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부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국문학 미리보기’를 읽고

▲ 김영희 (지은이), 소복이 (그림) | 길벗스쿨

가끔 당연했던 것들이 갑자기 새롭게 돌변해 다가오기도 한다. 내 딴에는 비교적 문학을 더 잘 알고 더 많이 접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이 책을 덮고 나니 문학의 또 다른 모습들만 낯설게 다가와 나와 등을 돌린 친구처럼 느껴진다.

 

‘국문학 길들이기’에서의 문학은 친구 같았던 문학이 아닌 나쁜 쪽으로도 행사하여 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권력자였다. 일제 강점기 때의 시인이 일본과 조선은 한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를 써 많은 조선인이 무고하게 죽게 했다는 사례를 책에서 읽고 놀랐다. 그 시인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일말의 의심 없이 많은 사람의 결심을 일으켰다는 게 큰 충격이었다. 이때까지 문학이란 두 글자가 안 좋은 의미로 해석되었던 사례는 본 적이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문학은 좋은 것이니 많이 읽어야 한다.’라는 개념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문학이 나쁘다고는 고민해본 적도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도 이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문학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까닭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르게 다가가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글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듯이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위로를 해주고 듬직한 글이 되어주지만, 심적으로 힘든 사람에게는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어렸을 때 ‘어린 왕자’를 행복한 결말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최근에 읽었던 ‘어린 왕자’는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마무리였다. 이처럼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기분만이 아닌 연령대를 넘어서 글은 다른 효과를 지닌다. 문학이 아닌 다른 글에서는 내 마음을 읽어주는 듯한 위로는 기대할 수 없으므로 많은 사람이 문학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말과 글은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연인 같은 사이라는 것에는 나도 동감한다. 하지만 뱉은 말은 그 말을 들은 수많은 사람이 기억하지만, 글은 말보다는 장소가 제한적이어서 비교적 수정하기 쉽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말을 뱉어버리는 나쁜 습관을 지니고 있는데, 소설을 알았을 때부터 주인공들의 정갈한 말투들을 읽으며 희열을 만끽하고 부러움을 느끼며, 때로는 열등감을 느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체험하며, 결과적으로는 문학 속의 인물들을 본보기로 삼아서 내 일상생활에 빗대어 생활하도록 노력 중이다. 말은 글처럼 바로 수정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영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말과 글은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어딘가 통일되는 구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는 비유적 표현들과 감탄을 자아내는 체계적인 글의 짜임 같은 모습들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문학이 꼭 거창할 법도 없었다. 현실을 우회하는 비현실적인 글은 문학에서 극소수뿐이고, 사랑받는 글들은 거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과 전개들이 이어진다. 고민의 고민 끝에 꼭 반짝거리고 멋진 표현들만이 아닌 내 생각으로 글을 가득 채워도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글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의 전환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자신을 꾸며주는 장신구가 많다 하더라도 자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글을 쓰는 내 태도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 습관인지 몰라도 평소에 글을 쓰게 되면 내 글을 다른 글들과 비교하게 되어 나의 고유의 말투를 자꾸만 숨기며, 남은 공간에는 있어 보이게 쓸데없이 거창한 표현들만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내 글에 화려한 치장만 덕지덕지 갖다 붙이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덕분에 내 글의 토대는 바로 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내 글에 뼈를 만들어주고, 살갗을 부드럽게 하며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근육도 좀 만들어주려 한다. 무식하게 화려하기만 한 글이 아닌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녹여낸 글로 다시 탄생시키기 위해.
 
기약 없는 계획들만 세우며 정작 노력은 하지 않았는데 한심한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모든 문장이 나에게는 진심 어린 충고이자 격려였다. 결과적으로 문학은 소박한 것이니 나도 소박한 소망을 하나 피워냈다. 힘들 때, 기쁠 때, 슬플 때 각각 생각나는 책과 문구가 있듯이 그 사람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글, 그 사람의 일상에 온전히 녹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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