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떠돌이 같군요”

도쿄에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갈 곳이 없습니다. 온천여행에서 돌아온 노부부는 미용사인 큰 딸집으로 갑니다. 딸은 오늘 저녁 집에서 미용사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던 할아버지가 허탈하게 내뱉는 말입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1953년에 만든 ‘도쿄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급속한 경제개발과 산업화, 도시화 속에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대가족제가 무너지고 점점 핵가족으로 변합니다. 자식들은 자기 일에 쫓겨 부모님에게 소홀하지만 부모님은 “자식들을 우리 기대에 맞출 수는 없다”고 스스로 위로 하며 살아갑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시골에 사는 노부부는 결혼하여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보러 난생처음 도쿄로 갑니다. 큰 아들은 의사로 성공하였고 큰 딸도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과 딸은 겉으로는 부모님을 반기기는 하지만 귀찮아하고 냉소적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도쿄 나들이 한 번 제대로 함께 하지 못합니다. 집에 모시는 것도 부담스러워 온천여행을 보냅니다. 특급 온천이라고 갔지만 노부부는 밤새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마침 젊은이들이 단체로 놀러와 새벽까지 떠들며 도박과 술, 노래를 하며 즐깁니다. 소음때문에 뒤적이며 곤혹스러워 하는 노부부의 표정은 제가 보아도 민망합니다. 노부부를 지극히 모시는 유일한 사람은 전쟁 중에 남편을 잃는 둘째 며느리입니다.
노부부는 자식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기 싫어서 온천여행을 다녀 온 다음날 막내딸이 있는 시골집으로 내려갑니다. 도쿄 여행 후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할머니는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져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큰 아들과 큰 딸은 한 번은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이라 여기고 무덤덤하게 장례를 치르고 도쿄로 급하게 돌아갑니다. 둘째 며느리만이 혼자 남아 시아버지를 위로합니다. 시아버지는 죽은 아내의 시계를 며느리한테 주면서 새 출발을 하라고 권합니다.
“아내가 네 나이였을 때부터 쓰던 시계란다.
그녀를 위해서 가져라. 기뻐 할 거야.
부탁이다. 난 정말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입니다.
“이상하구나.
자식이 네 명이나 있는데 네가 가장 값지구나.
넌 피도 안 섞였는데 말이다. 고맙다”
며느리는 흐느낍니다.
 
1953년 일본 사회의 자화상입니다. 1960~70년 대 한국 사회이고요.
2014년 일본, 한국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1950년대 일본, 1960~70년대 한국에는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 가족과 자신을 잃어 버렸다면 요즘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밀려 가족과 자기 자신과의 소통을 단절시키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도쿄 이야기’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 스스로가 꼽은 자신의 대표작입니다. 그저 시골 노부부가 도쿄에 있는 자식들 집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특별한 사건이나 내용, 눈에 띄는 볼거리도 없습니다. 화려한 영상기법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형식 같은 발단-전개-위기-절정(클래이막스)-결론도 없습니다. 해피엔딩도 아닙니다.
오즈의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합니다. 고정된 카메라 앵글 안에서 배우들은 절제된 감정을 연기합니다.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 탓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이렇게 혼자 있으니 하루가 참 길다”는 할아버지의 독백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영상은 마치 정물화 속에서 그림이 움직이고 연기하는 듯합니다. 카메라는 바닥에서 60~70cm 정도 높이에서 바라봅니다. 오즈 특유의 ‘다다미 쇼트’라고 불리지요. 사소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듯이 들여다봅니다. 바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우리 집 안방이고 거실입니다. 일본 중산층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가정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136분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대로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미국 영화 사이트 TSPDT가 2014년 2월에 발표한 ‘위대한 영화 1000편(The 1000 Greatest Films)’ 중 당당히 4위에 선정된 작품입니다. 죽기 전에 꼭 보셔야 할 명품입니다.
 
팁) 미국 영화 사이트 TSPDT 선정 ‘위대한 영화 1000편(The 1000 Greatest Films)’ 중 톱 10(2014년 2월)
(1)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 감독: 오슨 웰즈)
(2) 현기증(Vertigo, 1958, 감독: 알프레도 히치콕)
(3)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 감독: 스탠리 큐브릭)
(4) 도쿄 이야기(東京物語, Tokyo Story, 1953, 감독: 오즈 야스지로)
(5) 게임의 규칙(La Regle Du Jeu, The Rules Of The Game, 1939, 감독: 장 르누아르)
(6) 8 1/2(1963,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7) 대부(Mario Puzo’s The Godfather, 1972,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8) 선라이즈(Sunrise, 1927, 감독: F.W. 무르나우)
(9) 수색자(The Searchers, 1956, 감독: 존 포드)
(10)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Seven Samurai, 1954, 감독:구로사와 아키라)
 
*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올드보이(Oldboy, 2003, 감독:박찬욱)’가 839위를 차지했습니다.
 
▲ 리딩시네마의 서기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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