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화번역가, 작가, 출판인 이미도

‘밥도둑’은 입맛을 돋우어 밥을 많이 먹게 하는 반찬을 가리키지요. 그럼 ‘책 도둑’은? 독서 욕구를 돋우어 책을 많이 읽고 싶게 하는 것들이지 않을까요? 동명(同名) 영화로도 나온 마커스 주삭의 소설 『책 도둑 The Book Thief』 속 ‘책 도둑’은 ‘언어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The limits of my language are the limits of my world).’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명구입니다. 이게 속뜻입니다. ‘언어 실력을 키울수록 나의 세계는 창의적으로 더 커진다.’ 『책 도둑』에 잘 어울리는 주제문입니다.

이 작품은 한 문맹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언어의 위대한 힘’을 설파합니다. 소녀 리젤은 2차 세계대전의 비극 속에서도 수많은 책을 읽으며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깨달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소녀는 세 개의 무기를 가지게 됩니다. 창의력, 용기 그리고 도전입니다. 호기심(curiosity)처럼 전부 철자 ‘c’로 시작하는 단어입니다. 창의력(creativity)과 용기(courage)와 도전(challenge)은 소녀가 책을 좋아하고부터 생긴 무기입니다.

무대는 전운이 짙게 드리운 독일. 부모와 결별한 리젤은 입양됩니다. 낯선 세상의 낯선 사람들이 소녀를 괴롭힙니다. 문맹 소녀여서 학교에선 외톨이가 되기 일쑤입니다. ‘저능아’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지만 소녀는 이렇게 쏘아붙일 만큼 꼿꼿하고 당찹니다. “내가 글을 못 읽는다고 해서 멍청한 건 아냐(Just because I can’t read doesn’t make me stupid).”

소녀의 운명을 바꿔줄 세 명의 은인이자 스승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스승은 독일인 할아버지 한스. 그는 소녀에게 사전을 선물합니다. 매우 특별하게도 이 사전이 종이 사전이 아닙니다. 훗날 비밀 아지트로 활용되는 지하실 벽을 단어로 빼곡하게 채워야만 완성되는 ‘칠판 사전’입니다. 한편 한스는 밤마다 소녀에게 위대한 명작을 읽어줍니다. 새 단어를 익힐 때마다 소녀는 달려가 ‘칠판 사전’을 채웁니다. 한스는 그렇게 소녀에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나누어줍니다.

두 번째 스승은 한스의 지하실에 숨어 사는 유대인 청년 맥스. 이 ‘위험한 객’은 한때 한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의 아들입니다. 문제는 그가 현재 매우 병약하다는 사실. 투병하면서도 맥스는 소녀에게 특별한 언어를 가르쳐 줍니다. 메타포, 즉 은유입니다. ‘하늘이 흐려요’ 라고 말하던 리젤이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고 쓰기 시작합니다. ‘하늘이 은빛 굴처럼 보여요.’

세 번째 스승은 독일인 시장의 부인. 유대인 청년이 언제 들킬지 모르는 위태로움 속에서 소녀는 시장의 아내와 가까워집니다. 둘이 가까워지는 사연이 특별합니다.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어린 아들을 전쟁 통에 잃은 부인이 하루는 어떤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독일군이 ‘독일을 병들게 한 병균 같은 책들을 불태우자’라고 외치며 책 화형식을 벌이던 날 리젤이 H.G. 웰스의 『투명인간』을 훔쳐가는 걸 본 겁니다. 부인은 일러바치기는커녕 소녀에게 언제든 자기 집에 와 책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대단원에 이르러 맥스가 위태로워집니다. 한스, 맥스, 독일인 시장 부인에게 ‘위대한 언어 선물’을 받은 소녀는 맥스를 꼭 지켜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독서가 소녀에게 용기(courage)를 북돋우어준 겁니다.

독일 경관들이 지하실을 수색할 땐 리젤이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해 맥스를 위기에서 구합니다. 그 내용은 스포일러여서 가려둡니다.

전쟁광들에게 가족을 잃은 소녀는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아름다운 도전(challenge)을 멈추지 않습니다. 훗날 리젤은 유명한 작가가 됩니다.

때마침 독서의 계절 가을이 우리 곁에 와있습니다. 독서의 계절로 가을이 선정된 건 우리 국민이 가을에 책을 가장 적게 읽기 때문입니다. 독서와 더 친해지면서 리젤처럼 창의력, 용기 그리고 도전 능력을 키우려는 청소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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