풍갈 때 오니기리를 만들어주셨는데 오니기리는 자기가 만든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것이 훨씬 더 맛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따뜻하고 맛있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실 때는 꼭 배를 든든하게 채우신 다음에 보세요. 배가 고파지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헬싱키, 가고 싶습니다.

 

▲ 무레 요코 (지은이), 권남희 (옮긴이) 푸른숲

팁1) 원작소설 <카모메 식당>은 일본의 중년 여성이 핀란드 헬싱키에 식당을 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작가 무레 요코에게 의뢰하여 집필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영화와 줄기는 같지만, 소설에는 영화에선 소개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어 책과 영화를 비교하면 재미 두배, 기쁨 두배가 됩니다.

 

팁2) 일본 최초로 핀란드 올 로케이션을 감행한 영화 ‘카모메 식당’은 헬싱키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헬싱키 시내를 관통하는 녹색 트램은 고풍스런 헬싱키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즈넉하게 보여줍니다. 3B, 3T 트램은 시내 순환선으로 본격적인 여행 전에 한 바퀴 둘러보는데 요긴하답니다. 1일 하루 패스는 8유로. 사치에와 미도리가 처음 만나는 카페 알토가 있는 아카데미아 서점은 핀란드에서 가장 큰 서점입니다. 1960년대 알바 알토가 설계를 했다는데 천장의 채광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밖에 사치에가 음식 재료를 구입하는 하카니에미 마켓 홀과 노천시장은 핀란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해변가 카페 우르술라도 기가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푸르른 하늘과 바다가 마주하며 갈메기(카모메)가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차 한 잔이 절로 생각납니다.

 

서기찬 국장 kcsuh63@naver.com

저작권자 © 한국독서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