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재개하고 쓰는 책의 집필계획서
▲ 김준호 서정 컨덴츠 그룹 대표
 
20년 전 처음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 금요일이었다. 다음날 목욕탕에서 가서 때를 밀고 나의 첫 집필안을 작성했다. 당시 출판사에서는 출판 기획의도와 목차를 요구해 영어대가들의 리스트를 적고, 기획의도와 집필방향 등을 적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목욕을 한 이유를 곰곰이 돌아보니 좀 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앞으로의 책쓰기 작업에 스스로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출판사로부터 집필안을 의뢰 받았을 때 특별한 형식을 제안 받은 것은 아니다. 그때 기자란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기사 쓸 때의 기획의도와 내용 구상을 응용해 집필계획서를 완성했다.
 
김준호의 1996년 집필계획서 이미지
 
 
집필계획서 쓰는 법
그동안 기획서를 많이 써왔다. 출판사에 제안하는 기획안이 통과되어야 출판계약 절차를 밟기에 계약의 성패가 달린 한 부의 기획서에 공을 들여왔다.
한 권의 책은 적게는 1천만원 내외에서 나아가 수천만원까지 비용이 발생한다. 그 시초는 저자의 집필계획서에 출발한 기획서의 중요성은 더말할 나위가 없다.
집필계획서에 꼭 들어가야할 내용으로는1)가제목 2)콘셉트 3)기획의도 4) 예상 독자층 5)저자 프로필 6) 주요 구성 7)홍보 방안 등의 요소가 들어간다.
요즘 광고나 마케팅 분야의 프레젠테이션은 10분안에 모든 것을 말하라며 시간 제한을 둔다. 출판기획안도 마찬가지다. 가제목에 책의 모든 것을 압축한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 한 저자와 함께 기획안을 준비하는데 저자가 견본원고도 상당히 쓰고 책의 방향도 정해졌는데 가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고민을 거듭하다가 뽑아낸 가제목이 저자와 필자를 모두 흡족하게 만들었다. 가제목이 결정되자 책의 콘셉트와 키워드가 많이 정리됐다. 기획서의 가제목이라고 적당히 짓지 말고 기제목부터 연구를 하다보면 그 책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필자는 기획서 작성시 책의 콘셉트를 중시한다. 콘셉트란 독자의 욕구에 기초해 독자의 표현으로 기술한 책의 핵심내용과 특징을 일컫는다. 늘 기획하려는 책의 콘셉트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기술하거나 한 문구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곤 했다.
콘셉트를 분명하게 정한 책 중의 하나가 <엄마 매니저>(글로세움)이다. 전작<학원발가벗기기>(와이즈멘토)에서 공동저자로 인연을 맺은 공부법 전문가인 조남호(스터디코드)대표와 진행한 이 책은 재능TV에서 조남호 저자의 강의인 <엄마 매니저 사관학교>란 프로그램까지 나와 자체 방송국 프로그램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학습법 책의 저자 강연을 함께 하다 보니 청중들 가운데 초등학교 엄마들이 상당수 많았고 그들의 관심이 교육과 진학에 집중돼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초중학생 학부모를 타깃으로 엄마를 키워드로 도서를 기획하게 됐다. 그래서 콘셉트로 잡은 것이 ‘엄마는 인생 최고의 입시 매니저’였고 제목을 <엄마 매니저>로 명명했다.
 
기획의도에서는 책을 기획하게 된 동기나 배경, 독자와 저자 환경 및 사회 맥락속에서 책의 의미와 영향력 등을 소개한다. 콘셉트에서 간결하게 이 책의 핵심내용을 밝혔다면 기획의도에서는 출판의 결정을 내리는 사람에게 기획의 취지를 보다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당시 기록했던 <엄마 매니저>책의 기획의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교육에 관심이 높고 구매력이 높은 부모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학생 자녀(11~15세)를 둔 부모들은 성공적인 대학 입시를 위해서 무엇이든 가능한 것들이라면 미리 준비하고 싶어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입시가 내신/수능/논술을 다 잘해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 체제로 변모한데다가, 과거와 달리 창의력과 상상력을 요하는 서술형 평가가 강화되면서 이런 입시 흐름의 변화에 아이가 적응해야 하는 현실이 됐다. 결국 고교 시절에 무리한다 해도 대부분 한계가 있으니 초등생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만 공부 실력이 향상되고 입시 흐름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2) 그런데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대략 11~15세 자녀를 둔 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아이의 공부 실력 향상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입시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 주는 자녀교육서는 드물다.
3) 그래서 본사(서정콘텐츠그룹)는 21세기에 맞는 뉴타입 입시/공부법 전문가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용어의 창안자인 조남호 대표(스터디 코드 네트웍스 CEO/대표 컨설턴트)와 함께 11~15세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내 인생 최고의 입시/공부 매니저는 엄마다’ 란 취지로 자녀교육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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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에서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기획의도는 그 배경과 독자와 저자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필자는 이때 취재기법을 도입해 저자와 충분히 토론을 하고 기획의도를 밝히는 편이다.
 
