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독서법" 필사를 마치며

 “당신 꼭 포레스트 검프 같은 거 알아?”

사흘째 책을 필사하고 있는 모습을 본 남편이 이해가 안된다는듯 말했다.
무의미한 손노동이라며 그 시간에 다른 거 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기억을 못하는 거 아냐? 포레스트 검프가 성취한 것들을 모른단 말이야?
라고 대답하며 웃어 넘겼다. 그 때까지는 솔직히 손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뇌는 써내려가는 글자에 엇박자를 치고 있었다.
 
  우연히 진로 코치에 관한 저자의 학부모 교육 강연을 들으러 갔다. 사춘기 딸과의 관계 악화로 심하게 앓고 있던 나에게 단방 처방을 내려준 귀한 시간이었다. 그가 쓴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필사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던 나는 그대로 따라 써서 어쩌라는 거지? 라는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필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 필사를 완주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필사의 어떤 마력에 끌리는 지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책을 수중에 넣고 꼭꼭 씹듯이 읽어 내려갔다. 나에게 필사는 저자가 말하는 인생 조감도에서 지도에 나오지 않은 낯선 길이다. 그 길이 더 가깝고 평탄한 길이라면, 혹은 약간 험난해도 경치가 아름답다면 그곳에서 바로 경로를 수정할 수 있다는 대목이 나를 필사의 길로 인도했다.
 
 필사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즈음 아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모나 아이들이나 긍정적 애착에 대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는 마음은 같은가 보다. 깨나 힘들어 보이는 책 따라쓰기를 매일같이 하고 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고 했다. 사실 그 무렵 오랜만에 필기구를 잡은 탓인지 손가락이 쉬이 피곤해지고 앞으로 해야할 책장 수가 심적인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꾸 나약해지려고 하는 나를 얼르고 달래며 그렇게 하루도 빠짐 없이 책의 중반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주일을 넘기면서 손놀림이 빨라져 갔다. 필사하는 작업이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있는 것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동적인 것에서 능동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행복독서법과 하드커버 공책이 나를 반겼고, 필사하는 동안은 저자와 내가 한 공간에 있는듯 문장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마치 줄공책위에 서 있는 나에게 저자가 방향을 제시해주며 ‘따라오는 건 너의 선택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쯤되면 남편이 필사하는 내 모습을 달리 볼 수 있으려나? 여전히 의아스럽다는 듯 남편이 물었다.
“헐...... 필사하는 거 재밌어?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필사하면서 얻어지는 나의 소득을 나열했다.
“필사하는 동안만큼은 수민이가 나의 시선과 쓸데없는 훈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그 동안 대립이 없으니까 나도 휴식이 되고......”
“또 신기하게도 정말 집중이 잘 돼. 있잖아. 내가 이 책을 필사하면서 잠시 다른 책을 읽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는거야. 당신 알지? 나 책 잘 못 읽는거.”
"아침 준비 전 10분 정도 필사를 하는데 참말로 상쾌해. 이게 명상이지 싶다.“
“나 이주일이 넘게 집 안에 박혀 있었어. 비타민D가 결핍 되는 거 같다.” “헤헤”
기다렸다는듯 남편의 질문에 조곤조곤 대답했다.
 
 책의 후반부를 필사하고 있는 지금, 이 책에 깊은 소속감을 느낀다. 필사는 독자들이 책에 소속감을 가지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도적으로 필사 속도를 늦추고 있다. 시작할 때 완주가 목표였던 것과 달리 지금은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날 지금껏 누려왔던 소속감을 잃지 않을까하는 아이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독서력이 약하다. 항상 책을 가까이 두고 있었지만, 정작 ‘책을 좋아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네’ 라고 대답을 못했었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없었던 것이다.
필사를 완주하는 날을 마음 속에 그리며 나에게 묻는다.
“책에 대한 소속감 대신에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뭘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책을 좋아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네’하고 대답할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필사 노트의 추억이야.”
 
▲ 김을호 (지은이) | 푸른영토
 
강은희 객원기자(kkmolee@hanmail.net)
저작권자 © 한국독서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