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세상이다. 민생은 고통으로 가득한데도 사회의 상부구조인 정치는 이분법적 대립과 냉전시절의 매카시즘에 가득하다. 경제는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갑질로 중소기업들의 비명이 가득하고, 서민들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극대화되고 있다. 이런 아수라장 같은 아노미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자양분은 무엇일까? 필자는 인문학적 감성, 사회과학적 냉철함과 함께 우리 마음에 낭만과 배려, 소통과 미소를 주는 ‘시의 힘’을 강조하고 싶다.

 
감각과 감정,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월과 동주의 꿈
시는 리듬, 울림, 조화, 운율을 가진 운문(韻文)이다. 백과사전은 시에 대해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라고 정의한다.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통합된 언어의 울림·리듬·하모니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시각 등 회화적 요소에 의해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고 또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던져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작품으로도 정의된다.
 
시는 인간의 의식 깊숙한 곳에 잠재하거나 숨어 있는 억압된 충동이나 소망을 표면에 끌어내 심리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작용을 한다. 반복이나 압운·직유·암유·우유와 같은 기법을 통해 독자의 의식세계를 흔들고 잠자던 기억이나 소망을 불러 깨우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시는 크게 서정시·서사시·극시로 분류된다. 서정시는 개인의 내적 감정을 토로하며, 영어의 리릭 포임(lyric poem)이나 프랑스어의 포엠 리리크(poéme lyrique)는 원래 리르(lyre, 七絃琴)에 맞추어 노래 불렀던 데서 온 호칭이다. 서사시는 민족 ·국가의 역사나 영웅의 사적과 사건을 따라가며 소설적으로 기술하며,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등이 해당된다. 극시는 극형식을 취한 운문 또는 극을 가리키며, 셰익스피어, 코르네유, 라신, 괴테 등의 희곡이 해당된다. 산문시는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로트레아몽의 <마르도롤의 노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등이 유명하다.
 
이처럼 인간의 심연을 자극하는 무궁무진한 시의 세계에 빠져들면 좀체 헤어나기 어렵다. 필자 역시 소년시절부터 시를 사랑하고 좋아했다. 시를 습작하고 연마해 2005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고, 이후 10여년 동안 시를 쓰면서 감동 가득한 시문학에 빠져왔다. 사회 양극화로 인해 고통스럽기만 하고, 폭염으로 힘든 시절, 시원한 얼음물 한 잔과 함께 낭송하는 시 구절로 인해 시민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되지 않을까?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가장 친근한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김소월일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하여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시인일 것이다.
 
<진달래꽃>은 한민족의 한을 담아낸 절창 중의 절창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영변(寧邊)에 약산(藥山)/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참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천의무봉의 시상이다.
 
필자가 더불어 좋아하는 소월의 시는 <초혼>(招魂)이다. “산산히 부서진이름이어!/虛空中[허공중]에 헤여진이름이어!/불너도 主人[주인]업는이름이어!/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心中[심중]에 남아잇는 말한마듸는/내 마자하지 못하엿구나./사랑하든 그사람이어!/사랑하든 그사람이어!/붉은해는 西山[서산]마루에 걸니웟다./사슴이의무리도 슬피운다./떠러저나가안즌 山[산]우헤서/나는 그대의이름을 부르노라./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서름에겹도록 부르노라./부르는소리가 빗겨가지만/하눌과 땅사이가 넘우넓구나./선채로 이자리에 돌이되여도/부르다가 내가 죽을이름이어!/사랑하든 그사람이어 !/사랑하든 그사람이어!” 21세기인 지금 읽고 음미해보아도 한없이 정다운 시다.
 
또 한 명의 사랑받는 시인이 윤동주다. 최근 개봉됐던 영화 <동주>를 통해 만인의 심금을 울렸던 윤동주의 <서시>는 민족의 참회록 그 자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고통 가득한 숙명 속에 삶을 지탱해온 우리 민족에게 주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또 한 편의 절창인 <별 헤는 밤>도 마찬가지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경,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별이 아슬히 멀듯이.//어머님,//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내 이름자를 써 보고,/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사평역에서> <연탄 한 장>의 메시지...시와 책 읽는 사회를 위해!
고통스러운 삶을 경험하는 우리에게 가슴을 적시는 시구를 전하는 이는 곽재구 시인이다. <사평역에서>는 현실에 고통받는 시민들의 서정성을 그린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하듯/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이같은 감성과 서정성이 21세기 소통과 통합의 시대정신으로 나타난 것이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이다. “또 다른 말도 많지만/삶이란/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방구들 선득선득 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연탄차가 부릉 부릉/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지//생각하면/삶이란/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한 많았던 조선의 식민지 시절 한민족의 정서와 감성을 투영했던 시인들을 거쳐 개인들의 감성과 시대의 고통을 함께 안고 가던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절, 이제 21세기에 너도나도 스스로를 불태우는 연탄이 되어 함께 살아갈 길을 만드는 시대를 시인들은 노래하고 있다. 많은 독서모임들이 시를 읽고 공유하고 느끼며 시대를 동 시대 시민들과 더불어 소통하고 있다. 시를 읽는 힘, 독서를 하는 감성과 예지력으로 흔히 ‘헬조선’ ‘흙수저’로 상징되는 21세기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불통의 시대를 극복해나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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