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배달부 키키(魔女の宅急便: Kiki’s Delivery Service, 1989,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우슐라: 마법하고 그림은 닮은 것 같아. 나도 종종 그림이 안 그려질 때가 있어.
키키: 정말? 그럴 땐 어떻게 해? 사실 전에는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날았어.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날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우슐라: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야지.
키키: 그래도 그릴 수 없으면 어떡해?
우슐라: 그리는 걸 포기해. 산책을 하거나 경치를 구경하거나 낮잠을 자고 아무것도 안 해. 그러는 동안 갑자기 그리고 싶어지게 돼.
키키: 정말이야?
우슐라: 물론이지.
 
▲ 마녀 배달부 키키(魔女の宅急便: Kiki’s Delivery Service, 1989,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평소엔 잘 되는 일이 잘 안될 때 어떻게 해결하나요?
슬럼프나 좌절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마녀 배달부 키키는 어떻게 할까요?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는 사춘기에 접어든 새내기 마녀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키키는 인간인 오키노 아빠와 마녀 고키리 엄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키키는 13살이 되던 해, 보름달이 뜨는 날 마녀 수업을 위해 떠납니다. 진정한 마녀가 되기 위한 마녀 세계의 규칙입니다. 친구인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마녀 수행을 떠나는 것이지요. 사람들 마을에서 1년 동안 함께 어울리며 살아야합니다.
바다를 사랑하고 동경하는 키키는 바다에 떠있는 커다란 마을에 마음을 뺏기고 정착을 결심합니다. 키키는 착륙을 하려다 빗자루 운전의 미숙으로 차량과 사람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다가 경찰에 잡히고 맙니다. 하지만 새 친구 돔보를 만나 위기에서 벗어나고 친절한 빵집 아주머니도 만납니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는 키키가 빵집에서 배달 일을 하게 해주고 잠자리까지 제공합니다. 어느 날 마을에 비행선 사고가 일어나는데, 거기에 돔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키키는 현장으로 달려가 청소부의 대걸레를 빌려 마법을 사용하여 돔보를 구출하게 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의 주인공은 많은 경우 여자아이입니다. 소녀의 성장이야기가 많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리딩 시네마 7회 연재작)의 나우시카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전사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 장난꾸러기 치히로는 생명 사랑의 존귀함을 배우고 책임감을 익히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의 시타 역시 모험과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갑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 인터뷰에서 왜 작품의 주인공은 항상 소녀냐는 질문에 “이 시대는 부드러운 여성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자신조차도 남성의 시대는 끝났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을 전달하는 소녀 마녀 키키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빗자루를 타고 고양이와 대화 하는 등 마녀의 길을 걷습니다. 사람들 마을에서 마녀 수행을 하던 키키는 어느 날 마법이 약해짐을 느끼다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도 익숙한 빗자루 날기와 고양이와의 대화가 딱 끊어진 것이지요. 키키가 숲에 사는 친구 우슐라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입니다. 키키의 친구 우슐라의 방법은 일이 잘 안될 때 미친 듯이 더 열정적으로 매달리다가 그래도 안 될 땐 전혀 엉뚱한 일을 하면서 잠시 손에서 놓는 방법이랍니다. 그럴듯한가요?
 
 
영화 마지막 장면, 돔보가 비행선에 매달리는 위험에 처합니다. 돔보를 구하기 위한 키키는 마법을 잃어버려 날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키키의 진실된 마음은 잃었던 마법을 돌아오게 만듭니다. 키키가 돔보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빗자루는 빗자루가 아니라 동네 청소 아저씨의 대걸레 막대기입니다. 마녀의 빗자루가 아니라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도구지요. 사람들의 세상에 완전히 동화되는 순간입니다. 마법이 다시 살아난 키키는 친구 돔보를 위기에서 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과 스웨덴, 아일랜드 현지 로케이션을 통해 완성된 아름답고 이국적인 배경도 돋보입니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유럽의 도시도 동경합니다. 키키가 정착한 마을은 스웨덴 스톡홀름과 고틀랜드 섬의 비스비 시 등을 모델로 했다는데 일부 네티즌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이는 포르투갈의 포르토라고 하기도 하고요. 실제 사진을 보니 작품 속 배경과 모두 닮았습니다. 유럽의 어느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니 비슷한 곳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특히 주인공 키키의 움직임 묘사를 위해 무려 1,152컷의 스케치에 동화 70,000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감독은 사춘기 소녀의 미세하고 오묘한 감정이나 동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교하고 고풍스런 배경 그림과 어울려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다가옵니다. 원작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아니라 카도노 에이코입니다. 미야자키의 다른 작품에 비해 메시지가 다소 약하고 스토리가 단조로운 감이 없진 않지만 그림의 색감과 섬세함, 감성은 으뜸입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풍광에 절로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은 키키가 마법을 잃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모습과 마법을 되찾는 과정이 너무 짧고 가볍게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가 있지만요. 작품은 마녀의 세계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모험과 환상의 이야기가 주된 구성입니다. 그러나 키키가 인간의 마을에 정착하고 적응하는 과정, 빵집에서 배달 일을 하며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만나는 과정, 마법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과정을 통해 마녀이면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키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꼭 보시길......
 
▲ 리딩시네마의 서기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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