예상 독자층은 핵심 독자층과 확대 독자층을 정하는 것이다. 책의 타깃을 분명히 해야 기획의도를 살리고 서술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어 핵심 독자층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정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독자타깃을 정하는 부분에서 의외로 책의 콘셉트와 방향이 명료해질 때가 많아 늘 타깃 독자를 중시하는 편이다.
또 핵심 타깃과 별도로 확대 독자층을 제시해 책의 판매사이즈가 확대될 때의 독자층도 예상해 두는 것이 좋다.
 
저자 프로필에서는 예상 저자, 혹은 확정된 저자를 제시한다. 일부 기획편집자는 기획서를 작성할 때 저자를 확정하지 않고 예상저자만 언급 하기도 한다. 기획초안일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원래 기획서는 확정된 저자를 명시하고 작성할 때 더 실현 가능할 수 있다. 사실 저자의 구체성을 띠지 못한 기획서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실제로 예상저자만 있는 기획서를 받아 진행하다보면 기획서상의 화려한 미사어구만 존재할 뿐 정작 중요한 콘텐츠의 방향을 담보하지 못한채 표류하는 현상을 많이 목격했다. 기획서에 부합하는 저자를 찾기도 힘들거니와 애써서 찾은 저자가 기획방향을 뒤집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와 함께하는 기획서가 중요하다. 기획서의 내용을 100% 실현할 사람이 저자이고 이를 잘 견인하는 역할이 기획편집자의 몫이다. 따라서 저자 프로필은 실제 저자의 이력이나 전작 등을 자세하게 기술해 이 책의 저자로서 콘텐츠의 품질과 가치를 충분하게 전달할 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해 봐야 한다.
 
주요구성은 기획방향의 뼈대를 이루는 설계도에 비유할 수 있다. 책이 나오면 목차라 불리는 부분인데 독자의 구매 요인 중 목차의 비중이 높아 아주 중요하다. 물론 기획단계에서 제시된 주요구성이 출간 후 목차와 100% 일치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콘셉트의 방향에 부합하는 내용이 구성돼야 책쓰기의 과정이 순조로울 수 있다. 필자는 저자를 확정하고 기획서를 쓰는 경우가 많아 주요 구성은 대개 저자의 집필안 등을 참고하는 편이다. 책의 저자가 그 콘텐츠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홍보안 항목에서는 서점을 중심으로한 일반적인 홍보 방안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기획에 따른 콘텐츠에 부합한 특화된 홍보 방안을 모색해야 나중에 책 판매에 도움이 된다.<엄마 매니저>의 홍보 방안을 살펴보자.
 
- 이슈메이킹:이 책은 변화된 입시 흐름에 적응하도록 자녀의 공부를 돕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는 학부모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점을 보도자료, 언론 등에 적극 부각시키고 서평, 블로그, 각종 미디어 등에서도 알리며 저자의 강연을 활성화시키면 좋다. 여성잡지 및 여성 대상 정보공유 사이트 같은 매체에도 저자의 칼럼이나 책 소개를 적극 하며 학부모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온/오프라인 이벤트: 이 역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학습지 회사라든지 교육 컨설팅 회사 등과 손잡고 그들의 소식지나 학습지 또는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한 홍보를 할 수 있다. 온라인 서점이나 출판사 사이트를 통해 학부모 대상 온라인 이벤트도 가능하다.
- 학교/학부모 모임:여러 초등학교(중학교 포함) 교장, 교감, 상담교사 등에게 대행업체를 통해 책을 발송하거나 학부모단체, 각 학교 학부모회 앞으로 책을 발송해 홍보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학부모들의 책 읽기 모임 등으로도 발송해 권장도서로 추천받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 저자: 저자는 입시 전문가이자 학부모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강점이 있다. 또한 탁월한 강연 능력을 갖춰 많은 학생 및 학부모들에게 책을 홍보하는 데도 유리하다. 또한 저자의 독자 사이트를 통해서 책 내용을 직접 상담 받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대치동 강연회 영상’을 CD로 제작하여 책과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저자/에이전시/출판사가 각자의 강점을 잘 살리고 협력하며 필요하다면 공동마케팅도 적극 시도하여 출간 초기에 독자 구매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예시문에서 나타나듯 저자를 중심으로한 홍보안이 현실적이니 출간 이후 저자 프로모션을 진행하는데에도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다각도의 영역에서 책 홍보 영역을 미리 가늠해 보는 것도 출간 이후 마케팅 계획 수립에 도움이 된다.
 
기획서는 앞으로 나올 책의 ‘시나리오’이다. 팀원과 편집장의 기획안을 검토해서 사장이 최종 결정하면 출판사의 계발계획이 확정되고, 출판 에이전시의 기획안을 출판사가 결정하면 출판사는 투자로 이어진다. A4 용지 몇장이 투자를 결정짓는 것이다. 기획서를 작성하는 사람이든, 이를 보고 결정하는 사람이든 지표가 되는 기획안이 구체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물론 앞서 제시한 필자의 기획안 구성요소중에는 시장조사 내용이나, 책의 판형과 책가격 등 일부 요소가 빠진 부분도 있다.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중요한 것은 기획안에서 앞으로 나올 책의 밑그림이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면 없이 집이 지어지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책도 마찬가지다. 새집에 설계도가 필수듯이 출간할 책은 기획안을 입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날카롭고 풍부한 기획안이 콘텐츠의 질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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