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맛(秋刀魚の味, An Autumn Afternoon, 1962, 감독: 오즈 야스지로)’

꽁치 좋아하세요?

▲ 꽁치의 맛 (An Autumn Afternoon, 1962)
오늘은 일본의 평범한 일상과 그 일상의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요리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담백한 영화 ‘꽁치의 맛’을 대접하겠습니다. 포장마차 안주로, 정성 가득한 엄마의 집 밥 메뉴로 따끈따끈한 ‘꽁치의 맛’은 서민들의 맛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향기입니다.
 
1963년 세상을 떠난 오즈 감독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아름답고 유머 가득한 이 작품은 어설픈 감상(感像)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사색의 여백을 제공합니다.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딸 미치코와 막내아들 가즈오와 사는 주인공 히라야마(류 치슈)가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해군 함장으로 복무한 후 지금은 회사 중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스물 네 살 된 딸은 집에서 엄마 노릇, 주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딸이 결혼을 하기라도 하면 집안일도 문제고 집은 텅 빈 느낌이 들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영화속 한장면
히라야마는 친구들로부터 딸을 결혼시키라는 잔소리를 듣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딸은 마냥 어리게만 보입니다. 중학교 반창회가 있는 날, 정겨운 술자리에서 취한 은사님을 집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은사의 집에서 그 옛날 아름다웠던 은사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를 걱정하며 늙고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은사의 딸은 아버지를 모시느라 혼기를 놓쳐 노처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히라야마는 딸 미치코의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결심합니다. 딸을 시집보내야겠다고.
 
히라야마: “너, 시집 갈 마음 있니?”
딸: “네?”
히라야마: “결혼 말이야. 가고 싶지 않니?”
딸: “놀리시는 거예요?”
히라야마: “아니다. 진심이다. 진지하게 새겨들으렴. 애비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단다. 잠깐 이리 와 보렴”
딸: “제가 시집가면 아버지는 어떡하시려고요?”
히라야마: “내가 힘든 건, 힘든 거고… 넌 벌써 스물 네 살이니, 시집가야하지 않겠니?”
딸: “그래요, 그러니까 아직 괜찮아요”
히라야마: “ ‘괜찮다, 괜찮다’ 이러다가 나이를 먹는 거란다. 나 편하자고 널 잡아두는 것 같아 애비는 마음에 걸린단다. 지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시집가거라”
 
▲ 영화속 한장면
딸을 시집보내려는 아버지와 아버지 곁에 남으려는 딸의 대화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와 차별되는 가장 일본적인 영상 미학을 추구한 작가입니다.
1927년 메이저영화사 쇼치쿠에서 시대극 ‘참회의 칼’로 데뷔한 이래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화언어를 사용하며 삶의 조각과 덧없음을 일관되게 조명합니다. 오즈의 위대함은 평범한 가족의 일상에서 영화적인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급격한 변화에서 비롯된 세대 갈등을 통해 본 일본 가족의 초상을 보여줍니다. 지금 나의, 우리의 가족일수도 있지요. 결혼과 취직, 진학, 장래 등 가족은 늘 이런 문제로 의견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도 이런 문제들입니다.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정서와 감정, 태도입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감성과 카메라 앵글은 가족 간의 이런 갈등과 차이를 세밀하게 파고듭니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비극이나 고통으로 묘사하진 않습니다. 상처나 아픔을 쉽게 치유하진 않지만 이해하고 보듬으려 애쓰지요. 오즈의 영화 속 부모들은 자식을 이기는 법이 없습니다. 오즈가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그들의 등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드러납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돈가스와 두부’란 비유로 오즈가 비슷비슷한 영화를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오즈는 “두부가게 주인이므로 두부밖에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의 영화에 두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주로 가족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오즈의 영화가 이런 결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대부분의 평단 분석입니다. 비록 결론은 비슷할지 몰라도 반복되는 삶에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의 조건을 객관적으로 보여줍니다.
 
▲ 영화속 한장면
야스지로의 묘비에는 단 하나의 글자 무(無)란 글자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오스지로의 영화가 무(無에) 가까운 단조롭고 소박하고 담백한 맛과 더불어 유쾌한 감칠맛을 지니고 있듯이 ‘꽁치의 맛’이란 평범한 집 밥처럼 특별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맛입니다. 있을 때는 있나 보다 싶지만 없으면 아쉽고 답답한 것이지요. 그건 곁에 있는 딸의 존재와도 같습니다. 있으면 잔소리도 하지만, 막상 시집을 가면 허전해집니다. 그래서 ‘꽁치의 맛’은 극 중에서 자기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처럼 야스지로가 마지막 작품을 관객들에게 시집보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슬프지만은 않은 슬픔이, 기쁘지만은 않은 기쁨이 있습니다. 자식을 결혼시켜서 보내는 마음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더불어 있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꽁치는 나오진 않지만 그런 느낌이, 그런 맛이, 그런 여백이 아련하게 남아있는 게 바로 ‘꽁치의 맛’입니다.
세상의 ‘딸바보’ 아버지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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